라이프로그


현대가 세속화의 시대라면 중세유럽은 기독교의 시대이긴 했나? by mori

실로 오랜만에 읽은 종교학 책. 그것도 최근 서적. 중세와 르네상스의 유럽이 과연 사람들이 생각하는 것처럼 그리스도교 중심이었을까? 에 대해 반기를 드는 책이다. <중세와 근대 초기 유럽 지식의 장소들Locations of Knowledge in Medieval and Early Modern Europe: Esoteric Discourse and Western Identities>. 네덜란드 흐로닝언Groningen 대학에서 종교학을 가르치는 폰 슈투크라트라는 사람이 쓴 책이다. 



이 사람이 저자요. 사진은 저자의 홈페이지에서 퍼왔다. 이름은 특이하게 커쿠Kocku인데 한글로 어떻게 표시해야할 지는 모르겠지만 대충 영어로 "커쿠"라고 하나보다. 지도교수랑 아는 사이인지, 지도교수는 수업시간에 "커쿠"라고 그를 지칭했고 시간이 맞으면 스카이프로 초대해서 수업시간에 얘기나 들어보자고 하더라.




내가 하도 요즘 역사서나 여성주의 서적이나 중세 문헌만 보다가 오랜만에 읽은 (본격?)종교학 서적이라 그런지, 정말 부정하고 싶지만 이거 읽으면서 마음이 두근두근했다. 이런 책 오랜만이야! 이런 기분? 나 정말 공부 안 하는 날나리 대학원생, 종교학 서적 읽으면서 빨간색 펜으로 "ㅋㅋㅋㅋㅋ" 내지 "맞아맞아" 남발하며 읽기는 정말 드문데, 이 책은 그렇게 읽었다. 아니, 수업 시간에 아직 서문과 1,2장만 읽었으므로 아직 이 책을 대충 읽은 거라고밖에 볼 수가 없는데, 정말 앞부분 읽으면서 두근두근했다. 아니면 공부 원체 안 하다가 갑자기 책 읽어서 그런 걸 수도 있습니다.


사진 출처는 아마존. Kocku von Stuckrad, Locations of Knowledge in Medieval and Early Modern Europe: Esoteric Discourse and Western Identities, Brill, 2010

종교학의 최신 화두는 아니지만 현대 사회의 "세속화secularization" 문제는 그래도 현재까지 많은 관심을 받고 있다. 물론 한국이나 제3세계 국가 중에서 그리스도교가 비약적으로 성장했던 경우도 있지만(이제는 좀 지난 얘기가 되었고) "제1세계"라고 불리는 유럽 등의 나라는 그리스도교인의 숫자가 급격하게 하락하고 많은 교회가 문을 닫고 사제를 맡을 사람이 없는 등의 여러 문제를 겪고 있기 때문에. 

저자는 서문에서 이를 매우 깔끔하게 반박한다. 유럽이 그리스도교 영향 하에 있다Europe is Christian는 가정, 그리고 19세기 20세기 유럽이 세속화되었다라는 가정. 이 둘을 반박한다. 

물론 저 가정을 반박하는 논리는 기존에도 있었다. 일단 "종교"라는 개념이 걸릴 것이고(종교가 도대체 무엇이길래 종교가 사라지고 있다고 보는 것이냐), 아직도 영향력을 꽤 행사하는 종교 사례를 들 수도 있을 것이고, 현대에 종교가 작용하는 방식이 달라졌던 것이지 사라진 것은 아니라고 주장할 수도 있다.

그런데 저자는 특이하게도(내가 공부를 안 해서 나한테만 특이한건가?) 중세 및 르네상스 시대가 종교적, 아니지 그리스도교 중심이었다는 것을 반박한다. 세속화를 주장하려면 당연히 근대 이전에는 사회가 종교적이었다는 가정을 깔고 가는데 이 가정을 반박하는 것이다. 물론 저자가 유럽의 그리스도교 자체를 부정하는 게 아니라, 유럽의 종교사를 다루기 위해서는 종교단일화적monolithic 시선에서 벗어나 다원론pluralism으로 이해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다원화가 (비단 현대의 문제가 아니라) 중세에 중요한 문제였고 이를 놓친다면 유럽 사회를 일원론적인 그리스도교 중심사회로 볼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저자에 따르면, 유럽의 종교사를 제대로된 이해를 위해서는 종교 다원론a religious pluralism, 지식과 문화의 다원성a plurality of forms of knowledge and cultural domains, 이 둘을 염두에 두어야 한다. 

물론 여기까지는 기존에 있었던 주장일 수도 있다. 예를 들어 피터 브라운Peter Brown같은 경우도 초기 중세부터 그리스도교의 역사를 설명하면서 기독교들Christianities이라고 지칭한 바 있으니까. 하지만, 저자(이름이 어려워서 계속 부르는 것을 피하고 있다)가 더 특이한 것은 중세와 근대 초기의 밀교esotericism 전통을 들고 와서 당시 유럽에서 그리스도교가 단일하지 않았다는 점을 보여준다는 점. 물론 나는 밀교에 대해 관심이 별로 없다(근데 수업은 들어야 한다). 하지만 밀교라는 종교학의 주제가 오랫동안 학문의 영역에서 자의든 타의든 간에 벗어나 있었다는 점을 생각한다면, 이 전통을 가지고 종교사를 재정비하겠다는 것은 정말 특이하다. 너네가 모르겠지만 밀교 전통이 있었다! 이런 주장이 아니라 세속화와 종교 다원주의와 함께 설명한다는 점이. 그런데 설득력있다. 적어도 나에게는.

책에 대한 감탄만 늘어놓고 있는 것 같은데 저자는 1장 "유럽과 그리스도교 세계 내러티브: 단일화에서 다원주의로Europe and the Christendom Narrative: From Singularization to Pluralism"에서는 중세가 생각보다 그리스도교 중심도 아니었고 사람들이 다 그리스도교 신자에 신실하고 교리도 빠삭하지는 않았다고 주장한다. 

그렇다고 해서 저자가 중세의 그리스도교가 힘이 없었다고 보지는 않는다. 다만 우리가 현대의 세속화와 비교하기 위해 현대 이전의 사회를 설명할 때 유럽의 그리스도교가 마냥 순수pure하고 진짜real였던 것 마냥 가정하는 것을 비판한다. 물론 반대의 주장도 있다. 그리스도교가 유럽에 전파되었지만 당시 토종 종교 및 의례와 결합해서 "변질"되었다, 결국 그리스도교가 유럽에서 실패했다는 주장. 저자가 보기에 이 두 주장 모두 허점을 가지고 있는데, 그리스도교가 단일하다는 가정을 두고 접근했기 때문이다. 이를 설명하기 위한 각종 밀교 전통은 2장부터 소개될 터인데 안타깝게도 나는 밀교 자체에는 관심이 별로 없고 이 사람의 접근법에만 관심이 있어.

어쨌든 중세와 근대 초기에 상당했던 그리스도교 그리고 유대교 등 다른 종교의 밀교 전통을 들며 저자는 당시에 다원주의가 존재했다고 주장한다. 이렇게 많은 전통이 있다는 점을 인지하면, 르네상스에 갑자기 사람들이 "(그리스도교)신에 대한 관심"에서 "인간에 대한 관심"으로 홱 돌기 시작하고 따라 세속화가 시작되었다는 가정을 비판할 수 있다. 저자가 보기에는 세속화라는 단어 자체가 이데올로기적인 것이고 푸코의 권력관계 power relations과 밀접한 관계를 갖고 있기 때문에 이 단어가 쓰여지는 맥락 자체를 봐야한다. 

관심이 있지만 더 길게 쓰지는 못하므로. 저자는 다원성plurality와 다원주의pluralism을 구분하고, 자신이 중세와 근대 유럽을 설명하기 위해서 다원주의라는 개념을 선택한다고 말한다. 다원성은 여러 다른 종교가 공존하는 간단한 상황이고 다원주의는 차이를 어떻게 조직할 것이냐the organization of difference의 문제이다.

이 책의 세 가지 가정. 유럽 역사와 문화에 종교 다원주의가 있었고 대체 종교들이 존재했다는 것은 예외적인 게 아니라 평범한normal한 것이다. 종교적인 진리를 탐구하고 서로 다른 지식, 사회구조가 서로 소통하는 것은 유럽 문화의 특징이 되어왔다. 세상을 꿰뚫는 지식을 어떻게 얻을 것이냐를 두고 치열하게 벌어졌던 경쟁을 이해한다면 서구 담론에서 밀교의 역할을 알 수 있다. (22-23) (의역을 남발했다)

제일 웃겼던 부분. 중세가 생각보다 신실한(?) 시대가 아니었다는 것을 설명하기 위해 저자는, 16세기에 그리스도교 메세지를 제대로 이해하는 사제가 없다는 불평이 이미 있었고, 후퍼Hooper라는 주교조차 영국의 사제들 중에서 주기도문을 누가 썼으며 성서 어디에 있는지 아는 사람이 없을 거라 인정했다고 말한다. 물론 이 예시는 반칙이다. 교리를 제대로 이해못한다고 신실한(?) 그리스도교인이 아니라고 말할 수는 없으니까. 다만 저자는 우리가 중세에는 사람들이 그리스도교 열심히 믿었고 교리를 열심히 공부했고 지금과는 아주아주 달랐을 것이라는 생각을 깨고 싶었던 것으로 보인다.

2장의 제목은 "전통의 논쟁적 형성The Polemical Construction of Tradition". 아 도저히 번역이건 요약이건 못 하겠으므로 맨 마지막 두 문장만 직접 싣겠다. "Although there are identifiable continuities in the history of religions, these continuities do not necessarily constitute tradition. Instead, tradition is the evocation and application, if not the invention, of a set of continuities for certain identifiable purposes."

그나저나 예전에 영국 라디오 방송을 듣는데 퀴즈로 "예수의 제자가 몇 명?"이라는 퀴즈가 나와서 당황한 적이 있었다. 그런데, 답을 한 사람이 틀려서 더 당황했다. 일부러 그런 것인지는 모르겠는데, 그 진행자는 "13명"이라고 해서 틀렸다. 뭐 가롯유다랑 새 제자랑 둘 다 포함시키면 그렇게 대답할 수도 있겠지만, 그 진행자는 그렇게 심사숙고해서 말한 것은 아니었다. 

책을 사서 읽어볼까했는데 좀 비싸네. 흑.



덧글

  • 迪倫 2013/01/21 14:06 # 답글

    아, 재미있는 책이네요. 그러면 저 책에서 종교개혁은 어떤 식으로 설명이 되어있는지요? 설명대로라면 중세에 내제되어있던 다원주의가 정치적으로 구체화되는 현상인가 싶은 데요...
    저처럼 종교나 사상에 별로 웨이트를 두지않는 심플 머티리얼리스트에게는 상당히 어려울 것같은 기분도 들고...그렇지만 재미도 있을 것 같고...하지만 그러기에 너무 비싸고 ㅠ.ㅠ .....그래서 책 소개해주신 것 우선 감사부터 드립니다.
  • mori 2013/01/21 14:13 #

    앗 저야 말로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제가 읽은 부분까지는 저자가 가톨릭과 개신교를 따로 구분하지는 않는 것 같더라고요. 가톨릭과 개신교의 차이보다는 밀교/이단/이교도교와 그리스도교의 차이가 더 크다고 보고 이를 다원주의로 설명하려는 시도랄까요? 물론 저도 아직 책을 조금밖에 못 읽어서 ㅜ.ㅜ 수업시간에 또 읽게 되면 재밌는 부분 더 가져오겠습니다!
  • 迪倫 2013/01/21 14:25 #

    답글 감사합니다. 제가 원래 중세나 르네상스보다 조금 뒤의 근세(early mordern)에 관심이 많아서 종교개혁을 어떻게 해석하는 건지가 조금 궁금했습니다. 특히 종교개혁이 루터 외에도 각종 소위 그떄까지의 밀교/이단 종파가 모두 정치세력화 해서 전쟁에 뛰어들기도 해서 그런 의미에서 말입니다. 다음 후속편 기다리겠습니다 (압력은 아니구요 ^^)
  • mori 2013/01/21 14:40 #

    앗 early modern을 근세로 번역하면 되는 거였군요 @_@ 전쟁에 참여한다니 재밌는 부분이네요! 한 학기 내내 밀교에 대해 배울 예정이니 혹시 관련한 부분이 있으면 말씀드릴게요. 저도 많이 배우겠습니다, 잘 부탁드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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