라이프로그


전근대의 양성구유자 인식 - 푸코의 <비정상Abnormal>에서 by mori

아직 이 책은 한국어로 번역이 되지 않았나보다. 지나가다님이 이 책이 동문선에서 <비정상인들>이라는 제목으로 번역된 적이 있다고 알려주셨다. 어제 수업시간에 푸코의 <비정상Abnormal>이라는 강연 모음집을 영역본으로 읽었다. 나의 관심사는 여전히 중세, 혹은 전근대의 섹슈얼리티. 특히 양성구유에 대한 역사적인 기록과 인식의 변화가 흥미로웠다. 관련 내용은 해당 책의 3장에 나오며, 1975년 1월 22일에 강연한 내용. 

그림 출처는 http://us.macmillan.com/book.aspx?name=abnormal&author=MichelFoucault 간단한 책 소개와 리뷰도 있으니 참고할 만하다.



푸코가 양성구유자의 사례로 드는 것은 두 가지 케이스다. 하나는 1601(기록은 1614-1625)년에 있었던 일로 "루앙 양성구유자the Rouen hermaphrodite"라고 불리는 사건으로, 마리 라마르키스Marie Lamarcis라는 이름으로 세례를 받아 여성으로 태어난 것으로 알려진 사람이 크면서 점점 남성화되었고, 남성의 옷을 입고, 심지어 세 아이를 둔 미망인과 결혼해 처벌받은 사건이었다. 이 사람은 자신이 점점 남성이 되면서 자신을 마르탱 라마르키스Martin Lamarcis라고 불렀다 한다. 구글을 돌려도 검색이 안 되는 것 봐서는 잘 알려지지 않은 사건인 것 같다.

결국 그는 법정으로 호출당했고 약제사와 의사는 그의 몸을 검사하고 남성의 흔적이 없다고 단언했다. 아내가 보는 앞에서 교수형 당해 태워지고 그의 재는 길가에 흩뿌려져야 한다는 선고가 내려졌다 (68). 여기에서 푸코가 주목하는 것은 처음에 라마르키스를 검진한 의학 전문가들과 달리, 사형 전에 다시 검진하게 된 의사 중 듀발(Duval)은 그에게서 남성의 흔적을 발견했다는 점. 듀발은 라마르키스에게서 남성의 특징을 발견하지 않은 다른 의사들과 논쟁을 하는 과정에서 섹슈얼리티에 대한 의학계의 직접적인 분석을 처음으로 드러냈다. 이전에는 의학에서 인간의 재생산 기관을 자세하게 다루지 않았다는 것. 듀발의 여성 자궁에 대한 설명을 후에 글을 따로 쓰는 것이 좋을 듯하다. 

라마르키스는 항소했고 받아들여진 것으로 (내가) 추측한다. 대신 그는 여성의 옷만을 입어야 하며, 여성이든 남성이든 성적으로 가까이 하지 말도록 선고가 내려졌다. 이 "루앙 양성구유자" 사건이 흥미로운 것은, 남성으로 변했다고 주장하는 이 "여성"에게 여성의 옷을 입을 것이 강요되었고, 여성이든 남성이든지 간에 아무도 성적인 접근을 허용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여성이 여성에게 접근하는 것을 금지한 것이 아니라, 이 여성에게는 어떠한 섹슈얼리티도 허용되지 않았다는 점이 흥미롭다고 푸코는 말한다. 여성이 여성과 함께 생활한다는 것이 죄가 된 것이 아니라 양성구유 자체가 문제가 된 것. 양성구유는 괴물(monster)였다. 여성과 남성이 뒤섞인 인간이라는 점에서 자연의 법칙을 거스르는 괴물 말이다(71).

하지만 백 년 후인 1765년에 있었던 사건은 달랐다. 이 경우는 앤 그랑장Anne Grandjean이라는 사람이 케이스로 역시 태어날 때 여성으로 이름지어져 세례까지 받았으나 14세가 될 때 즈음에는 여성에게 관심을 가지기 시작했으며 남성의 옷을 입었고 리옹에 살면서 심지어 여성과 결혼까지 하였다. 그랑장도 역시 법정으로 소환당했으며 의사에 의해 여성이라고 결론내려졌다. 그는 결혼의 신성한 계약을 더럽혔다는 글과 함께 형틀에서 채찍으로 맞을 것이 선고되었다. 그랑장 역시 항소했고 풀려났는데 역시 여성의 옷을 입을 것과 다른 여성과 관계하지 않을 것이 선고되었다 (71-72). 

푸코는 이 차이에 주목한다. 우선 마리 라마르키스는 여성이든 남성이든 어떠한 성과도 성적인 관계가 없을 것이 선고되었다. 백년 후 앤 그랑장은 같은 죄목으로 붙잡혔지만 여성과 관계가 없을 것이 선고되었다. 여기에서는 여성이 여성과 관계를 하는 것이 범죄로 규정되었고, 앞의 양성이 섞인 괴물과는 달리 좀 더 복잡한 "죄까지 저지르는 괴물"이 되었다. 전자가 "괴물로 존재하는 것the monstrosity of nature"로 처벌받았다면 근대로 갈 수록 괴물로 행동하는 것"a monstrosity of conduct"이 문제가 되었다는 점. 

게다가 앤 그랑장의 경우 변호사는 그녀가 진짜 양성구유자라는 점을 입증하려고 했다. 라마르키스 건과는 달리 이제는 괴물로 존재하는 것 자체가 문제가 되기 보다는 괴물로 행동하는 것이 더 문제시되었다는 점. 물론 둘을 완전히 분리할 수는 없겠지만, 섹슈얼리티의 인식이 변화했다는 점. 푸코가 좋아하는 불연속성.

내가 재밌었던 마리 라마르키스와 앤 그랑장의 처벌이 달랐다는 점이었다. 특히 후자의 경우 여성이 여성을 만난다는 점 자체가 문제시되었다는 점이, 중세의 하나의 성별 모델에서, 근대로 갈수록 남성과 여성이라는 구분된 성별 모델로 변하는 모습을 보여주는 게 아닐까. 전자에서는 섹슈얼리티 자체가 문제가 되었다면 후자에서는 하나의 섹스가 같은 섹스와 섹슈얼리티 관계였다는 점이 문제가 되는 것.

중세 얘기를 잠깐 하자면, 여성이 남성의 옷을 입은 것은 범죄로 여겨졌다. 잔 다르크(Jean d'Arc, 1412-1432)가 마녀라는 죄목으로 처형당했을 때 문제시 된 것도 그가 여성임에도 불구하고 남성의 옷을 입었다는 점이었다. 그래서 그가 화형당할 때에도 여성의 옷을 억지로 입혀서, 성별의 구분을 회복하려 했던 것.


하지만 아이러니하게도 초대 교회나 중세 초기의 경우, 성폭행 당할 위험을 피하고 수련을 더 쉽게 하기 위해 여성 수도사들은 남성의 옷을 입고 여성임을 숨기곤 했다. 섹슈얼한 문제가 없었던 것도 아니다. 남성들은 여성과 함께 수련하는 점에서 성적인 죄를 저지를까봐 경계를 했고, 여성들이 배제되는 상황으로 연결되곤 했다. 물론 여성과 여성이 섹슈얼하게 얽히는 문제가 크게 부각된 것은 아니지만 적어도 중세 후기에서 여성과 여성의 섹슈얼적인 관계가 아예 없었던 것은 아니고.

양성구유라는 개념. 역시 <젠더 해체하기Undoing Gender>에서 처음 보았지만 작년에 청강한 학부 수업에서도 다룬 부분. 당시 수업에는 "양성구유", 더 정확히는 남성과 여성의 재생산기관을 모두 가지고 있는 사람이 직접 수업에 참가해서 자신의 경험을 나누었다. 남성, 혹은 여성이라고 100% 완벽하게 태어나는 사람만 있는 것은 아니고, 상당 수의 사람들이 둘의 특징을 모두 가진 채로 태어난 다는 점이 충격이었달까. 하지만 일단 나조차 여성호르몬이 부족하다는 진단을 받았으니 일단 먼 산 먼저 바라보고.


17세기 양성구유자를 그린 그림. 역시 위키에서 데려온 그림. http://en.wikipedia.org/wiki/File:Hermaphrodite_engraving_circa_1690.jpg

핑백

  • mori : 마리 라마르키스의 사례 - 양성구유자 2012-11-05 03:49:57 #

    ... 3주 전에 푸코의 &lt;비정상Abnormal&gt;에 소개된 양성구유자들의 사례에 대해 썼었는데 수업준비하다가 발제를 맡은 아티클에서 같은 내용을 더 자세히 다루고 있어서 덧붙여본다. 두 케이스 마리 르 ... more

덧글

  • 파리13구 2012/10/18 07:51 # 답글

    푸코와 관련된 흥미로운 글 잘 봤습니다.

    소개하신 책은 한번 읽어봐야 겠습니다. ^^
  • mori 2012/10/18 11:32 #

    감사합니다. 저에게 푸코는 어려운(?) 학자인데 매력이 넘치는 것도 사실이라 계속 읽게 되는 것 같아요!
  • 지나가다 2012/10/18 22:36 # 삭제 답글

    오래전에 <비정상인들>, 동문선 출판사로 번역되었습니다. 참조하시길
  • mori 2012/10/18 23:31 #

    알려주셔서 감사합니다. 글도 수정을 했습니다. ^^
  • highseek 2012/10/25 11:13 # 답글

    고대 이집트의 여성 파라오들이 일부러 남성의 옷을 입었다는 걸 생각해보면 재밌네요 ㅋㅋ
  • mori 2012/10/25 12:12 #

    오오 그런 일도 있었군요! 양성구유가 되길 원했던 걸가요 ㅎㅎㅎ
  • highseek 2012/10/25 12:22 #

    맞아요 ㅋㅋㅋ 이집트 종교 관념적으로 '파라오'는 남성성과 여성성을 모두 갖춰야 했거든요. 따라서 파라오는 한 사람이 아니라, 결혼한 한 쌍을 뜻하지요. (보통 파라오 하면 남성 파라오만 생각하는 경향이 있는데, 고대 이집트인의 관념으로 보면 이는 잘못된 것)

    그래서 남자는 혼자 파라오가 될 수 없고 반드시 결혼을 해서 여성 파라오와 같이 있어야 했어요. 그러나 여자는 결혼하지 않아도, 남성의 옷을 입고 겉모습을 남성처럼 꾸미는 것만으로 남성성을 지닐 수 있다고 생각했죠. 여성성은 남성성을 창조할 수 있지만 남성성은 여성성을 창조할 수 없다는 관념도 있었고, 여성성은 속, 그리고 남성성은 여성성을 둘러싸고 있는 껍질과 같이 여겼어요. 속은 바꿀 수 없지만 겉은 바꿀 수 있는 거지요.
  • mori 2012/10/25 12:33 #

    매우 재밌네요. 어찌보면 이집트의 그런 파라오관이 초대 그리스도교의 이상적인 몸(?)과도 비교될 수 있을 것 같군요. 이 몸은 남성도 아니고 여성도 아니었지만 어찌보면 남성과 여성의 특징을 고루 갖춘. 사실 그리스도교의 하나님이나 예수가 배타적인 남성성으로 드러난 게 오래된 이야기는 아니죠.

    알려주셔서 감사합니다!
댓글 입력 영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