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혼을 안 한 성녀도 결혼 문제에 관심이 있었다. 혹은 결혼을 안 했기 때문에 결혼에 대해 모르므로 오히려 결혼에 대해 신의 목소리를 대변할 수 있었다? 중세의 성녀들은 대부분 결혼을 하지 않은 상태였지만, 그렇다고 해서 일반 신도들의 결혼문제 상담, 출산관련 문제에 대해 아예 접어둘 수는 없었다. 이것은 아마 현대의 미혼 성직자들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종교가 어떻든지간에 말이다.

16. QVOD CONSANGVINEI IN CONIVGIO NON COPVLENTVR
지금까지 성녀 힐데가르트(1098-1179)에 대해서 글을 두 편 썼는데, 여성이 왜 성직자가 될 수 없는지와 왜 이브라는 여성이 뱀의 꾐에 넘어갔는지에 대한 교회 내 여성의 지위 혹은 인식에 대한 글이었다면 오늘 다룰 부분은 좀 더 현실적인 느낌. 힐데가르트가 본 결혼관. 특히 왜 우리가 (가까운) 친척과 결혼하면 안 되는지에 대한 해석이다. 일단 매우 독특해보이고 당대의 의학적인 지식과도 연결된 것 같아서 소개해본다.
관련 내용은 힐데가르트가 쓴 스키비아스Scivias 중 두번째 비전Visio Secvnda의 16장과 17장. 라틴어 원문의 출처는 교수가 복사를 한 책의 일부를 본 것이라 불분명하고, 해석은 직접 했으므로 오타나 실수가 있다면 당연히 다 내 책임이다. 사실 수업시간에는 영어로 강독을 하는데 가끔 한국어로 번역하는 게 더 어려운 것 같다. 난 한국어가 모국어이므로 번역할 때에는 웬지 말이 되게 써야할 것 같애(영어는 안 그러냐?). 이 내용은 특히나 더 한역하기가 어려워서 영역을 참고했다. 영역은 Paulist Press에서 1990년에 나온 영역이고 골룸바 하트Mother Columba Hart와 제인 주교Jane Bishop이 번역했다.

그림은 힐데가르트의 스키비아스에 실린 그림. 힐데가르트의 비전을 그림으로 나타낸 것이다. 본문과 직접적인 상관은 없다. 출처는 다음과 같다. http://www.migraine-aura.org/content/e24966/e25413/e25429/index_en.html
16. QVOD CONSANGVINEI IN CONIVGIO NON COPVLENTVR
Nec etiam uolo ut notitia sanguinis in coniugio se commosceat, ubi ardor amoris in consanguinitate nondum attenuatus est, ne impudens amor in recordatione consanguinitatis ibi oriatur, sed sanguis alieni populi confluat, qui iam nullam notitiam consanguinitatis in se ardere sentit, quatenus humana disciplina in opere illo sit.
16. 친척(같은 피를 지닌 사람)끼리 결혼하여 맺어지면 안되는 이유에 대하여.
나(여기서는 하나님을 의미)는 친인척관계로 이미 몸을 섞은 사람들이 결혼해서 자신들끼리 (몸을) 섞는 것을 원치 않는다. 왜냐하면 결혼을 한다 할지라도 친인척 관계에서 오는 사랑의 열기가 약해지지 않기 때문이다. 따라서 친인척 관계 안에서 사람들이 경솔하게 사랑하지 않도록 해야한다. 친인척이 아닌 사람들의 피가 같이 흐르게 해야하며 사람들이 자기 안에서 친척관계에서 몸을 섞은 것을 느낄 수 없게 해야한다. 이와 같이 해야 인간의 규범이 제대로 이뤄질 것이다.
17. EXEMPLVM DE LACTE
Quia lac semel uel bis coctum saporem suum nondum perdidit, cum septima uel octaua uice coagulatum et coctum uires suas deserens iam delectabilem saporem nonnisi in necessitate habeat. Et ut notitia consanguinitatis in propria coniuge nescienda est, ita etiam et notitia consanguinitatis eiusdem coniugis in aliena copiula abhorrenda est ; nec se homo ad huiusmodi copulam coniungat, sicut et ecclesia in doctoribus suis prohibet qui ipsam in multa sollicitudine et homore stabilierunt.
17. 우유를 예로 들어
한 번 혹은 두 번 데운 우유는 그 맛을 잃어버리지 않지만, 일곱 번 혹은 여덟 번 데우고 이미 응축한 우유는 그 힘과 좋은 맛을 잃어버릴 것이고 정말 필요할 때가 아니면 맛이 없을 것이다. 따라서 사람들은 몸을 이미 섞은 친인척과 몸을 섞지 말아야 말아야하며 파트너의 친인척이라 할지라도 몸을 섞는 것은 마땅히 혐오해야 한다. 사람들은 이런 방식으로 결혼의 연을 맺으면 안되며, 의사들이 이런 결혼을 금지하는 것을 책임과 영예 안에서 확립시켰듯이 교회는 이를 금지했다.
왜 친척과 결혼하면 안 되는 지에 대해 우유를 예로 들어 설명한 것이 좀 독특했다. 친인척 관계는 이미 피가 섞였기 때문에 친인척과 결혼하면 피가 여러 번 또 섞이게 되고 그러면 맛이 없...는게 아니라 하여튼 안 좋다고. 이 부분에서 교수는 힐데가르트가 있던 수도원에서 우유를 데워야 하는 레시피가 있는걸까 의문을 제기했는데, 결론은 현대인이 그러는 것처럼 커피나 차를 마실 때 우유를 데워 넣어야 해서 이렇게 말한 게 아닐까했지만 커치나 차나 중세에 있을리가 없고 허브차 정도일까나...?
우유에 비유한 것은 그 자체만으로도 특징적인게, 중세 의학에서 우유나 피는 동일한 성분이 형태만 바뀐 것으로 설명되었기 때문이다. 물론 여기에 나온 우유는 가축의 젖을 말하는 것이겠지만, 사람의 경우 모유나 정액이나 모두 피가 바뀐 것이라 인식되었다. 피가 여러 번 섞이고 성교로 인해 열기를 받는 것이 안 좋다는 것을 우유가 여러 번 데워지는 것을 빌어 설명한 것은 당시의 의학이나 과학적인 설명과도 연관된 것으로 보인다.
이 부분 다음에서는 친척과 결혼하는 게 안 좋다면 왜 구약에서는 친인척이 결혼했는가에 대한 대답이었는데, 이 글에서 번역은 따로 하지 않았지만 설명이 독특하긴 했다. 묘하게 유태인을 까는 부분이기도 한데, 예수가 오기 이전에는 유태인들이 완악해서 참을성이 없었기 때문에, 또한 이방신을 섬기는 다른 부족과 결혼하면 문제가 있기 때문에 어쩔 수 없이 친척끼리 결혼해서 그 안에서 사랑을 키웠다.그런데 예수가 와서 사랑을 전파했기 때문에 이제 친척과 결혼 안 해도 사랑이 있으니 다른 사람들과 결혼해야 한다. ...응???
라틴어 원문에서 주목할 것은notitia라는 단어. 넓게 보면 "지식, 알고 있음"이라는 의미를 지니고 있지만, 그 중에서도 특히 몸으로 아는 지식carnal knowledge 특히 성교性交를 일컫기 때문이다. "알다"라는 동사가 "성교하다"라는 의미로 쓰인 대표적인 예는 그리스도교의 구약 성서. 그 중에서도 창세기 4장 1절. 다국어 성경은 http://www.holybible.or.kr을 참고했다 .
킹제임스 버전 성경은 이 구절은 다음과 같이 영역했다.
And Adam knew Eve his wife; and she conceived, and bare Cain, and said, I have gotten a man from the LORD.
여기서 "knew"는 단순히 알았다는 것보다는 성교했다는 의미이고 현대 성경 또한 후자의 번역을 선택했다.
어쨌든 notitia란 단어는 성교와 연관된 단어라 한글로 번역하는 데 좀 애를 먹었다.
흥미로운 것은 스키비아스의 영역찬에서는 이 carnal knowledge in cousin-ship 를 그냥 blood relatives로 번역했다는 점. 즉, notitia의 의미를 옮겨 싣지 않고 그 의미만 통하게 했다.
참고로 이 내용 면에 있어서 현대인들의 눈으로 보기엔 동정을 지켰던 힐데가르트가 결혼이나 성교에 대해 다루는 게 이상해 보일 수도 있을 것 같다. 굳이 동정을 지켰기 때문이 아니더라도, 당시 사회관습을 볼 때 여성이 이런 성적인 문제에 대해 얘기하는 것 자체가 이상할 수도 있고. 당시에도 그렇게 생각을 했던 사람이 있었는지, 다음 18장의 마지막에서 신은 힐데가르트의 입을 빌어 친절하게 설명해준다.
Ego enim opus istud per hunc hominem edissero, cui idem opus in homine ignotum est et qui sermonem istum non ab homine, sed a scientia Dei accepit.
나(하나님)는 사람들간의 근친혼 금지에 관해 힐데가르드의 입을 빌어 설명했다. 힐데가르트는 이런 사람의 일에 대해서는 전혀 알고 있지 않으며, 그녀가 설명하는 것은 사람의 지식이 아닌 나 신의 지식으로부터 받은 것이다.
여기서 신은 힐데가르트가 인간의 결혼에 대해 말하는 것이 이상하지 않다는 것을 설명할 뿐더러, 오히려 힐데가르트가 동정녀이고 이런 일을 알 수가 없기 때문이 이런 이야기를 한다는 것 자체가 그녀가 받은 환시나 성경해석이 신으로부터 온 게 틀림없다는 것을 증명한다는 점을 암시하고 있다.
그나저나 이번 포스팅 정말 오래 걸렸다. 이제 점심먹으러 가야겠다. 우유는 안 먹어...
덧글
본문에 소개하신 그림은 음반 Ordo Virtutum에서표지로 사용하기도 했던 그거네요. 힐데가르트 성녀네 수녀원에서는 우유를 데워서 약이나 보양식쯤으로 먹지 않았을까 생각해봅니다. (부처님도 우유를 그런 용도로 쓰신 적이 있죠.)
성 아우구스티노가 쓴 자유의지론에서도 성경 구절을 거의 인용하지 않고 논리적으로 설득하려고 애쓰죠. (그 탓에 읽는 사람은 아우구스티노의 논리를 제대로 이해하지 못하면 글 전개를 못 따라가는 사태가...) 이 환시에서도 (비록 부분적인 인용이지만) 비슷한 느낌이 듭니다. 게다가 화자를 하느님이라고 하는 글임을 생각하면, 매우 논리적으로 설득하려고 하는 느낌입니다.
아우구스티누스는 개인적으로 별로 안 좋아던 성인인데 쓰신 걸 보니 매우 재밌을 것 같네요! 주석작업 비교해도 재밌을 듯! 성녀 힐데가르트가 학자로 인정되지 않은 것 같아 아쉽네요;; 여성성인 중 학자는 가타리나와 데레사 둘 만 있었던 듯 한데요. 언제나 답글 감사합니다!
여성학자라기에 처음에 잠깐 혼동했습니다. 영어로 doctor of the church라고 하는 거 말씀이죠? 한국 천주교는 이걸 '교회박사'라고 번역합니다. 교황님이 지난 10월에 힐데가르트 성녀를 교회박사로 인정하셨어요 ^^;;
저도 라틴어 전공자도 아닌데 뜻만 잘 이해하면 되지...하고 넘어가려고 합니다. 기왕 배우는 김에 발음도 신경 쓰려고 했더니 머리가 터지더군요 (____)
라틴어 발음;; 라틴어를 가르쳐주신 선생님분들 중에 세 번째 분이 독일식(?)으로 발음하셔서 그렇게 발음하는데 익숙해졌는데 여기오니 또 달라져서 멘붕;; 전 그냥 한국식(?)으로 읽습니다. 한국어 하는 것 같을 거에요. 머리 용량을 늘리고 싶어요. ㅠㅠ
중세의 우유는 당연히 유지방 처리같은게 되지않으니 몇번 끓였다 식혔다를 반복하면 바로 몽글 몽글 리코타 치즈처럼 물쳐지는 경우가 많고 (실제 어떤 종류의 치즈를 만들때 우유를 데우는 과정도 있으니), 그래서 우유와 혈액이나 정액같은 인체의 유체성분을 유사 비교하면서 우유의 이 현상에 의거한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듭니다.
제가 따라다니는 Esperos님과 두분이 나누는 대화에서도 많이 배웠습니다.
그나저나 개인적으로 리코타 치즈는 한 번 만들어보고 싶더라고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