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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덕의 역사 - 중세 화장법은 남성이 작성했다? by mori

여성의 화장법에 대한 책은 기중에도 많이 나와있지만, 역사적인 기록으로도 접할 수 있다. 중세에도 여성의 화장법에 대한 책이 있었다. 그것도 여성과 관련된 의학서적의 한 부분으로 존재했다. 트로툴라(Trotula of Saliano, 11-12세기)라고 알려진 여성은 의술로 유명했고 직접 의학에 대해 글을 쓴, 중세의 거의 유일한 여자 의사인데 그가 묶은 책 중에 <여성의 화장에 대하여De Ornatu mulierum>라는 제목의 글이 있다. 시쳇말로 하자면, 코덕이 쓴 글인 셈이다. 화이트닝이나 염색, 피부 관리에 대한 조언이 실려있는데, 내가 요즘 읽고 있는 책에선 이 책이 남성에 의해 쓰여졌다고 주장을 해서 신기했다. <여성의 화장에 대하여>는 트로툴라가 따로 책으로 묶어서 내기만 했을 뿐 그가 직접 작성했다는 증거는 없는 것으로 알려졌는데, 그린Monica H. Green은 여기에서 더 나아가 <여성의 의술을 남성화하기Making Women's Medicine Masculine: The Rise of Male Authority in Pre-Modern Gynaecology>라는 자신의 책에서 이 코덕책이 사실 남성에 의해 작성되었다고 주장한다. 즉, 이 유명한 중세의 코덕은 남자라고.

중세에 의사로 활동했던 트로툴라의 그림. 그렇다고 해서 중세에 여자 의사가 많았던 것은 아닙니다. 오히려 트로툴라가 매우 예외적인 케이스.

본문과 관계된 화장법에 대한 그림은 아니지만, 트로툴라의 책에 소개된 의학지식 중 월경 관련한 부분이라고. 좌욕을 하는 걸까요? 두 그림 다 출처는 http://menstruar.blogspot.com/2010/11/trotula-de-salerno-medica-medieval.html 월경에 대해 모아놓은 싸이트인 것 같은데 스페인어(자늑님이 스페인어라고 알려주셨습니다!)인게 함정. 나중에 신경써서 참고해야겠다. 


<여성의 화장에 대하여>는 여러 재밌는 내용을 담고 있다고. 예를 들어 뭘 섞어서 발라야 하고 어떻게 그 성분을 지지고 볶고 말리고 해야하는 지에 대해 매우 상세하게 적고 있다. 심지어 여성이 성관계 전에 얼굴과 손, 가슴, 성기에 향수를 섞은 물을 바르고 파우더도 바르는 내용도 상세하게 다루고 있다. 아래의 표는 P. Cavallo, M. C. Proto, C. Patruno, A. Del Sorbo, M. Bilfulco의 "The First Cosmetic Treatise of History. A Female Point of View"라는 리뷰 아티클에서 만든 표의 일부. <여성의 화장에 대하여>에 나오는 각종 화장관련 용어를 정리한 것. 이것만 해도 당시 화장법이 매우 자세하게 서술되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참고로 이 논문은 <여성의 화장에 대하여>가 여성에 의해 작성되었다 가정하고 있다. 




모니카 그린이 <여성의 화장에 대하여>가 남성에 쓰였다고 추정하는 것은 일단 이 책의 서문에서 추정한 것이다. 서문에서 저자는 이 책이 왜 중요한지에 대해 설명하면서 자기가 화장법에 정통한 여성들에게 이것들을 배웠다고 말한다. 라틴어 본문은 다음과 같다. 괄호와 그 안의 내용은 생략했다. 

Huius in circuite eationis ego regulis melierum quas in artificiali decore faciendo facetas inueni meam rationem muniui, ut in singulis tam ad ornatum facieti quam ceterorum membrorum mulierum doctus reperiar, ita vt cuillibet mulieri nobili seu etiam graticie de huius modi artificio aliquid a me querenti iuxta sui qualitatem et modum conuenientis suum adhibere consilium ut et ego ladem et impa exoptatum ualeat consequi effectum.

이 부분의 영역은 다음과 같다. 그린의 같은 글에서 빌려왔다. 

In consideration of this fact, I fortified my understanding with those precepts of women whom I found to be clever in the art of cosmetics so that I would be found learned in all things pertaining as much to the adornment of the face as to the other members. 

여기서 중요한 부분은 저 빨간색 단어. "배웠다"는 의미의 doctus는 동사 중에서도 남성형 분사에 속하기 때문이다. 즉, 저자 자신이 자신을 지칭하면서 doctus라는 남성형을 쓴 게 이 코덕이 남성이라는 것을 말한다고 주장한다. 

물론 그린은 단지 이 단어 하나 때문에 저자가 남성이라고 확신하는 것은 아니다. 다른 증거와 당대 부인과 서적을 참고하여 그린은 이 저자가 남성일 뿐 아니라 이 책 자체가 남성들을 위해 쓰여진 책이라고 주장한다. 여성의 화장법에 대한 책이지만 남성에게 지식을 전달하기 위한 책이라는 게 그의 주장. 그렇다면 화장, 그것도 여성의 화장이란 여성에게 한정된 주제를 다루면서 왜 남성 독자들을 위해 책을 썼을까. 그것도 위의 서문에서도 언급했듯이, 주변의 화장 잘하는 여성들에게 조언과 도움을 얻어가면서 말이다. 

그린이 보기에 이것은 당대 의학서적의 목적과 연결되어 있다. 12세기부터 부인과 관련 서적들이 본격적으로 작성되었고, 대부분 남성 의사에 의해 쓰였다. 물론 중세에 여자 산파들이 활발하게 활동을 했지만 정작 여성의 몸에 대해 지식을 생산하고 순환시키는 것은 대부분 남성 의사에 의해서였다. 여성이 경험이나 구전을 통해 알고 있는 것을 글을 통해 유용한 지식으로 만드는 것은 남자. 여성의 몸에 대한 지식도 남성에게 의존해야만 글로 쓰여지는 당대의 현실을 반영하는 것이라고. 

독자 또한 남성이다. 대부분의 여성들은 글을 읽을 수가 없었다. 이런 서적이 생산될 수 있었던 것은 여성이 일종의 신비감을 가진 타자the other였기 때문이다. 중세때까지도 여성의 재생산 기관이나 몸은 미지의 영역이었다. 미지의 영역이지만 동시에 "알아야 할" 영역. 남성들 사이에서 전해지는 여성의 신비. 그리고 지식의 생산. 아무래도 푸코Foucault 냄새가 폴폴 나는데?! 



여기부턴 그냥 여담.


내 학문 분야와 화장품은 거의 관계가 없다. 심지어 학문과 화장의 거리는 멀다. 얼마 전 지도교수가 굉장히 큰 깨달음을 얻었다는 듯이, 화장을 하는 여자라고 공부를 열심히 안 한다고 생각하는 것은 편견인 것 같다고 말해서 나를 경악시켰다. 그럼 그 전에는 화장하는 사람은 공부 열심히 하지 않는다고 생각했다는 거냐;;

나는 화장을 못 하기도 하고 안 하기도 한다. 하지만 코덕이 꼭 화장을 해야하는 건 아니잖아요. 이 책의 저자가 남자인지 여자인지 확실하지 않지만 이렇게까지 여자들의 화장법에 대해 많이 안다면 코덕이라고 할 수 있는 거잖아요. 나 역시 (연애와 마찬가지로) 화장은 글로 배웠습니다. 이글루스에서 제일 열심히 보는 건 음식밸리와 패뷰밸리에요. 그런 의미에서 이 글은 패뷰밸로 보냅니다. 패뷰밸리에 글 하나라도 꼭 올려보고 싶었어요. 엉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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덧글

  • 2012/11/23 08:42 # 답글 비공개

    비공개 덧글입니다.
  • 2012/11/23 10:03 # 비공개

    비공개 답글입니다.
  • atom 2012/11/23 16:09 # 삭제 답글

    저도 화장품 분야에 대하여 이론만 강합니다. 아하하하. 패뷰밸리 열심히 보지만 실전은 음...
  • mori 2012/11/24 04:30 #

    저도 실천은 잘 못해요 흑흑 이론만;; 그래도 우리 열심히...!
  • mori 2012/11/24 04:29 # 답글

    앗 두번째 덧글 남겨주신 분 제가 버튼 잘못 눌러서 삭제되었어요 ㅠㅠㅠㅠㅠ 넘 죄송해요 ㅠㅠㅠㅠㅠ. 댓글 달려고 했었는데 ㅠㅠㅠㅜㅜ 죄송한데 한 번 더 남겨주세요 ㅠㅠㅠㅠㅠㅠ 스페인어로 곧 고치겠습니다. 댓글 남겨주셔서 감사한데 실수로 지워서 죄송해요.
  • 자늑 2012/11/24 11:33 #

    억 괜찮아요 저도 그 실수를 방금 했답니다... 길게 썼는데! 핸드폰으로 덧글 남기려니 힘드네요^^;; 저자의 성별은 잘 모르겠지만 제 생각에도 독자는 남성같아요. 여성을 타겟으로 썼다면 이미 주위에서 기초 지식을 습득했을텐데 하나하나 세세하게 쓸 필요는 없었겠다는 게 제 생각! 아 그리고 스페인어라는 건 구글 번역기가 알려줬어요^^ 또 온김에 또 읽었는데 정말 흥미로워요. 저는 얼굴에 바를 줄만 알았는데 말이죠! 다시 한 번 좋은 글 감사드립니다;)
  • mori 2012/11/24 13:54 #

    앗 넘넘 감사드립니당! ㅎㅎ 저도 저자가 남자일 것 같아요! 댓글 다시 남겨주셔서 넘 감사합니다. 저 싸이트 나중에라도 꼭 읽어보고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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