라이프로그


살해당한 네 아버지를 항상 생각해라 by mori

오늘은 좀 잔인한 예;; 만약 너의 아버지가 교차로에서 죽었다면 너가 그 교차로를 지나가고 싶겠냐? 근데 그 교차로를 지나가면서 그 아버지의 고통을 생각하는게 바로 예수가 인류를 위해 죽음을 감수했다는 것을 내내 기억하고 상기하는 게 바로 그리스도교인의 본분이라고 우리의 중세 성녀 폴리뇨의 안젤라(Angela of Foligno, 1248-1309)가 말한다. 근데 그 묘사가 매우-_- 끔찍해서 프로이트의 <모세와 유일신 신앙Moses and Monotheism>에 나오는 종교의 기원보다 더 거부감이 드는-_-




죽은 예수에게 키스를 하는, 물기어린 눈의 성모 마리아. 사실 안젤라는 자신의 환시에서 정확히 이를 실행한 적이 있다고 고백합니다. 죽어서 무덤에 있는 예수에게 키스를 해서 그를 깨운 적이 있죠;; 그림 출처는 http://www.assisiofm.it/la-beata-angela-da-foligno-e-il-sacro-cuore-3272-1.html



오늘도 안젤라의 <메모리얼Memorial>의 라틴어를 우리말로 직접 옮겼습니다. 오역의 가능성이 있습니다만 저작권(?)은 저에게로.



또한 안젤라는 나에게 십자가에 대한 다른 예를 들었는데 다음과 같다. 아버지가 있다고 해보자. 그 아버지는 죄를 짓는 아들들이 있다. 그리고 이 아버지는 이 아들들이 어떻게 죄를 짓는지 드러냈다. 그리고 이 아버지는 아들들의 잘못과 상관이 없이 결백했지만 이 아들들의 죄 때문에 살해당한다. 그리고 아버지가 살해당하는 것은 영혼에게 보이며, 마치 거기에는 피가 있는 것 같다. 그가 십자로에 있었다 해보자. 그 아버지의 아들들에게는 아버지의 고통스러운 죽음과 이게 칼로 벌어졌다는 것을 슬퍼하는 것이 자연스럽고 합리적일 것이다. 이제 아들들은 그들, 즉 그 아버지의 아들들의 죄 때문에 아버지가 잔인하게 비난받을 만하게 살해당했다는 것을 슬퍼한다.이렇게되면 그 아버지의 아들들은 자신들의 심장에 슬픔을 언제나 안고 있을 것이다. 이 슬픔은 너무나도 커서 그들은 그 길을 통과하는 것을 피하고 멈출 것이다. 만약 그들이 그 길을 건너기라도 한다면 그들은 고통 없이 통과할 수 없을 것이다. 마치 아버지의 살해가 방금 일어난 것처럼 말이다. 자 보아라, 너 영혼아. 예수의 죽음에서 오는 슬픔은 더 커야 할 것이다. 그는 세상의 아버지보다 더 큰 존재이기 때문이다. 예수는 너의 죄 때문에 죽었다. 그러자 이렇게 말해졌다. "애도하고 슬퍼하라, 영혼아. 너는 예수가 죽은 십자가 곁을 지나가야만 한다. 너는 거기에 있어야 하고 쉬어야한다 왜냐하면 십자가야말로 너의 구원이자 선택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너는거기에 있어야만 한다 왜냐하면 거기에 너의 구원이 있기 때문이다. 인간이 그곳을 얼마나 빨리 지나갈 수 있는지 지체없이 그럴 수 있는지는 놀라울 따름이다. 그리고 신이 말했다. 만약 영혼이 그곳에 자신을 못 받는다면, 그곳에서 영혼은 언제나 피가 최근의 것임을 발견할 것이다. 누가 신의 합법적인 아들들인지 이 예에서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이후에 나는 십자가와 예수의 고통이 그려진 곳 근처를 건너갔다. 그러자 나에게는 어떠한 그림도 진실에 따라 그 예수에게 일어난 고통보다 더한 것은 없다는 것을 알았다. 그 고통은 나에게 보였고 나의 심장을 눌렀다. 나는 그 그림을 바라보고 싶었다. 왜냐하면 나에게는 그 그림이 마치 아무것도 아닌 것처럼 작게만 보였기 때문이다.







즉, 자신의 아버지가 자기가 저지른 잘못 때문에 살해당했다고 생각하고, 예수의 죽음은 이것보다 더 심한 것이니 이것을 내내 상기하라는 것. 그리고 아버지가 죽은 그 장소를 지나치기 싫겠지만 거기를 지나치면서 그 고통을 상기하고, 더 나아가 그 고통을 재현하는 것이 신자의 본분이라는 것이다. 안젤라가 예수의 죽음을 묘사한 그림을 보면 마음이 아파서 운다고 하면서도, 그 그림은 사실 아무것도 아니며 예수의 고통은 더 클 것이라는 것을 내내 되뇌이며 일부러 그 그림을 보고 고통받고자 하는 것도 비슷한 맥락이라고 할 수 있다. 어쨌든 매우 생생하면서 끔찍한? 그러나 신실한 은유인 것 같다. 어쨌든 부활절이 다가오고 있으니 예수의 죽음을 생각해보는 것도 좋지 않을까 (어색한 마무리).

덧글

  • 키르난 2016/03/16 13:05 # 답글

    갑자기 떠오르네요. '내 탓이오, 내 탓이오.' 미사에서도 가슴을 치면서 이 말을 되뇌이니, 예수 그리스도의 죽음은 죄 많은 우리의 탓. 그러니 그 사실에 감사하고 끊임없이 반추하여 잊지 말아야 한다-는 것이겠지요. 안 그러면 또 죄를 저지를 것이니. 근데 기억력 나쁘면.. 음... 으으으음..
  • mori 2016/03/17 00:17 #

    키르난님 마지막 줄에서 빵 터졌어요 ㅋㅋㅋ 기억력 나쁘면 ㅎㅎ 뭔가 우리의 성녀 안젤라는 그걸 잊어버릴까봐 고군분투하는 것으로도 보이는군요.
  • 지나가다 2016/03/16 13:42 # 삭제 답글

    희생양의 죽음은 기억하지 않고
    그에게 구원만 바라는게 문제죠
    이미 그때도 그랬었나 봅니다
    그러니 그점을 강조했겠죠
  • mori 2016/03/17 00:17 #

    아무래도 당대 사람들도 그렇게 안일한 태도를 보였으리라는 게 짐작이 됩니다. 고통을 기꺼이 감수하려는게 대단한 것 같아요.
  • 2016/03/16 15:52 # 답글

    예전에 사이비 종교 전도사에게 붙잡혀서 예수님이 십자가에 못박혀 돌아가셨는데 크리스찬들은 왜 십자가를 교회에 모시느냐 총으로 돌아가셨으면 총을 모실길거냐라고 초등학교 5학년생인 저를 붙잡고 열변을 토했던 기억이 나네요. 한 겨울에 엄청 짜증났었는데 적당히 도망가는 기술이 없어서 한 시간 정도 고생했던 ㅜㅠ 이 글을 그때도 알았더라면 ㅎㅎ
  • mori 2016/03/17 00:18 #

    은님 ㅠㅠ 고생하셨다는 얘기에 제가 다 눈물이 납니다. 한 시간 씩이나!!! 초등학생 데리고!! 이거 진짜 나쁜 거에요~ 저는 대학교에서 엄청 고생을 했는데 전화번호 한 번 가르쳐줬다가 전화 계속 오고 ㅠㅠ 저도 그 때 이런 걸 알았더라면 좋았을텐데요!
  • 2016/03/18 21:28 # 삭제 답글

    끊임없이 그 고통을 상기하고 그에 걸맞는 삶을 살아가다니 대단하다.. 역시 성녀는 다르구나.
    어떤 종교든 진정한 신앙생활을 하기는 어려운 것 같아.
    끊임없이 감사하면서 사는 것만 해도 ㅎㅎ
  • mori 2016/03/18 22:48 #

    괜히 성인이 되는 것은 아닌가봐~ 하지만 이렇게 힘들게 해도 성인이 된 건 얼마 안 됐으니 일반인인 나는 꿈도 못 꿀 것 같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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