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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도승이 여자를 임신시키다 vs. 여자가 여자를 임신시키다! - 성녀 마리나St. Marina by mori

잊어버릴까봐 쓰는 포스팅. 지난 주 발표한 내용, 초기 중세의 여성 성인들은 무엇을 위해 수련을 했을까 어떻게 수련을 했을까, 이런 질문을 던지니 지루하기 짝이 없구나. 수업의 발표 제목은 젠더와 스타일style. 귀동냥으로 들을지니 요즘의 추세는 또 젠더를 몸으로도, 사회적인 영향으로도 해석하는 대신에 하나의 스타일style(여전히 이게 무슨 의미인지는 모르겠지만)로 이해하려는 움직임이 있는 것으로. 그리고 교수들도 이 해석을 마음에 들어하는 듯하고. 하지만 내 주제와는 별로 관련이 없고. 뭘 발표해야하나 고민하다가 역시 만만한 게 남자 옷을 입은 여자. 그것도 성인. 이거면 젠더와 스타일, 즉 젠더가 어떻게 스타일화되었고 이 바운더리를 뛰어넘는 젠더가 어떤 식으로 나타날 수 있는 지에 대해 다루면 좋겠다 싶었다. 헥헥.

그리하여 고른 이야기가 성녀 마리나 이야기! 성녀 마리나는 활동연도가 확언된 바가 없고 워낙 많은 이야기가 섞여 있다. 하지만 확실한 것은, 성녀 마리나가 수도원에 들어가기 위해 남장을 했고, 수도승 중에 가장 뛰어나게 되었지만, 어떤 여인이 자기를 임신시켰다고 거짓으로 고발을 해서 수도원에서 축출을 당했고, 그래도 열심히 수련을 하고 겸손하게 아기를 키우면서 살았고, 죽어서 장례식을 치루려고 보니 여자로 밝혀져 칭송을 받았다...는 내용. 그렇다면 성녀 마리나는 어떻게 남자로 행세할 수 있었나! 왜 여자는 남자가 되었어야 했는가! 

성녀 마리나의 모습. 이렇게보면 사실 여자인지 남자인지 구별이 안 가지 말입니다. 출처는 이 곳. http://www.ionianvillage.org/program/spiritual/marina



한국 가톨릭인터넷 Goodnews에서 데려온 성녀 마리나의 이야기는 다음과 같다.

성녀 마리나는 비티니아(Bithynia, 고대 소아시아 북서부 지역)의 에우게니우스(Eugenius)란 사람의 딸이다. 그녀의 부친은 홀아비 생활을 청산하고 수도원으로 들어갔다. 그러나 얼마가 지나자 친척집에 맡겨둔 어린 딸 마리나 생각에 마음이 헷갈리게 되자, 원장에게 그 아이는 마리누스(Marinus)라는 남자 아이이니 자신과 함께 수도원에서 살게 해달라고 청하여 허락을 받았다. 그녀는 부친과 사별할 때까지 그러니까 17세 때까지 아버지와 함께 살았다. 그 후에도 그녀는 남자 수도자로서 계속하여 생활했는데, 어느 여인숙 주인의 딸이 마리누스가 자신에게 임신시켰다고 소문을 퍼뜨렸다. 이 때문에 그녀는 수도원 밖에서 걸식을 하며 살았고, 그 처녀는 아이를 낳아서 마리누스의 아들이니 돌보라고 맡기고 떠났다. 성녀 마리나는 그 모든 것을 침묵으로 일관하며 끝까지 인내하였다. 5년 후 원장은 마리누스의 놀라운 인내와 겸손을 인정하여 5세 된 아들과 함께 수도원에서 다시금 살게 했으나 매우 힘든 일만 시켰다. 그 얼마 후 마리누스는 운명하였고, 시신을 수습하던 중에 마리누스가 여성임이 밝혀졌다. 원장 이하 모든 수도자들과 시민들은 그녀의 위대한 용덕과 인내심을 찬양하였고 엄숙한 장례가 거행되었다.

사도전승 중에서 교부들의 어록을 모아놓은, <사막교부들의 금언집The Sayings of the Desert Fathers>에 나오는 마리나의 이야기는 영역을 대충 요약해서 싣겠다. 한역을 할까 했는데 번역본이 따로 있고 구할 수는 없어서. 근데 여기서는 Mary라는 이름으로 나오는데 워낙 비슷한 이름이 많고 비슷한 이야기가 많은지라 헷갈리지만 둘 다 마리누스Marinus라는 이름을 사용했으니 동일인물이라 생각한다. 물론 위의 성녀 마리나와 아래 이야기는 탄생이야기부터 좀 다르다. 참고한 금언집의 영역은 이 곳에서 가져왔다. http://archive.org/stream/selectnarratives017362mbp#page/n77/mode/1up


비티니아(Bithynia)에 한 남자가 있었는데 마리아는 이름의 딸이 있었다. 딸이 다 자랐을 때 그 남자는 딸에게 자기는 이제 수도원에 들어가서 자신의 영혼을 구원시키도록 수련을 하겠다고 했다. 그러자 딸은 너만, 아니지 아버지만 (남자니까) 영혼을 구하고 내 영혼은 버리겠다 이거냐고 따졌다., 그러자 아버지는 나는 수도원에 들어갈 수 있지만 너는 (여자니까) 악마가 곧 너를 유혹할 것이니까 안되지 않겠냐고 했다. 그러자 마리아는 그럼 나 머리깍고 남자 옷 입으면 되겠네, 그러고 수도원에 들어가겠다고 했다. 아버지는 그렇게 하자고 했고 가진 모든 것을 팔았고 딸의 머리를 깎고 남자 옷을 입히고 이름을 마리누스로 바꿨다. 그리고 잘하라고 잔소리를 했다. 그리고 같이 수도원에 들어갔는데 마리누스는 곧 뛰어난 덕을 가졌다고 이름이 나게 되었다. 형제들은 마리우스가 수염이 없고 목소리가 부드러워 고자eunuch라고 생각했느데 다른 사람들은 아마도 마리누스가 너무 열심히 수련해서 그렇게 되었다고 생각했다.
시간이 흘러 아버지는 세상을 떴고 마리누스는 열심히 수련을 했다. 신에게 은총을 입었고 악마도 물리쳤고 여러 고통을 잘 견뎌냈다. 게다가 아픈 자에게 손을 대면 낫는 기적도 행할 수가 있었다. 그런데 마리누스가 어느날 형제들과 함께 한 수도원 근처에 있는 여인숙에 머물게 되었는데 그 여인숙의 딸은 어떤 군인을 애인으로 맞아 임신하게 되었다. 그 군인은 여인숙 딸에게 그 아이의 아버지가 마리누스라고 하라고 시켰고, 딸은 자기 배가 불러오고 아버지가 비난을 하자 그대로 말했다. 그러자 여인숙 주인은 화가 나서 수도원장에게 따졌고, 수도원장은 노여워해서 마리누스에게 따졌다. 
마리누스는 이런 비난을 듣더니 땅에 엎드려 얼굴을 대고 펑펑 울었다. 수도원장에게 내가 인간으로서 죄를 지었다고 말했고 소두수도원장은 그에게 다시는 수도원에 들어오지 말라고 했다. 그러자 마리누스는 수도원 밖에 나가 추위과 더위를 견디며 밖에 앉았다. 그리고 사람들이 지나가며 왜 밖에 앉아있냐고 물을 때마다 간음의 죄를 지어서 수도원에서 쫓겨났다고 말했다. 어느덧 시간이 흘러 여인숙 딸을 아들을 낳았고, 여인숙 주인은 수도원 밖에 나와있는 마리누스에게 아이를 건내주면서 비난했다. 마리누스는 아이를 받고 자기야 죄를 지었지만 아이에게 무슨 죄가 있냐고 탄식했다. 마리누스는 아버지로서 아이를 키우며 양치기들에게 우유를 얻어다가 멕였다. 아이가 울면서 옷을 적시는 것도 마리우스에게는 큰 고통이었다. 이런 고통의 세월이 3년 쯤 지나가 수도원의 형제들은 수도원장에게 그만하면 마리누스가 충분히 참회했다고 말했다. 수도원장은 이에 설득당했고 마리누스에게 와서 수도원에 들어와서 제일 험한 일을 하되 수도원의 규칙을 어기지는 말라고 했다., 마리누스는 이 야기를 듣고 자기가 간음을 했는데도 이렇게 해주시다기 감사하다고 말했다. 그리고 자신에게 맡겨진, 험하디 험한 일들을 기꺼이 행했다. 하지만 자기가 받은 음식이 부족해서 아이를 제대로 먹일 수가 없었고 이것은 그에게 고통이었다. 이런 환경에서도 마리누스의 아들은 훌륭하게 성장했고 수도원에 들어갈 수 있었다. 
어느날 수도원장이 마리누스를 찾았는데 보이지 않았다. 형제들이 그를 찾아보니 그는 죽어있었다. 형제들이 수도원장에 간청했고 수도원장은 장례식을 위해 마리누스에게 합당한 옷을 입히라고 했다. 그런데 옷을 입히려고 보니 마리누스는 여자였다. 이걸 보고 형제들은 충격을 받았고 울기 시작했다. 이 울음을 들은 수도원장은 왜 우냐고 물었고, 그들은 수도원장에게 마리누스가 여자였다고 말했다. 수도원장도 그녀가 어떤 삶을 견뎌왔을지에 충격을 받았다. 수도원장은 땅에 엎드려 자기를 용서해달라고 하나님과 마리우스에게 빌었다. 삼일 후에 수도원장은, 일부러 그런 게 아니라서 괜찮다는 음성을 들었다. 이 목소리를 듣고 수도원장을 일어나 여인숙 주인에게 사실을 말했다. 여인숙 주인은 이 이야기를 듣고 충격을 받았고 믿지를 않아 수도원장은 직접 마리누스를 그에게 보여줬다. 여인숙 주인은 울기 시작했고 참회했다. 형제들은 그녀의 거룩한 몸에 옷을 입혔고 좋은 곳에 잘 묻었다. 당시 여인숙 딸은 악마에 의해 고통을 바고 있었는데, 자신을 임신시킨 게 군인이라고 고백을 하자 성모 마리아의 힘으로 나았다. 


여기서 관심있는 것은, 단지 머리를 깎고 남자옷을 입음으로 남자 행세를 할 수 있었다는 점. 물론 이야기니까 가능했겠지만, 당시 남자와 여자는 질적으로 다른 게 아니라 양적으로 다르다, 즉 여성은 남성의 좀 덜 떨어진(응?) 버전이라는 의학설명과도 무관하지 않을 것이라 생각한다. 하지만 그럼에도 마리누스가 여성이라는 티는 났고, 고자일 것이라는 추측도 있었고. 여자임에도 불구하고 다른 남자들처럼 수련을 하고 심지어 더 뛰어난 수도승이었던 마리누스, 혹은 마리아는 남자같은 여자manly woman으로 칭송받았다. 즉, 여자가 남자와 같이 수련을 하면 남자처럼 구원을 받을 수 있고, 성인이 될 수 있다는 믿음. 내가 관심있는 후기 중세는 여자가 예수의 신부나 예수의 어머니 등으로 여성성을 강조할 수 있었다면 초기 중세는 남자같은 여성이 모범이 되었다는 점. 

물론 이 남자 같은 여성은 여자에게 권장할 게 아니었다. 남자들이 이에 자극을 받고 열심히 노력하라는, 글쓴이의 마지막 당부가 이를 뒷받침한다.

이런 남자 같은 여자만 사막에 있었던 것은 아니고, 사막의 어머니The Mothers of the desert도 있었다. 세 명 정도? 매우 적은 숫자이며, 이런 대단한 여성들조차 끊임없이 여성이라는 이유로 형제들에게 시험을 당했다는 점. 단지 여성이라는 이유로.

그리고 이 이야기에서 여전히 문제를 일으키는 것은 여자, 즉 여인숙 딸이다. 군인은 잠깐 나오지만 이야기에 더 이상 등장하지도 않아. 여자가 문제인 것은 여전하다. 남자같은 여자가 칭송받아 마땅하지만.

이런 이야기를 종교적으로 풀지 않고 문학적인 작품을 푼다면. 이 이야기는 남성들의 판타지를 반영하고 있다고 할 만하다. 남자들만 있어야할 수도원에 여자가 남장을 하고 숨어들어온다. 남자만이 수련을 하고 모범이 될 수 있기에 여자는 남자처럼 되어야 한다. 무엇보다, 갑자기 얼굴도 모르는 여자가 애를 안고 오더니 내 아이라고 한다...

내 관심사는 여전히 이 이야기를 어떻게 후기 중세와 엮어서 설명을 할 것이냐이지만, 이 이야기 자체로도 재밌긴 재밌는 것 같다. 남장을 한 여자 이야기는 인기있는 소재고 셰익스피어의 희곡들과도 연결되는 테마니까. 매우 나이브하게 마무리.

아, 그리고 레미제라블의 영향인지 자꾸 마리누스를 마리우스라고 해... OTL



덧글

  • 행인1 2013/03/12 08:27 # 답글

    '남자인줄 알았는데 실은 여자였다'는 18~19세기 영국 해군 등지에서 종종 확인되는데 중세 수도원에도 그런게 있었을 줄이야...;;;
  • mori 2013/03/12 11:06 #

    영국 해군에서도 그런 일이 있었군요. 남자만 들어갈 수 있는 곳에 들어가기 위한 여자의 분투...! 인가. 근대의 이야기도 궁금하네요.
  • 우갸 2013/03/12 09:13 # 답글

    눈에 띄는 오타 "소두원장" !
  • mori 2013/03/12 11:07 #

    엌ㅋㅋㅋㅋㅋ 음청 크게 웃었습니다. ㅋㅋㅋㅋㅋ 알려주셔서 감사해요 ㅋㅋㅋㅋ 소ㄷ... 아닙니다;;
  • LNoir 2013/03/12 18:59 # 답글

    남자인줄 알았는데 실은 여자였다는 남성보다 여성의 판타지가 아닌가 생각했는데
    과거엔 달랐나 보군요.
    남성이 남성적인 여성을 능력적으로 존경 하는 경우야 자연스럽겠지만
    자신의 DNA/자식을 맡길 상대인 여성으로 볼때에는 덜 매력적인건
    아닐까란 생각도 들어서요.(강인한 아버지와 부드러운 어머니라는 이미지로 볼때요)
  • mori 2013/03/12 22:35 #

    하긴 생각해보면 여학생들이 주로 보는 만화의 소재 중에 남장하고 남학교에 가는 게 있었던 것도 같아요!
    저 시대의 그리스도교적 이상상이란 남자고 여자고 전사나 운동선수처럼 강인해지는 거였죠. 그리고 엄친자모란 개념도 시대지역적으로 한정된 이상이라 생각하기 때문에 저 시대에도 그 개념이 통했을진 모르겠어요. 아무래도 현대와는 달리, 남자와 여자가 그닥 다르지 않다고 본 시대거든요. 대신 아버지가 포악(?)해지는 게 사회적으로 용인되긴 했고요.
  • 효우도 2013/03/12 23:04 # 답글

    군인도 나쁜놈인데 군인의 비중이 적군요.
  • mori 2013/03/13 00:32 #

    그게 의문입니다. 마지막에 천벌받고 회개하며 등장할까 기대했는데;; 아이한테 내가 니 애비다, 이러면서.
  • Esperos 2013/03/16 00:57 # 답글

    저도 전혀 모르는 성인의 이야기군요. 하여든 성인들이 너무 많다니까요 (_____) 저 이야기를 보고 바로 연상된 게 '여교황 요안나'의 전설이었습니다 ^^;;; 생각해보면 수도복은 다들 늘어지는 로브니까 얼굴 인상과 목소리만 속여넘길 수 있다면, 남장은 어렵지 않겠네요. 저기서도 다른 수사들이 고자인 줄 알았다고 하고 말이죠. 다만 월경을 어찌 처리했는지 몰라…….
  • mori 2013/03/18 01:39 #

    여자 수도승들도 열심히 금식하면 월경도 안 할 수 있었다고 하니 설마 그런...? 저 성인은 동방정교회에서 많이 다루는 것 같더라고요! 수도복으론 아마 임신한 여성도 남자인 척 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 Esperos 2013/03/18 12:42 #

    생각해보니까 옛날 수도사들처럼 먹고, 수도사들처럼 자고 하면 있던 월경도 절로 끊기겠네요. 건강에는 전혀 좋지 않겠지만 (____)
  • mori 2013/03/19 06:37 #

    무월경증은 신비한 것으로, 그리고 여성 수도승들이 잘 수련을 하고 있는 증거 같은 걸로 여겨졌다고 하더라고요. 물론 현세의 건강은 해치겠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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