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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Mystic Mind> - 중세 신비주의와 금욕주의의 연결점 by mori

참고로 이거 게임 <미스틱 마인드> 리뷰아닙니다. 책 리뷰입니다. 심리학자와 역사학자가 공저한 책입니다. 처음에는 깔려고 읽기 시작했는데 읽으면 읽을수록 은근 재밌었다. 왜 그런 책 있지 않나. 헛점이 많이 보이는데 헛점을 찾으려고 막상 면밀히 보면 빠져나가는 구멍이 많아 비판하기 살짝 애매해지는 책. 물론 그런 책들 중에서도 재미없는 것들도 있지만, 이 책은 충분히 재밌었다.
 


Jerome Kroll and Bernard Bachrach, The Mystic Mind: The Psychology of Medieval Mystics and Ascetics, Routledge, 2001.

저자인 크롤은 심리학자, 바하라흐는 중세사학자이다. 이 두 사람이 만나 중세 유럽의 그리스도교에 대해 심리학적으로 역사학적으로 접근하기로 했으니 결과물이 바로 이 책이다. 이 책이 사용하는 방법론은 참으로 넓다. 일단 생리학부터 시작해서 심리학, 문화심리학 등을 거치더니 심지어 성인전을 가지고 양적 분석을 하다가 마지막에는 질적연구까지 다룬다. 물론 중간중간에 역사적인 배경이나 교회의 역사까지 통합적으로 다룬다. 이래서 깔 게 별로 없는 듯하다. 뭐 하나 비판하려고 하면 다음 장에서 변명을 하고 있어;; 

뭐 생리학적인 것은 비교적 간단해...보이지만 용어 자체는 눈에 잘 안 들어왔는데, 중세 금욕주의자들이 수행했던 금식, 수면부족, 스스로 가하는 고통 등을 예로 들어 이러한 자극들이 지속적으로 혹은 극단적인 수준으로 육체에 가해지게 되면 뇌에서는 무슨 호르몬이 나오고 신비체험, 혹은 의식변형상태Altered State of Consciousness(이하 ASC)을 겪게 될 가능성이 높다는 것. 즉 금욕주의는 신비주의를 이끌게 될 가능성이 높다는 점.

그리고 심리학적으로도 성인들의 어린 시절 이야기나 현실세계에서 도피하고 싶은 욕망 등이 개인에게 신비체험을 하게 할 가능성을 높여주고. 다만 여기서 짚어주는 것은 모든 개인의 상태가 똑같지는 않다는 것. 경계가 두터운 사람thick-boundaried person은 신비체험이나 의식을 떠난 상태에 들어서고 싶지 않을 뿐더러 이걸 부정하는 여러 장치들로 둘러싸여있고 경계가 많은 사람이기 때문에 뭐든지 잘 믿지 않으려는 경향이 있다. 반대로 경계가 얇은 사람think-boundaried person은 잘 믿는 사람이고 신기한 이야기에 관심이 많기 때문에 상대적으로 의식변형상태를 쉽게 겪을 수 있다고. 하지만 중세 그리스도교 같은 경우 워낙 문화적으로나 생리학적으로 신비체험을 가질만한 충분한 자료를 제시하기 때문에 경계가 두터운 사람이라고 하더라도 비교적 신비체험에 더 노출될 수 있었다고 한다.

그렇다고 저자들이 문화의 영향을 관과하는 것은 아니다. 당시 워낙 충부한 종교상징들과 내러티브가 있고 이것에 개인이 지속적으로 노출되기 때문에 이로인한 영향 또한 무시할 수 없다. 게다가 저자들은 문화적인 노출은 두뇌에 영향을 끼칠 수도 있다고 보고 있다. 이 부분은 약간 인지심리학의 주요 관심사와 일치하는 듯하고.

어쨌든 저자들이 말하고 싶어하는 건 중세에 금욕주의가 번성했기 때문에 신비주의 또한 꽃을 피웠다, 뭐 이런 것이다. 이것을 증명하기 위해 버틀러의 성인전Butler's Lives of the Saints(1866)에 등장하는 중세 성인들을 통계로 돌려서 금욕주의를 수행한 성인들과 신비체험을 한 성인들과 유의미한 상관관계correlations이 있는지를 살피고 있다. 이에 따르면 놀랍게도! 아니 안 놀랍게도! 13세기부터 15세기 여성 성인들만이 여기서 유의미한 상관관계를 보이고 있다고. 즉, 여성 성인들의 경우, 금욕을 수행한 여성들이 신비체험을 할 가능성이 상대적으로 높았다... 나의 짧은 지식으로는 여기까지 이해.

저자들은 여기에서 멈추지 않고 더 나아가 질적연구까지 손을 대고 있으니... 라데군드Radegund와 수소Henry Suso등의 성인들 삶을 면밀하게 조사하여 자신들의 주장에 설득력을 높이고...

결론에는 다시 통계로 돌아갑니다. 

설명도 재밌었고 워낙 다루는 게 방대하다보니 얻는 레퍼런스도 많긴 많았지만, 가끔 동의하지 않는 부분이 있었다. 물론 저자들은 역사적인 배경을 들어 여성들이 당시 처했던 교회와 사회의 압력 때문에 다른 요인이 연관되었을 가능성을 인정하기는 한다. 하지만 그렇게 인정만 하고 넘어가기에는 너무나도 큰 요인이, 당시 여성으로서 성인으로 서품시성되기 위해서는 신비체험을 하는 게 거의 유일하다시피 했으니까;; 게다가 금욕생활이야 모든 성인들이 어떤 방식으로든 수행했던 거 아닌가요;; 둘 간의 인과관계를 따질 수 있을까? 금식을 하면 신비체험을 할 가능성이 높아진다고 하더라고, 성인들은 아, 신비체험을 하기 위해 오늘부터 엄격하게 금식을 하겠다! 이렇게 마음먹었을지는 의문.

아 내가 너무 찌들었나요;; 나 환원주의 싫어하지 않은데;;

게다가 성인들의 삶을 일상과 분리시켜 온전하게 성스럽게 되는데 초점을 맞췄다고 보는 것도 불만이 있다. 성인들이 속세에서 벗어나고 싶어했던 것은 사실이지만, 동시에 성인들은 일반 사람들의 삶에 너무나도 깊숙이 관여해서 병도 고쳐주고 기적도 일으켜주고 대신 기도도 해주고 음식도 주고 등등등.

아니다, 내가 너무 까칠하게 굴었나보다.

논자시에 넣을 정도로 맘에 들었던 책. 급마무리... 사려고 했지만 참자. 벌써 책이 몇 권이냐, 집에...

덧글

  • Esperos 2013/09/26 14:54 # 답글

    아... 성인으로 인정하는 것은 '서품'이라고 하지 않고 '시성'이라고 합니다. 'XX 교황이 아무개를 시성하다.', 혹은 '아무개가 시성되다' 같은 식으로요. 복자는 똑같이 말을 만들어서 '시복'이라고 하죠.

    금욕주의 성인과 신비주의 체험 성인은 남녀 상관 없이 둘 다 유의미할 거라고, 앞문단을 읽으면서 예상했습니다. 그런데 성녀의 경우에만 유의미하단 결과가 나왔다니 놀랍군요. 그럼 남자 성인은 그렇지 않다면... 금욕주의 경향과 신비주의 체험이 별개로 나타났단 이야기네요. 평생 금욕을 실천했지만 신비체험은 별로 없다든가, 혹은 그 반대거나.......

    수도자의 삶이 모범으로 제시되면서 독수도자(인적 없는 곳에 외로이 있는 수도자)로 산 경우라면, 혹은 관상수도회(가르멜회 같은 경우)라면 책에서 제시한 결론이 맞을 수 있겠는데, 탁발 수도회(프란치스코회가 대표적이죠)처럼 어느 정도 가까이 있는 것을 추구한 수도회에서라면 성속의 엄격한 구분은 별로 맞지 않겠지요.
  • mori 2013/09/27 00:17 #

    으아아 제가 엄청난 실수를 저질렀군요! 수정하도록 하겠습니다!

    아무래도 통계적으로 유의미한 상관관계를 보인다는 건 제가 인문학적으로 생각하는 관계와 또 다른 것 같기도 합니다. 통계적으론, 어떤 사람이 금욕수행을 한다고 했을 때 "아 그럼 저 사람 신비체험 한다고 봐도 되겠구나" 요런 느낌? 물론 저 연구는 금욕수행 중에서도 엄격한 금욕수행만 꼽아서 요인별로 분석을 했기 때문에 저 결과가 나왔을 수도 있구요.

    아무래도 중세의 금욕수행자들, 그 중에서도 여자들은 사람들의 교류를 이어나가야했고, 사람들 역시 기적, 대속 등을 바랐기 때문에 수행자들을 찾아오고 했던 것 같아요. 특히 여자성인들은 자기 집에서 수행하기도 했고요;; 초기 사막 교부들 역시 속세와의 완전한 단절을 꿈꾸었지만 현실은 그러하지 않았다는 글을 본 적 있는 것 같습니다.
  • highseek 2013/09/27 15:59 # 답글

    여성 성인에게만 통계적으로 유의미한 상관관계를 보인다는 건, 다시말하면 금욕과 신비체험 간의 직접적인 인과관계를 부정할 가능성이 높다는 이야기입니다. 여성 성인에게만 한정하게 하는 또다른 요인이 존재한다는 이야기거든요.
  • mori 2013/09/28 02:22 #

    음.. 그렇게 보기는 좀 힘들 것 같습니다. 물론 저자야 다른 요인이 있을 가능성을 언급하고 있고, 유의미한 상관관계가 있다고 인과관계를 도출해낼 수는 없는 게 사실입니다. 하지만 남자성인의 경우에도 어느 정도의 상관관계는 있었지만 여자성인처럼 통계적으로 유의미한 정도까지는 나오지 않았을 뿐이구요. 관계가 전혀 없다고 보기는 어렵습니다. 사실 저에겐 여자성인에게서 저 확률이 나온다는 것 자체가 놀랍구요;;
  • highseek 2013/09/28 03:12 #

    아, 인과관계가 전혀 없다고 보는 건 아니에요;;

    인과관계가 있는지는 저걸로 단정지을 수 없고, 저것만 놓고 본다면(통계를 신뢰할 경우) 다음 몇 가지 가능성 중 하나라는 것만 알려준다는 거지요.

    1. 실제 둘은 독립적이고 직접적인 인과관계가 있다.
    2. 제3의 인자가 존재해서 금욕과 신비체험이라는 두 변수간에 어떤 매개체 작용을 한다.
    2-1. 3의 인자가 충족될 경우에만 인과관계를 가진다.
    2-2 3의 인자가 충족될 경우 인과관계가 강화된다.
    2-3. 3의 인자가 둘의 인과관계를 방해하는 또다른 인자(4의 인자)를 억제한다.
    2-4. 금욕은 3의 인자와 인과관계를 가지고, 별개로, 3의 인자는 신비체험과 인과관계를 가진다. 즉, 금욕과 신비체험 둘은 간접적인 인과관계를 가진다.
    3. 아무 인과관계가 없다.

    1번보다는 2번의 어디쯤에 심증을 좀더 두게 될 것 같습니다..
  • mori 2013/09/28 04:09 #

    아 맞습니다. 아마 저자들은 양적연구에서는 통계를 사용해서 둘 간의 상관관계가 있다는 것까지만 밝히고, 인과관계는 책의 다른 부분에서 역사적인 서술, 질적 연구, 인지 심리학 등을 대입시켜서 끌어내려는 것 같아요. 저 역시도 말씀해주신 것 중에서 1번과 2번의 어디쯤일 것 같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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