라이프로그


엘리아데와 밀교esotericism의 관계 (수정) by mori

매우 재미없는 글이 될 것 같은 느낌적인 느낌이지만. 종교학의 거장이라 할 수 있는 미르체아 엘리아데(Mircea Eliade, 1907-1986)와 밀교esotericism의 관계. 특히 <영원회귀의 신화The Myth of Eternal Return 1954 (1971)>란 그의 책을 중심으로.







나는 이번 학기에 밀교Esotericism 수업을 듣는다. 수업 중에 이틀에 걸쳐 학생들이 밀교 관련 책을 소개하도록 배정이 되어있었는데, 거기에 소개된 작가들은 정말 내가 이름도 들어보지 못한 사람들이었다. 엘리아데 딱 한 명 내가 아는 사람이라, 염치 불구하고 매달려서 엘리아데 발표하게 되었다. 그런데 막상 엘리아데를 밀교와 연관시키려니 막막해. 책을 다시 열심히 봐도 정말 밀교랑 뭐가 연관되었는지 구체적으로 밝힐 수가 없는거다. 이 책과 함께 <성과 속The Sacred and the Profane, 1959>, <이미지와 상징Images and Symbols, 1961>, <종교형태론Patterns in Comparative Religion, 1964>도 부연설명하게 되어 있어서 열심히 읽었지만, 밀교랑 직접적으로 관련된 자료는 거의 안 나왔고. 결국 엘리아데의 다른 책 <오컬티즘, 마술, 문화 방식Occultism, Witchcraft, and Cultural Fashions, 1976>을 읽고 다른 2차자료를 읽어서야 겨우 이해를 했다.

일단 책의 내용을 매우 간단하게 소개하자면, 고대 인간에게는 태초의 창조를 반복하여 이룸으로서 시간을 구분하고 다시 회복하는 의례가 있었다. 이런 태초의 원형archetype을 재현하는 행위를 통해 의미없는 현실을 극복하고 고통을 극복한다. 하지만 현대인은 이런 재현에서 벗어나 역사를 창조함으로써 오히려 이런 회귀에서 벗어나고 나라가 무너지고 기강이 무너지고...(웅?) 그게 아니라 이런 영원한 순환에서 벗어나 자신들만의 역사를 창조하는 대신에 순환에서 얻는 안락함(?)을 버렸고 역사가 주는 압박, 고통에 시달리는 운명에 처했다.그렇다고 이런 원형이 현대 사회에서 아예 없어진 것은 아니었고, 원시 사회, 그러니까 옛날에 있었던 사회가 아닌 현존하는 원시사회나 유럽의 전통 농경사회에서 여전히 발견되며, 현대인들이 생각없이 저지르는 행위 중에서도 여전히 발견되는 것들.

책의 내용과는 별도로, 엘리아데가 밀교와 관련있다고 보는 점은 크게 세 가지. 첫번째, 엘리아데는 원래가 밀교에 관심이 있었다는 것. 헤르메티쿠스 문서Corpus Hermeticus를 졸업논문으로 선택하고 소싯적(?)에 인도에 가서 탄트라 수련을 했을만큼 원래 밀교에 관심있었다는 것. 그리고 두번째 융을 중심으로 한 에라노스Eranos 모임에 몇 번 참가한 적이 있다는 점. 세번째, 종교학자가 된 이후에도 학구적으로 관심이 있었다는 것.

나는 특히 세번째에 중점을 두었는데, 엘리아데가 원형archetype이라는 개념 자체를 실론의 형이상학자인 쿠마라스와미Coomaraswamy (1877-1947)의 원형 개념을 끌어다가 썼고, 그의 사상 전반이 르네 게논(René Guénon, 1886-1951)이라는 프랑스 형이상학자이자 작가의 영향도 많이 받은 것이 사실. 이 사람들은 그의 책에도 등장하곤 한다. 그리고 좀 웃긴 것은, <종교형태론>의 달과 섹슈얼한 의례를 설명하는 부분에 알리스터 크로올리Alister Crowly(1885-1947)가 등장하는데 민족학자로 소개된다는 점. 이걸 수업시간에 얘기하니까, 지도교수가 진짜냐면서 크게 웃었다. 크로올리가 민족학자라니...!   이 부분 수정합니다. 지도교수가 이 책에 소개된 것은 정말 인류학자였던 Crawley였고, Crowley와는 관계가 없다는 것을 지적했습니다. 이렇게 초보적인 실수를 하다니 아아아아...

그리고 <영원회귀의 신화>이 출간되고 22년 후인 1976년에 출간한 <오컬티즘, 마술, 문화 방식>이라는 책이 나온다. 이 책은 엘리아데가 기존에 썼지만 10년 이상 출판하지 못했던 강연이나 아티클을 모아서 출판한 책. 이 책의 4장인, "오컬트와 현대 세계The Occult and the Modern World"에 컬트와 밀교 관련 자료가 제시된다.




이 장에서 엘리아데는 예전과는 달리 오컬트가 흥하고 있으며 특히 미국에서 컬트 집단이 왕성하게 활동하고 있다고 말한다. 하지만 엘리아데가 보기에 오컬트는 크게 두 부류로 나눌 수 있는데, 한 집단은 미국에서 젊은 어중이떠중이(이렇게는 안 말했다)들이 기존 종교의 문제점도 잘 모르면서 대애충 일단 반발하고 보는 팝pop종교. 나머지 집단은 좀 더 중용적이고 전통적인 형태의 오컬트. 엘리아데가 바람직하다고 본 것은 후자이다. 엘리아데가 보기에 첫번째 집단은 근본없이(이렇게는 안 말했다) 긍정과 희망에 가득차서 리노바치오Renovatio (재생)가 마냥 올 것이라고 주장하기 때문에. 엘리아데는, 이런 리노바치오가 큰 붕괴 이후에나 올 것이라고 본, 르네 게논을 위시한 두번째 오컬트 집단이 더 맞다고 생각했다.

어쨌든 위에 까지는 엘리아데와 밀교가 밀접한 관련이 있다는 점을 보여준 셈. 하지만 나는 엘리아데와 밀교와의 차이를 강조하고 싶었다. 엘리아데야 그리스도교에 좀 치우쳐진 것은 사실이지만 그래도 문화와 시간을 가로질러 공통된 상징과 신화요소와 의례의 특성을 밝히고자 했다. 즉, 엘리아데에게서는 이런 많은 예를 들어, 인간 특히 비역사적 인간에게 공통되게 시간을 되돌리려는 의례와 상징이 있다는 것을 밝히는게 목적이었다. 하지만 밀교란 어떤 것인가. 주로, 자기가 "새롭게" 세우고 있는 종교 전통이 최고며 진리를 가장 밝힐 수 있는 방식을 제공하는 것에 치중한다. 특히 밀교가 인도의 카르마나 탄트라 등의 개념을 끌어다 쓸 경우에도 역시, 뭔가 자기 전통과 직접적인 교류가 있었기 때문이라고 본다. 역사적으로 이런이런 공통된 상징이 있지만, 이것은 지금까지 숨겨왔던 나의 아니, 나의 종교가 전파한 것이고 내가 하는 이 의례가 최고라는 것.

 엘리아데가 다중적이라면 밀교는 일원론적이랄까?

어떻게 보면 엘리아데와 밀교를 비교하는 것 자체가 부당하다고 볼 수 있지만, 지금까지 수업시간에 읽은 밀교 관련 학자들만 해도 이들이 학제적인 관심을 가지고 종교 문화를 접근하는 것을 부정할 수는 없을 것 같다. 물론 최근까지, 밀교는 학문이나 과학의 영역이 아니라고 보고 학자들이 다룰 수 없는 주제라고 보는 흐름이 강했지만.

어쨌든 이 발표에서 나는 엘리아데와 밀교의 차이점을 강조하고 싶었는데, 발표를 다 들은 지도교수님께서는 자기가 지금까지 들은 엘리아데 관련 발표 중 가장 밀교와의 관계를 선명하게 보여주는 발표였다고. 선생님, 제가 말한 건 그게 아닌데요... 그리고 지도교수는 엘리아데는 이제 인용이 되지 않는다, 다만 사람들이 하도 자기가 읽었다고 인용을 많이 하는 탓에 진짜 엘리아데가 무엇을 말했는지는 묻혀졌다고 말했다. 지도교수는 이제 자기도 엘리아데를 읽고 싶다고 말했습니다... 너가 이미 읽어서 발표 시킨 거 아니었니...? 나는 너가 너무 잘 알고 있을까봐 덜덜 떨면서 발표 준비했는데...

아래는 잡담.

발표는 어제였고, 재빨리 포스팅을 하고 자려고 했지만 편두통이 저를 덮쳐버렸습니다. 사실 라틴어 시험이 수요일에 있었는데, 지도교수가 결과는 커녕 답안지를 받았다는 답장조차 하지 않아서, 아니 내가 얼마나 시험을 망쳤으면 답장조차 안 하냐 지도교수가 나랑 직접 얼굴 보고 진지하게 이야기하려나보다, 너 라틴어 아무래도 안 되겠다 깨려쳐 이렇게 말하는 거 아니냐며 완전 우울해하고 있었다. 그런데 지도교수가 어제 나를 보더니 미안하다고 채점 안 했다고 자기 며칠동안 편두통때문에 아무것도 못했다고 하는거다. 그래서 괜찮다고 말하고 수업에 들어갔는데, 왜 4시간 후에 편두통이 나에게로 오냐. 편두통도 옮는 건가요? 몇 년 전처럼 심한 편두통은 이제 오지 않지만, 그래도 지난 학기 아프질 않아서 다행이라고 안도하고 있었는데 편두통이 내게로 돌아왔구나. 잠깐동안이었지만 미간에 심장이 뛰고 있는 느낌이었다. 수업 후에 친구에게 나 편두통 있다고 하니까, 자기 약 있다고 주길래 그걸 맥주와 함께 삼켰습니다. 어제 잠깐 제정신이 돌아왔을때 포스팅을 쓰고 다 못 끝내고 편두통이 돌아와서 쓰러져 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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덧글

  • 진냥 2013/02/24 18:15 # 답글

    잘 읽었습니다. 저는 엘리아데가 왠지 좋아서.... 인용하신 책도 읽어보고 싶어지네요.
  • mori 2013/02/25 04:57 #

    앗 감사합니다. 저는 엘리아데에 반감 가진(웅?) 때도 있었는데 지금 보니 또 좋은 점도 있더라구요.
  • Esperos 2013/02/24 23:09 # 답글

    요새 종교학에서는 '원형'을 상정하는 가설에 대해 많이 비판적으로 본다 들었습니다. 정말로 그러한 원형이 있다고 보아야 하느냐는 거라더군요. 엘리아데 엘리아데 하는 이름은 많이 들었는데 저는 아직 제대로 읽어본 적이 없네요. 단테의 신곡이 '아무도 읽지 않으면서 찬양하고 있으니, 그 찬양이 그치지 않으리' 하는 식으로 비아냥거리며 평한 사람이 있다더군요. 인용으로만 엘리아데를 접한 사람이 엘리아데를 운운하는 사람이 많겠죠. 특히 한국어 책만 보는 사람이라면 더더욱.

    저는 이 본문에서 말한 '밀교'를 비밀종교라고 생각했는데, 그 밀교가 아니라 바즈라야나 불교를 가리킨 거였군요. 우리나라 대중에게는 특히 퇴마록 이후 밀교란 단어가 많이 퍼졌는데, 퇴마록의 영향으로 더욱 오컬트-판타지스러운 이미지를 덮어쓴 것 같더군요.
  • mori 2013/02/25 05:02 #

    사실 '원형'에 대한 관심은 떠난지 오래인 것 같습니다. 엘리아데는 융과는 다른 개념을 썼지만, 융의 '원형'이 워낙 많이 비판을 받은 터라. 하지만 동시에 융빠들이 상당수 남아있다는 것도 무시할 수가;; 그것도 전문직 잘 사는 사람들이...?

    아 밀교 개념은 제가 esotericism으로 고대로 쓸까, 번역할까 고민하다가 "밀교"라고 셨는데 처음 생각하신 비밀종교 개념에 더 맞습니다. 프리메이슨이나 니오플라토니즘까지 포괄할 수 있는 개념이거든요. 그런데 종교 개념과 마찬가지로 esotericism도 어떻게 정의할 것이냐의 문제에서 아직 벗어나질 못했고, 제가 밀교라고 번역하긴 했지만 완전히 비밀이 아니었기도 하고요. 불교에 나오는 개념을 언급한 것은 esotericism이 인류학의 자료 등과 더불어 동양의 불교와 힌두교의 개념을 뫅뫅 가져다 썼기 때문입니다.

    좀 웃겼던 것은 esotericism을 따르는 사람들 자체도 판타지스러운 이미지를 상당수 가져다 쓰더라고요. 어찌보면 그냥 덕후스럽기도 하다능 ㅎㅎ
  • 迪倫 2013/02/25 12:27 # 답글

    저도 Esperos 님과 비슷하게 조금 혼동이 되었는데요, 말씀하신 esotericism과 occultism을 어떻게 구분하는지요?
    엘리야데는 안읽어보고 이름만 들어서 잘몰랐는데, 포스팅 재미있게 읽었습니다
  • mori 2013/02/25 23:37 #

    저도 사실 알아가는 과정이라 말씀드리기 조심스럽지만 esotericism은 다소 폐쇄적인(닫혀있는?) 종교와 종교의 분파, 개인까지 지칭할 수 있고 숨겨진 진리가 문헌과 의례를 통해 계속 내려오고 있었다고 보는 반면, occultism은 20세기 이후의 운동을 주로 지칭하는 것으로 공동체와 의례를 더 중시하는 최근의 움직임같아요. 한 번 정의를 찾아보겠습니다. 아, 그리고 최근 학자들은 esotericisn을 서양에만 국한해서 쓰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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