라이프로그


여성은 성직자를 하면 안되지만 사실상 성직자야 - Hildegard by mori

오늘 수업 시간에 다룬 자료. 성모 마리아를 둘러싼, 젠더와 성직자 문제. Anne L. Clark의 "The Priesthood of the Virgin Mary: Gender Trouble in the Twelfth Century," Journal of Feminist Studies in Religion, 19, 2002 를 읽었다. 그리고 기반 자료로 빙겐의 힐데가르드(Hildegard of Bingen, 1098-1179)의 Scivias 발췌문을 조금. 오늘 자료를 읽으면서 생각한 것은, 여성(성직자라고 해서)이라고 해서 다 페미니스트는 아니다 (너무 당연한 사실인데, 나도 그렇고 사람들도 종종 잊어버린다. 심지어 안티-페미니스트들조차). 중세 여성 성인들이 (모두) 여성의 권리를 주장한 것은 아니라는 점. 하지만 그 담론을 단순하게 볼 수는 없고 다양한 층위를 이해해야할 것. 좀 유치하게 다시 말한다면, 힐데가르드 실망이야. 흥흥흥 (읭?)


학부 때에 종교철학 수업을 들을 때의 일이다. 종교철학 중에서 페미니스트적 관점(읭? 이거 거의 불가능하다고 했는데)에 대해 토론하던 중 선생님과 한 학생이 의기투합하여 그리스도교의 안-안티 페미니스트적인 모습을 성토했던 적이 있었다. 그 학생은 그리스도교 내에서 예수가 신랑이라면 신도는 신부(新婦)로 표현된다며, 신도가 여성으로 묘사되는 것은 매우 중요하고 이는 그리스도교 교회가 여성들을 그리 무시하지 않았다는 증거라고 말했다. 뭐 이에 따른 다른 여러 얘기가 오갔고, 선생님은 자기 유학 경험까지 이야기하면서 동의했고, 나는 점점 화가 나서(이러지 맙시다) 내 반대 주장을 했던 적이 있었다. 그 때엔 (지금도 그렇지만) 그런 논리에 감정적으로 대응한 적이 워낙 많아서, 제대로 반대 논거를 댄 것 같지는 않다. 하지만 내가 할 말은 뻔하다. 신도가 여성이라는 상징을 중요하게 사용한다고 해서, 교회 내의 여성 입지가 상당했음을 대변해주지는 않는다. 게다가 신도가 여성으로 표현된 이유는, 인간이 신에게 복종해야하며 신을 고분고분하고 착하게 섬겨야된다는 의미를 함축하고 있는 것이다. 즉, 여성은 복종적이고, 고분고분하고, 착해야한다는 논리가 숨어 있는 것이다. 어쨌든, 여성의 상징이 사용된다고 해서 그 자체가 여성의 지위가 어떠했는지를 대변해주지는 않는다.

상징의 복잡한 성질(위에서 너무 간단하게 설명하기는 했지만)은 성녀의 글에서도 발견된다. 클라크는 이 점을 간파했다. 중세는 마리아 공경(Maria Worship)의 시대였다. 즉, 성모 마리아의 처녀성이 강조되고, 많은 성인과 신비주의자의 글과 경험에서 성모 마리아의 중요성은 부각되었다. 성모 마리아는 거의 예수와 동급으로 추앙받았고, 중세의 중요한 상징이었다. 하지만 중세의 중요한 상징이었던 성모 마리아가 여성이라고 해서, 중세 교회에서 여성의 입지가 그 만큼 대단했나?

클라크는 좀 더 구체적으로 들어간다. 중세시대에 성모 마리아는 여러 면에서 사제직(priesthood)과 연관되었다. 힐데가르드에서 예를 찾자면, 그녀의 환시에서 마리아와 교회Ecclesia가 동일시되는 경우를 찾을 수 있다(13). 특히 여성형 명사인 에클레시아가 예수의 앞에 나와 그의 피를 받는 장면은 사제가 성례전 시에 포도주를 축성하는 이미지를 연상시킨다 (12). 여기까지만 보면, 중세의 성스러운 여성 힐데가르드는 교회와 성전례, 사제직에서 여성의 이미지를 중요하게 생각했다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힐데가르드 자신이 교회에서의 여성 입지를 대변한 것은 아니다. 클라크에 따르면, 오히려 힐데가르드는 여성이 성전례를 행할 수 없다고, 즉 사제직을 행할 수 없다고 주장했다.

Hildegard declares that those who are defective in their bodies may not be ordained. As if implying an example of such a defect, Hildegard goes on to state women may not "approach the office of the altar"  because "they are an infirm and weak habitation, appointed to bear children and diligently nurture them." So despite the femaleness of this sacerdotal officiant communicated in the gender of the noun ecclesia and in the accompanying miniature, Hildegard affirms that the office of priesthood is open only to men (14).
힐데가르드는 몸에 결함이 있는 사람들은 서품을 받을 수 없다고 주장했다. 이러한 결함의 예를 암시하듯, 힐데가르드는 여성이 "제단과 관련된 직무[사제직]에 접근하는 것"도 불가하다고 말했다 .왜냐하면 "여성은 허약하고 나약하며, 아이를 낳고 열심히 그들을 기르도록 정해졌기 때문이다." 에클레시아라는 단어와 여기에 따른 교회의 미니어처가 보이는 젠더에서 성전례 직무의 여성성이 표현되었음에도 불구하고  힐데가르드는 사제직무가 남성에게만 가능하다고 확언했다.


논거도 신기한 것이, 성례전이 성적인 의미를 담은 농사와 비교되는 데 여성이 땅이라면 남성은 땅을 가는 농사를 함으로 성례전은 남성의 역할이라고. 

그렇다고 해서 힐데가르드가 여성을 아예 사제와 멀리 떨어뜨려 놓은 것은 아니다. 여성 성인들의 경우 평신도laity와 비교될 때에는 평신도보다는 사제와 한 편(?)으로 설명되었다. 특히 동정을 지킨 여성 성인들의 경우 처녀로 사는 것만으로도 사제직을 가진 것이나 마찬가지라고 했다. 성적으로 금욕 중인 여성은 사제직에 가능하지만, 단순히 현세에서 그 직무를 수행할 수 없을 뿐이라고. 그럼, 이건가? 여성 성인은 사제를 할 수 있는 것도 아니고 못 하는 것도 아니여.


In general, Hildegard exalts the professed life of virginity for women as the means to recapture the existence of Eve before Eve's transgression, to live a life unmarked by the constraints of women's lot in the fallen world, and to enjoy a kind of fertility other than that of biological reproduction. In this case, the life of virginity offers women the possibility of a kind of access to priesthood but clearly without the notion of office (officium) that was prohibited to women in the earlier part of this chapter (15).
일반적으로, 힐데가르드는 여성에게 동정을 지키는 삶을 높이 평가해서 죄를 짓기 전에 이브의 존재를 보여주는 것이라고 말했다. 이런 삶이란 타락한 세상에서 여성의 운명이 가지는 제약에서 자유로운 삶을 사는 것, 생물학적 재생산과 다른 종류의 다산성을 누리는 것을 의미했다. 이 경우, 동정자로서의 삶은 여성으로 하여금 사제직에 어떤 방식으로 접근할 수 있는 가능성을 제공하는 것이었다. 하지만 앞에서 얘기한 것처럼 여성에게는 금지된 [실제의 ] 사제로서의 직무 그 자체를 언급하는 것은 아니다. 


이런 모호한 태도에 대해 클라크는 다음과 같이 말한다. 힐데가르드는 신학적으로는 여성인 마리아와 사제직을 함깨 묶어서 설명했지만, 사회학적으로 여성의 사제직 불가함에 대해 찬성했다. 이렇듯, 힐데가르드가 당시 교회에서 여성으로서는 드물게도 인정받은 여성이라고 할 지라도 다른 여성들도 인정받아야한다고 주장하지는 않았으며 특히 사제직에서는 여성이 받아들여질 수 없다는 남성 신학자들의 의견에 동의했다. 하지만 더 복잡하게는, 그렇다고해서 힐데가르드가 사제들에게 고분고분한 것은 아니었으며 사제들에게 영향력을 행사하지 않은 것은 아니었다. 하지만 남성 사제의 권위를 인정하지 않은 것도 아니다.

석사논문에서 오만 중세 성녀들을 갖다 쓰기는 했지만, OO선배의 말마따나 성녀들도 여러 분류를 해서 다뤄야할 필요가 있었다. 나는 상대적으로 입지가 약하고, 좀 더 강하게 종교생활을 보여줘야했던, 상대적으로 권력이 약했던 성녀들에게 더 관심이 있었는데, 준비도 부족하고 잘 몰랐기 때문에 그냥 성녀 예는 다 찾아썼다. 물론 중세 성녀들 사이에 공통점이 없는 것은 절대 아니지만, 지난번의 이야기를 굳이 갖다 쓰자면 명예남성에 가까운 여성성인도 있을 것이고 급진적인 페미니스트의 양상을 보이는 성인도 있을 것이다. 여성으로서 같은 차별을 받을 때라도, 여성이 이래저래야한다는 의견은 다를 터. 결과적으로 여성의 입지를 강화하는 데 모두다 기여했다고 치더라도, 자료를 다룰 때에 의견의 차이를 조심스럽게 생각해야 한다는 점. 그리고 한 성녀 안에서도 다른 의견들이 긴장관계에 있다는 점. 어떻게 보면, 이는 당연한 결과이다. 교회 내에서 인정받은 성녀 자체가 특수한 일이었다는 점을 감안할 때에 그 여성 성인은 자신이 여성임에도 불구하고 권위가 있다는 점을 표시해야할 것이며 그와 동시에 교회의 권위에 반역하지는 않는 태도를 가졌을 것, 혹은 동의하지 않는다 할 지라도 그 태도를 상당부분 보여야 교회 내에서 살아남을 수 있을 것이었다. 

이렇듯 한 시대, 한 성녀 안에서도 다른 관점이 존재하기 때문에 뭐 하나 쉽게 말할 수 없다. 다만, 수업시간에 지도교수는 힐데가르드가 여성의 사제직은 인정하지 않았지만 사제의 가능성을 인정했다고 말하면서 힐데가르드를 추켜세웠는데 이 의견에는 찬성 할 수가 없다. 환시에서 아무리 여성성과 사제직을 동일시해서 이야기하더라도, 동정을 지킨 여성의 지위가 성직자와 진배없다고 말할 지라도, 현실에서 여성이 사제직을 맡을 수 없었다는 것은 자명했으니 말이다. 지도교수가 아벨라르를 언급하긴 했지만, 아벨라르가 여성은 원래 허물이 많고 나약하지만 동정을 지키고 수도자의 삶을 사는 여성은 남성보다 훨씬 뛰어나다고 말한 것과 다름없다. 이전 글에서도 다뤘지만, 현실에서 여성 수도승들은 실천적인 문제 때문에 여성 나름의 해결책이 필요했는데 아벨라르는 이 점을 간과하고 여성 수도승은 너무 훌륭해질 수 있기 때문에 문제가 아니라고 하는 식이기 때문이다.








핑백

  • mori : 친척하고 결혼하면 안 돼 - 힐데가르트의 분석 2012-11-13 04:34:37 #

    ... 아마 현대의 미혼 성직자들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종교가 어떻든지간에 말이다. 지금까지 성녀 힐데가르트(1098-1179)에 대해서 글을 두 편 썼는데, 여성이 왜 성직자가 될 수 없는지와 왜 이브라는 여성이 뱀의 꾐에 넘어갔는지에 대한 교회 내 여성의 지위 혹은 인식에 대한 글이었다면 오늘 다룰 부분은 좀 더 현실적인 느낌. ... more

  • mori : 생리하는 여자한테 잘해줘라 - 힐데가르트 2012-11-17 08:10:43 #

    ... ;) 이번 글 역시 성녀 힐데가르트(Hildegard of Bingen, 1098-1179)의 이야기. 여성의 월경을 의학적으로 종교적으로 본 글이다. 여성이 성직자가 될 수 없는 이유, 이브가 뱀의 꾐에 넘어간 이유, 근친혼이 금지된 이유에 이은 성녀 힐데가르트의 네 번째 이야기, 여성의 월경이 의학적으로, 종교적으로 어떻게 ... more

덧글

  • Esperos 2011/09/21 19:49 # 답글

    라칭어라고 하지 않고 라칭거라고 하듯이, 빙엔이라고 하지 않고 빙겐이라고 해야 맞을 겁니다. 힐데가르트 폰 빙겐이요. 여자가 실제적인 권력에서는 유리돼 있지만, 종교적인 의미에서 권력을 휘두르는 이중적인 경향을 띄는 경우가 많았음을 생각해야겠지요. 그런데 그 점을 생각해도 중세 시대의 성모 마리아 신심은 특이합니다. 신학적인 의미에서는 거의 신성을 띄는 정도로까지 올라갔거든요. 종교적인 세계관 안에서만큼은 실제적인 권력을 휘두르는 '모후' '여왕'이 됐습니다. 이 영향력이 아직까지도 있어서 제2차 바티칸 공의회에서 마리아론으로 대격론이 벌어졌습니다.

    물론 같은 시기, 유렵에서 대다수 여자들의 지위는, 어느 수도성인의 말을 빌리자면 '닭만도 못한' 신세지만요. 카푸친이었나, 아무튼 이 성인은 설교하기를 "남자들이여. 닭이 밥 먹는데 올라와 쪼아댄다면 닭걀을 낳아준다는 이유만으로 닭을 때리지 않을 거면서, 자기 아내는 참 잘도 패는구려!'라고 설교를 했지요.
  • mori 2011/09/22 00:52 #

    앗 감사합니다! 수정하도록 하겠습니다. ^^ 마리아를 섬기는 남자 수도성인들도 여성 비하 발언을 많이 했더라고요.
  • 다능 2011/09/22 10:59 # 답글

    중세에서 여성의 신학적 위치는 Paganism과도 연관을 지어서 생각할 수 도 있을 것 같습니다. Paganism은 여자 사제들의 비중이 높았고 그것을 밀어내고 그리스도교를 전파하는 과정에서 상대적으로 여성의 지위가 하락했다는 식으로요.
    또 여성의 지위를 단지 그 시대에서만 보지 말고 그 이전시대와 함께 봐야 할 것 같습니다. 그 이전 시대에 비해서 상승했냐 못했냐, 그 시대의 여성의 위치의 변화 등으로 말이죠. 만약 중세시대의 그리스도교에서 그 이전에 비해서 여성의 지위가 높아졌고 높이지고 있는 와중이였다면 종교에서 여성이 억압됬다고 할 수 있을까요?
  • mori 2011/09/22 13:56 #

    의견 감사합니다! 말씀하신 대로 중세 여성의 지위가 어느 정도 높았다고 볼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여성의 성직을 반대하는 것 자체가 당시 종교 안에서 여성의 역할이 성직에 근접할 정도로 영향력이 있었기 때문이라고 해석할 수도 있고요. 다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중세 교회 내에서 여성의 지위가 남성의 그것보다 낮다는 신학자들의 주장은 꾸준히 있어왔고, 교회의 시스템이 정립되지 않았으며 상대적으로 높은 비율의 귀족 여성들이 개종했던 초기교회보다 지위가 꾸준히 상승했다고 보기에 어려운 점도 있다고 생각합니다. 예를 들어 성전례 같은 경우 그 시스템이 중세에 확립되면서 일반 평신도와 여성들이 참여할 기회가 줄어들기도 했고요. Caroline Bynum이나 Peter Berger 같은 사학자들은 그리스도교가 사회에 정착하기 시작하면서 사회의 여성 억압적인 특성을 인정했다고 주장하는데 설득력이 있다고 생각합니다. 특히 Peter Brown은 여성이 지도자 역할을 했다고 비판한 것은 교회가 Paganism을 숙청하기 위한 명목상의 이유였다고 말하기도 합니다. 오히려 초기 교회의 경우 여성에게 상대적으로 자유를 부여한다는 이유로 로마에게 비판받았는데, 나중에 그리스도교 교세가 확장되고 분파가 늘어나면서 그 비슷한 논리를 Paganism과 내부의 "이단" 세력에게 적용시키기도 하고요. 재밌는 것 같습니다!
  • highseek 2011/10/05 13:00 # 답글

    시대에 따라 조금씩 달리 보아야 할 필요가 있을 듯 합니다.

    초대 교회에는 막달라 마리아를 위시한 여성들이 베드로를 주축으로 한 사도들을 상대로 교회의 주도권 싸움을 벌일 정도였으니까요.

    이건 좀 다른 이야기이긴 한데, 고대 종교체계에서 상당수의 교권 지도자는 여성입니다. 이집트가 그랬고 그리스가 그랬고 가나안 지방의 수많은 고대종교들이 그랬죠. 동양 쪽도 별반 다르지는 않고요. 고대인의 사유체계에서 여성은 보다 신에 근접한 존재였습니다. 여성은 신을 낳고 창조의 신비에 접근할 수 있는 존재였으니까요.
  • mori 2011/10/05 14:17 #

    아, 저는 공부하는 시대가 주로 중세라서 그 쪽에 맞추어서 글을 썼습니다! 저도 초대교회가 좀 더 여성에게 관대했다고 보는 의견에 동의하고요! 다만 다른 지역은 잘 모르겠지만, 그리스나 로마 같은 경우는 여신이 숭앙되었고 여사제가 중요시되기도 했지만 교권을 형성했다고 보기엔 좀 어렵지 않나 생각합니다. 근동 자료에서도 여신의 존재는 많이 봤는데, 다만 남성 영웅에 의해 패배하는 전설이 많기도 하고요. 그리고 특정한 소수의 여성이 신에 근접한 존재였고, 일반 여성들은 노예와 비슷한 취급을 받았죠. 어쨌든 시대와 지역 구분은 꼭 필요한 듯합니다.
  • highseek 2011/10/06 01:46 #

    석기시대의 조각 신상들을 보면 여신이 많죠. 생명의 순환과 주기적인 재탄생의 순환구조가 여성성에 비견되어, 원시인들은 이런 여신의 신비로운 능력을 구체화시키기 위해 각종 여신 조각상을 만듭니다.

    바빌론의 신전탑 중 가장 신성한 장소는 선택받은 여성만 들어갈 수 있고, 여사제들은 제물을 받으며 사람들의 생명력을 회복시켜줬습니다. 여성이란 존재는 신과 인간, 자연과 사회, 높은 곳과 낮은 곳, 성과 속 이란 대비구조를 이어주는 매개체같은 역할을 했으므로, 여성이 없이 남성은 신과의 접점을 이룰 수 없었으니까요.

    이집트의 신화나 수메르의 신화 등을 보면 죽음을 당한 남신을 여신이 구합니다. 수단의 실루크족, 모잠비크, 앙고라, 로디지아, 인도, 인도네시아 등 상당수의 문화권에서는 정기적으로 왕을 살해하는 관습이 있었는데, 이것은 사제권력에 의해 일어납니다. 사제권력자인 여성이 전하는 신의 뜻에 지상권력자인 남성은 복종해야 한다는 식이었죠.

    절정을 이루는 것은 이집트인데, 이집트의 파라오는 남녀의 쌍입니다. (왕과 왕비가 아니라, 남성 파라오와 여성 파라오임.)이 때 파라오 중에서 제의를 주관하거나 국가의 행사를 주관하는 것은 여성이었습니다. 여성은 힘의 원천이고 그 힘을 받아 세상을 구현하는 것이 남성이라는 생각인데, 따라서 남성 없이 여성 혼자 파라오가 되는 경우는 있었으나 여성 없이 남성 혼자 파라오가 되는 경우는 없습니다. 한때는 약 500년 간 "신을 숭배하는 여인들" 이란 이름의 공식 직위가 있기도 했는데, 일종의 대신관으로, 세습적인 여성 사제 권력입니다. 이집트는 모든 정치, 사회, 문화 등에서 신-사제가 전하는 신의 뜻에 어긋나지 않아야 했습니다. 또한 신전에서는 설령 파라오라 하더라도 대신관에게 복종해야 했죠.

    아프리카나 아메리카 지역, 뉴기니, 폴리네시아 등 꽤 많은 오지 문화에서, 여성은 보통 주술적인 힘을 지닌 존재로 여겨지는데, 종종 이 때문에 여성에게 더욱 많은 금기(특정 단어를 말해서는 안된다든지, 일정기간동안은 바깥출입을 해서는 안된다든지..)가 가해지는 경우도 있지만, "여성이 사회의 지배자였던 시대"에 대한 전설이 남아있기도 합니다. 예를들어 티에라 델 푸에고의 오나족은 옛날에 여자들이 사춘기에 접어들면서 대대로 주술을 배웠는데, 이 주술의 힘에 남성은 꼼짝없이 굴종해야 했다고 합니다. 노예처럼 항상 여자들에게 식량을 바쳐야 했고, 여자들의 마음에 들지 않으면 꼼짝없이 죽어야 했죠.

    재미있는건, 상당수의 고대신화들이 청동기 시대를 전후로 해서 여성에서 남성으로 권력체계(?)가 이동하는 모티브를 품습니다. 아까 언급했던 티에라 델 푸에고의 오나족의 경우, 여성들의 폭압에 맞서 쿠테타(?)를 일으켜 남성들이 권력을 쟁취했다고 합니다. 오나족 뿐 아니라 근처의 야흐간족이나, 멀리 떨어진 오스트레일리아의 아란다족, 서아프리카와 멜라네시아의 여러 부족들 등등 비슷한 모티브가 많이 퍼져있죠.

    고대 그리스 같은 경우 쿨랑주나 부케르트 같은 학자들은 고대 그리스가 제사공동체였으며, 종교와 제례가 사회의 가장 기본이었다고도 합니다. 논란이 좀 있긴 하지만, 바코펜은 인류의 삶을 아프로디테 단계 -> 데메테르 단계 -> 디오니소스 단계 -> 아폴론 단계 로 넘어와서, 여성이 중심이던 고대 사회에서 점차 남성이 중심이 되는 사회로 넘어왔다고도 하죠.

    그리고 남성 영웅에 의한 패배라기보다는, 아들-신에 의한 패배라고 보는 편이 합당할 것 같습니다. 이런 것은 남녀 뿐 아니라 부자지간에도 발생하니까요. 크로노스가 우라누스를 해치고, 제우스가 크로노스를 해쳤듯이요. 뉴질랜드의 마오리족 신화에서는 최초의 부부 신(하늘과 땅)에게서 자식들이 나왔는데, 이 자식들이 부모를 갈라놓고, 아버지(하늘)은 저멀리로 쫒아보내고, 어머니(땅)은 가까이 자기들을 기르게 했다고 합니다.
  • mori 2011/10/06 05:40 #

    앗 자세한 자료 감사합니다!! 재밌는 자료가 많군요!! 언급해주신 자료들은 청동기 이전 시대 자료들인가요? 혹시 레퍼런스를 알려주신다면 도움이 많이 될 것 같습니다. 제가 다루는 자료가 주로 중세 후기이긴 하지만, 고대의 사유도 흥미로운 부분이 많은 것 같아요.
  • highseek 2011/10/06 13:57 #

    각 사회마다 시기는 조금씩 다릅니다. 전환이 일어나는 것도 대략적으로 석기-청동기 로 이어지는 전환기 정도쯤 되긴 하는데, 꼬집어 말하기는 뭐하고요.

    레퍼런스는 다시 좀 찾아봐야 되긴 하는데, 일단 기억나는 정도만 이야기해보겠습니다. 빠진 건 나중에 차차 추가하지요.

    고대의 여성성에 대한 사유는 꽤나 여러 문헌들에서 이야기하는데, 대표적으로 하나만 들어보겠습니다.
    The Masks of God-Primitive Mythology, Joseph Campbell, 1969
    사실 문헌보다는, Dordogne에 있는 Laussel의 바위 은신처에서 출토된 기원전 2만년 전 경의 들소 뿔을 지닌 여신 조각상이라든지, Lespugue에서 출토된 여신상을 보면 구석기인들이 자연의 변화와 생명 탄생 등을 여성 원리로 해석했다는 걸 알 수 있습니다. 10달의 수태기간, 자궁에서 흐르는 양수, 유난히 부풀어오른 복부 같은 걸 표현하거든요.

    왕 살해와 성화의 처녀에 관련해서는 아래 레오 프로베니우스의 저서들을 참고하시면 될 것 같습니다. 추가로 두무지와 인안나의 설화라든지, 오시리스와 이시스 신화를 같이 떠올려봐도 좋고요.
    Marchenaus Kordofan, Frobenius,

    그리고 모잠비크, 앙골라, 로디지아 등의 왕 살해 풍습은 비교적 최근까지 남아있었다고 합니다.
    Schicksalskunde im Sinne des Kulturwerdens, Leo Frobenius, 1932,

    에리흐 노이만은 Erich Neumann, ibid., pp.158-159 에서 사원은 원래 동굴에서 발전했는데, 이 동굴은 여성의 자궁을 상징화한다고 합니다. 동굴=자궁은 태초의 탄생 장소이며, 위대한 어머니 신에게서 우주가 태어난 곳이고, 죽음과 부활이 일어나는 곳이죠. 말타, 시실리, 사르디니아의 바위를 깎아 만든 무덤이나 지하 무덤은 대개로 자궁의 형태나 알 모양, 혹은 사람 모양을 한다고 합니다.(The Language of The Goddess, Harper Collins, 1991. p.158.)

    티에라 델 푸에고의 오나족 이야기는 티에라 델 푸에고의 우슈아이아 섬에서 태어난 루카스 브릿지(1874-1949)가 요약한 전설에서 가져왔습니다. 그가 이야기하는 전설에 따르면 쿠테타를 일으킨 남성들은 하인(hein)이라는 비밀결사를 조직했는데, 루카스 브릿지는 이 하인의 정식 회원이랍니다.

    오스트레일리아 원주민들에 자료입니다. 스펜서와 길렌의 보고인데, 성스러운 대상이나 의식, 주술적인 행위와 관련되어 지위가 상당히 높았다고 하네요.
    Franz Hacer, Zum Problem der VEnusstatuetten im enrasiatischen Jungpalaolithikum, Praehistorische Zeitschrift, XXXXXXI Band(1939-1940), pp 426

    Bronislaw Malinowski 같은 학자들은 자신의 저서에서, 상당수의 고대 농경문화권에서는 전통적으로 여성이 우월한 위치를 차지하고 남성은 잉여인간에 지나지 않았다고 보고합니다.
    The Sexual Life of Savages, Bronislaw Malinowski, 1929, pp 179-186

    마오리족의 신화는 Maori Myth and Tribal Legends, Antony Alpers, 1966 에 등장합니다.

    인류학적으로, 여성의 세계사적 패배 라는 단어가 있는데, 유명한 말입니다.

    "한편, 재화의 축적과 사적 소유, 정치권력, 부권의 확립과 강화라는 일련의 과정을 겪으면서 모권은 패배한다. 엥겔스는 모권의 전복을 여성의 세계사적 패배라고 단언했고, 이러한 여성의 세계사적 패배는 신화의 세계에서도 여신의 패배로 나타난다. '위대한 여신'의 몰락에 대한 해석은, 고대 인도 유러피언의 계속되는 침략으로 인한 여신 숭배의 감소 추세로 보여진다. (중략) 그 결과 처음으로 강간이 신화에 등장하고 위대한 여신의 상징이었던 뱀이 남성영웅들에 의하여 살해되는 신화의 전개가 시작된다"
    - 단군신화에 나타난 여성상과 여성원리에 나타난 통일이념, 최문형, 2001

    이따가 퇴근하면 좀 더 추가하지요 :)
  • mori 2011/10/07 03:06 #

    으앗 이렇게 자세한 레퍼런스를 달아주시다니 감사합니다! 켐벨은 제가 직접 읽어보진 않았는데요 말리놉스키는 상당히 좋아하는 편입니다요. 사실 그리스도교에서 성모 마리아와 막달라 마리아의 의미가 강조되었다가 침잠한 것에 대해서도 관심이 많습니다. 하지만 마리아 공경 같은 경우는 너무 큰 주제라 제가 다루기가 어렵더라고요. 엥겔스도 최근에 읽었는데 매우 재밌었고요, 말씀하신 부분을 찾아봐야겠네요. 자세한 자료 넘넘 감사합니다!
  • 다이모니아 2012/11/17 15:12 # 답글

    화가 나서 감정적인 대응을 하면 제대로된 논증을 하지 못한다는데 필이 꽂힙니다. 저는 이번학기 고중세철학과 여성학을 듣는데, 포스팅을 보고 많은 부분 다시 느끼네요'ㅁ'
  • mori 2012/11/18 01:06 #

    저에겐 아직 어려운 부분입니다. ㅠ 아무래도 학계에서 주장을 펼치려면 차분히 논증을 하는 게 필요한데 말이에요. 매우 좋은 수업을 듣고 계시군요. 혹시 조언해주실 게 있다면 언제든지 해주세요.
댓글 입력 영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