라이프로그


기말 프로포잘 by mori

드디어 내 대학원 생활 통틀어 날 제일 힘겹게 하던 퀴어이론 수업이 끝났다. 물론 완전히 끝난 것은 아니고 다음 학기에 또 같은 수업을 들어야 하니 한 달간의 유예기간을 받은 거랄까. 이번 학기 마지막 수업이었던 오늘, 다음 학기에 쓸 페이퍼에 대해 프로포잘을 발표하는 자리가 있었는데, 이 프로포잘 또한 내 대학원 생활에 길이 남을 정도로 매우 힘들게 낳은 아이다. 근데 내가 실행을 할 수 있을 지도 모르겠다. 종교학과에서는 이건 박사논문 감이라고 말할 게 영문학과 중심인 이 수업에서는 통한다는 게 유머.



퀴어이론을 다루는 이 수업에서 내가 쓰기로 계획한 건, 중세 여성 성인들의 호모섹슈얼리티. 주장은, 여성들의 신비주의적인 합일은 이성애적인 동시에 동성애적이다. 하지만, 이를 동성애, 퀴어라는 아이덴티티로 보기엔 무리가 있다. 당시의 젠더 개념은 one-sex model, 즉 여성과 남성이 상대적으로 다를 뿐 본질적으로는 같다는 의학/신학에 의존하고 있기 때문이다. 

사실 여성성인들의 동성애야 최근에 급부상한 주제이고 여성학이나 중세학의 여러 학자들이 다루기 시작했다. 예전에야 중세의 승려들이 금욕의 삶을 산 것이 비성애적asexual인 것으로 이해되었지만, 섹슈얼리티와 신비주의가 학계 내에 이슈화되면서 신과의 합일이 단순한 메타포가 아니라 섹슈얼리티로 연관되었다는 의견이 주목받기 시작했다. 다만 이전에는 이들이 사랑을 표현했던 하나님이 남자라는 가정하에 남자 승려의 경우 동성애 적인 것으로, 여성 승려는 이성애적인 것이라는 해석이 지배적이었다. 이들은 신비체험에서 하나님이나 예수를 신랑으로, 자신을 신부로 표현했기 때문에 특히 남성 승려의 경우 자신을 신부로 표현하는 것이 동성애적인 게 아니냐는 해석. 특히 우리 학교의 크라이팔이 예전에 주목했던 점이기도 하다. 크라이팔이 보기엔 남성 승려가 하나님/예수와 관계를 맺으려면 자신을 신부로 규정해야했고 이 감정은 동성애에 속하기 때문에 현대에는 문제가 될 수 있다는 것.

나는 여기에 불만이 있다. 남성 승려의 생물학적인 성이 남성이라고 해서 신과 합일을 할 때 동성애라고 규정할 수 있을까? 중세의 One sex model에 따르면 남성과 여성은 결국 정도의 차이일 뿐. 신은 남성 중의 남성, 즉 상 남자(?)기 때문에 인간 남성은 신과 비교해서는 오히려 여자에 가까운 쪽이 된다. 

여성의 경우도 마찬가지. 하나님이나 예수는 중세에 심심치않게 엄마, 혹은 여성으로 표현되었다. 특히 신의 자비가 강조될 때에. 그렇다면 자비로운 신과 합일하는 여성 성인이 성애를 표현할 때 굳이 이것을 이성애적인 것으로 규정해야만 할까? 특히 예수에게서 직접 젖을 받아먹는 신비체험을 하는 여성 성인들, 이것은 이성애적인 것일까?

그렇다고 해서 이런 여성 성인들을 동성애자로 규정하는 것도 마음에 안든다. 동성애자냐, 이성애자냐를 구분하는 것은 최근 퀴어이론에서 문제를 제기한 아이덴티티 문제와도 관련이 된다. 섹슈얼리티가 동성애, 이성애로 확연히 갈리는 것도 아니고 둘만 존재하는 것도 아니다. 오히려 중세 여성 성인들이 신비주의적인 자신의 체험을 성애적인 언어로 표현하는 것은 이성애나 동성애에 한정해서 다루기 어렵다. 동성애란 개념 자체가 근대에 생겨난 것이고, 근대는 남성과 여성을 질적으로 다르다보는 two sex model을 차용하고 있기 때문이다. 즉, 중세 성애적인 코드를 당시의 one sex model로 봐야할 필요성이 있다는 것. 이것은 이 수업에 참여했던 두 교수가, 퀴어라는 이름으로 모든 비이성애를 묶으려는 시도를 비판하는 것과 맥락을 같이 한다(고 믿고 싶다).

글로 정리가 안 되는 것을 보니 머리로도 아직 정리가 안 되었나보다.

어쨌든 탈 많았던 이번 학기 퀴어이론 수업은 마지막 발표자였던 마니페스토Manifesto를 읽는 것으로 마무리했다. 교수가 이 수업에 대해 마니페스토를 써오라 농담했던 걸 난 그대로 받아들여, 루터의 95개조 맨 뒷부분, 90번 조항부터 마지막까지를 리메이크해서 퀴어이론에 대한 나의 불만을 노래했다. 다음은 나의 마니페스토. 눈물의 마니페스토. 

90. To repress these arguments and scruples of the homosexuality by force alone, and not to resolve them by giving reasons, is to expose the professionals and the authors to the ridicule of their enemies, and to make students unhappy.
91. If, therefore, homosexuality discourses were preached according to the desire and physical satisfaction of the general people, all these doubts would be readily resolved; nay, they would not exist.
92. Away, then, with all those modern scholars who say to the people of different sexuality, "Queer, queer," and there is no queer!
93. Blessed be all those scholars who say to the people of different sexuality, "No future, no future," and there is no future!
94. Students are to be exhorted that they be diligent in following Fluid Sexuality, anti-reproduction, through more readings, complex models, and hell;
95. And thus be confident of entering into doctorship rather through many tribulations, than through the assurance of peace from superficial reading.

루터의 95개조 원문은 여기에 있다. http://www.theopedia.com/95_Theses 

이걸 읽기 시작하자마자 교수들이랑 학생들이 킥킥대는 것으로도 큰 만족. 물론 이걸 읽고나서 교수가 왜 하필 루터의 95개조냐고 물었을 때, 나도 모르게 진심으로 얘기해버렸던 것은 약간 후회. 나 루터 싫어. 왜 싫어? 걔 수녀들 엄청 무시했거든.


완전 종강은 아니지만, 오늘 나에게 주는 상. 살아남느라 고생했다. 토닥토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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