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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멜랑콜리의 색깔들 - 중세의 책과 사랑> by mori

우울할 때일 수록 힘을 내자. 중세의 책과 그 안의 감성에 대한 책이다. 어찌보면 중세의 변화에 대한 책이라고 말할 수도 있을 것 같다. 중세는 통상 <어둠의 시대Dark Age>로 불리지만, 사실 로맨틱한 결혼이나 기사도라는 말랑말랑한 감성이 유행하기도 하던 시대, 그리고 그 오랜 기간동안 그 안에서 변화가 없었을리가 만무하다. 르네상스만 낭만적인 게 아니란 말씀. 하지만 중세의 낭만이 가진 독특한 분위기는 있다.


자클린 세르킬리니툴레, <멜랑콜리의 색깔들-중세의 책과 사랑>, 김준현역, 문학동네, 2012. (정가: 16000원)




사실 중세, 특히 중세 후기를 내 전공으로 삼고있지만 워낙 마이너한 것, 중세 여성 그 중에서도 중세 그리스도교 여성, 그 중에서도 금욕 수행을 했던 중세 그리스도교 여성 성인을 연구하고 있기 때문에 중세의 일반적인 역사나 문학사에 대해서는 잘 알지 못한다. 심지어 교회사까지도.

이 책은 우연한 기회에 소개를 받게 되었는데, 이 책에서 중요한 부분을 차지하는 크리스틴 드 피장(Christine de Pizan, 1364-1430)이 중세의 독보적인 여성 인물이라 한국에 오자마자 읽기로 마음 먹었다. 크리스틴의 책 가운데  최근에 <여성들의 도시>가 번역되기도 했는데 선물 받았으나 아직 읽지는 못했다. 네이버 링크를 걸어둔다. <여성들의 도시>의 부분은 수업시간에 같이 읽은 적이 있다. 크리스틴 드 피잔은 성직자나 남성 권위자들의 여성 혐오를 거부하고 이에 반기를 들었기 때문이다. 크리스틴 드 피잔을 단순히 "여류 작가" 취급하는 것에는 반대하지만 당시의 시대상을 엿볼 수 있다는 점에서 가끔 그를 참고했는데, 이 책에서는 그를 전체적인 문학사조의 흐름 가운데 위치시켰고 그의 다른 부분을 알게 되었달까. 예를 들어, 크리스틴은 사제들이 여자를 거짓말쟁이, 변덕쟁이로 몰아가면서 이걸 프랑스어로도 쓰고 라틴어로도 쓴다고 비난하는데, 예전에는 사제가 그런 소리를 하고 다닌다는 것에 열받았다면, 이 책을 보고는 그들이 프랑스어와 라틴어 둘 다 사용한다는 점에 흥미가 생긴달까?

이 책에도 언급하듯이 중세는 사랑과 결혼의 시대. 텍스트의 또다른 창조와 작가의 탄생. 여기서 중요한 것은 역시 말, 혹은 글이다. 텍스트를 중심으로 한 중세, 특히 중세 프랑스의 분위기를 "말"하고 있다. 이야기, 글, 텍스트의 아름다움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지만 늙음을 한탄하는 시대. 더 새로운 게 쓰여질 수 없다는 한탄이 오히려 새로운 글의 바탕이 된 것 같다. 이 분위기를 "멜랑콜리"와 연결시킨 것도 흥미롭다. 내게 "멜랑콜리"는 프로이트의 "애도mourning"과 대비되는 구도 하에 부정적이고 나약하고 무기력한 단어가 되었는데, 중세의 이 분위기에 "멜랑콜리"가 덧붙여지면서 오히려 새로운 시대상, 중세 문학의 흐름이 되어 다른 글들이 창조되는 배경이 되었다는 점. 

이 책을 읽으면서 개인적으로 흥미로웠던 구체적인 부분은 아버지인 하나님과 아들인 예수의 구분이 본격적으로 시작된 게 14세기 들어서라는 점(p. 48). 결혼을 반대하는 논거로 책을 통한 영생이 언급되었다는 점(p. 206). 특히 후자의 경우가 흥미로운게, 내가 다루는 종교 텍스트의 대부분은 비결혼적인 영속으로 (당연하겠지만) 구원의 영원한 삶을 이야기하고 있기 때문이다. 약간 르네상스적이랄까?하고 이야기하면 또다른 편견일까. 그리고 자궁과 기억이 연결된다는 점(p. 207). 좀 더 찾아봐야겠다. 

그리고 직역에 초점을 맞추셨다는 <옮긴이의 말>을 읽고 고개를 끄덕였다. 나는 가독성에 좀 더 무게를 싣는 편..이라고 하기에 내가 너무 글을 못쓰기는 하지만 어쨌든 직역에 왜 더 충실했는지에 대해 쓴 부분이 좋았다. 

Women and the Book이란 책도 기억나고 크리스틴의 책도 읽고 싶어졌다. 타지에 있는 집에 갈 날이 얼마 남지 않았다. 


덧글

  • 요끌라 2012/12/22 22:22 # 삭제 답글

    안녕하세요. 요끌라입니다.
    우선 이렇게 알찬 내용의 블로그를 꾸리고 계신 줄 몰랐습니다. 앞으로 자주 들를 곳이 생겨서 기쁩니다.
    말씀하셨다시피 저자 세르킬리니-툴레는 멜랑콜리라는 감정이 14세기를 걸쳐 창조의 에너지로 작용했음을 감동적으로 그려내고 있습니다. 결혼에 대해서 말씀하신 부분 역시 흥미롭네요. 혹시 마저리 켐프를 공부 중이신가요? 아니면 빙엔의 힐데가르트? 저는 궁정식 사랑(amour courtois)에 관심을 가지고 있어서 저자가 책에 대한 사랑과 '사랑의 궁정' 사이의 관련을 만들어낼 때 정말 크게 찬탄했습니다. 이 책이 전체적으로 조각나 떨어져있던 텍스트들이나 역사적 정황을 참 능숙하게 tailor해내죠. 그럼에도 아쉬운 부분은, 문학적인 내용을 위해 역사적 정황을 통시적인 흐름으로 서술한다든가 하는 건 '선수들끼리..'라는 태도로 과감하게 생략해버렸기 때문에, mori님 같은 문학전공자가 아니면 이 14세기의 역사적 상황이나 분위기를 캐치하기가 좀 어렵지 않았을까 하는 겁니다. 어쨌든 책 역시 읽는 이의 깊이만큼 수용되는 것일테니까요. 제 책도 아닌데(어쩌면 제 책이 아니기 떄문에) 이렇게 좋은 글 통해서 고민을 공유해주신 점 깊이 감사드릴 따름입니다. 즐거운 저녁되십시오 :)
  • mori 2012/12/22 23:33 #

    아직 부족한 곳이지만 찾아주셔서 감사합니다. 아직 논문 주제를 구체적으로 잡지는 않았지만 마저리 켐프나 빙엔의 힐데가르드가 주요 연구 대상이긴 합니다. 저는 주로 종교적인 사랑에 대해 공부하고 있는데 크리스틴 드 피장을 통해 궁정식 사랑과 책, 혹은 텍스트로 연결될 수 있는 부분이 있는 것 같습니다. 좋은 책 추천해주신 것, 다시 한 번 감사드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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