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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장 오래된 소명> 중세 그리스도교에서 엄마가 된다는 것은? by mori

어미.어머니가 된다는 것은 축복인가 저주인가. 중세 그리스도교에서 어머니의 위상이 어떻게 변하느냐를 다루고 있는 이 책을 끝나고 기념삼아 올린다. 아무래도 성모 마리아를 논문 주제 중 하나로 넣다보니 어머니됨motherhood를 다뤄야만 하길래 읽은 책. 읽고보니 뭔가 정리되는 느낌이다. 그리스도교 초기부터 현대까지 이어오는 여성의 역할 변화랄까. 하지만 여전히 차별을 받는 것은 남아있긔. 즉, 여성에게 어머니가 된다는 게 장애물이든 축복이든, 여성은 결국 재생산 기능이 가장 중요한 것으로 설명된다는 것이다. 









Clarissa W. Atkinson, The Oldest Vocation: Christian Motherhood in the Middle Ages (Ithaca: Cornell University Press, 1991).






앳킨슨이 이 책에서 주장하는 것은 바로 이것이다. 원인은 여러가지가 있겠지만 초기 그리스도교에서 중세로 넘어오면서, 어머니됨motherhood가 인류의 구원과 연결되고 여성의 종교생활에 긍정적인 역할로 인식되기 시작해서, 중세 후기와 프로테스탄트의 탄생까지오면, 여성에게 어머니가 되는 것은 축복으로 여겨졌다는 것이다.

그렇다고 해서 초기 그리스도교에서 여자에게 어머니가 되지 말라고 그랬던 것은 아니다, 물론. 로마시대에도 여전히 여성은 재생산 역할에 한정되었고 초기 그리스도교 역시 이것을 인지하고 있었던 것. 하지만 초기 그리스도교는 여성에게 나름 역할을 부여하면서 시작했다. 로마 시대에 여성이 공적인 자리에 설 수 없었던 반면, 그리스도교는 여성에게 종교활동에 적극적으로 참여할 수 있는 기회를 주었다.

하지만 그리스도교는 로마 사회나 유태교와는 다른 노선을 취한다. 즉, 인간에게는 재생산보다 더 중요한 게 있다고 말하면서 남성 뿐만 아니라 여성도 금욕생활을 할 수 있도록 허용했다는 것이다. 실제로 기록에, 이교도 집안에서 그리스도교인으로 개종한 여성들이 결혼을 피해 아머지나 남편에게서 달아나기 시작했다. 여러 문제가 제기되긴 했지만 여자들도 사막에 숨어들기 시작했다. 이전에는 결혼해서 애를 낳는 것이 전부였던 여성들이 이제는 종교라는 이름으로 종교적인 생활에 모든 삶을 걸 수 있었다.

그렇다고해서 여자들이 평등했던 것은 아니다. 고대 그리스-로마에서 여성이 성욕이 더 강하고 더 동물에 가깝다고 했던 시작은 초기 그리스도교와 중세가지 이어졌다. 여성이 종교적인 이유로 금욕생활을 할 수 있었지만, 이것은 남자보다 더 어려운 목표였다. 거의 대부분의 여성은 이에 이르기 불가능할 것이기 때문이었다. 여자는 워낙 영적으로 남자보다 열등하고 육적인 욕망이 강하기 때문에. 이러면서, 순결을 유지한 여자 성인들은 더 높이높이 올라갔던 반면 일상 생활에서 결혼을 해서 애를 낳고 남편과 성관계를 가진 여성들은 더 낮게 인식되었다. 성관계가 인간의 타락과 연결되었던 교회에서, 육욕에 굴복해 섹스를 하고 애를 낳는 것은 여성들의 불행한 숙명과도 같았다는 것. 이 숙명을 벗어나야 마땅한 것이겠지만, 여자들은 아무래도 안될거야 이런 인식이 팽배했었다.

하지만 이런 분위기는 중세 후기, 특히 앳킨슨에 따르면 12세기부터 달라지기 시작한다. 엄마들 중에서 성인이 나오기 시작한다. 물론 엄마 성인들이 초기에 없었던 것은 아니지만, 어머니라는 정체성을 부정하고 싶어했던 초기 여성 성인들과는 달리 중세로 오면 어머니이자 아내이면서 성인인 여자들이 나타나고 딱히 모성이나 어머니됨을 거부할 필요는 없었다. 

이에는 성모의 역할이 컸다. 이게 원인인지, 결과인지는 모르겠지만, 처녀이면서도 예수를 낳아 신성하게 된 성모 마리아의 존재는 유부녀들(?)에게 희망이 되었다. 이전에는 아이를 낳고 키우는 것이 종교생활의 걸림돌이 되었다면, 이제는 아이를 낳고 돌보는 것이 성모도 한 일이고 예수의 구원과도 연결되는, 새 삶을 주는 행위로 인식이 되었다. 어머니가 된다는 것이 성스러운 행위의 메타포이자 실제 구원으로 인식될 수 있었다는 것이다.

이러한 경향성은 프로테스탄트에 와서 더 강조되는데, 가톨릭에서 동정을 지키는 것이 여자에게도 중요했다면 이제는 여자들은 동정을 지키는 것이 아니라 어머니가 되는 것이 더 중요한 것으로 인식되기 시작한다. 마틴 루터가 성직자에게 결혼을 부여한 것과 동시에, 여성들은 종교적인 생활을 위해 어머니가 되는 것을 포기하는 대신 어머니가 되는 것이 바로 종교적으로 헌신하는 길이 된 것.

어미니가 되는 것이 이브의 저주냐, 혹은 하나님의 축복이냐. 중세는 이 갈림길에 놓여있었다는 것이 앳킨슨의 주장이다. 어째-_- 말이 흐지부지 되는 것같기는 하다만, 아무래도 가장 명확한 예는 초기 그리스도교의 여자 성인인 페르페투어(Perpetua, ?-203)와 중세의 브리지따(Bridget of Sweden, 1303-1373). 페르페투아는 남편은 거론조차 안되고, 애가 있어서 슬퍼하지만 이것은 결국 그녀가 순교를 위해 이겨내야할 장애물처럼 거론된다. 그리고 아버지 조차 외면한다. 하지만 브리지따는 8남매의 어머니였고, 그 중 두 명은 그녀처럼 성인이 된다. 브리지따는 심지어 성모의 출산장면까지 목격(지난 포스팅 참조)하며 예수는 그녀에게 나는 너를 처녀처럼 사랑하리라 약속한다.   

나에게는 출산이 저주의 사슬이냐 축복의 기회가 비슷하게 억압으로 작용한다 생각한다. 마틴 루터 자신은 결혼을 했고, 출산이 여성들에게 힘들다는 것도 인지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성들은 "벽에 박힌 못"처럼 집에 있어야 하는 존재가 되었다. 마치 이런 것이랄까? 여자는 여자로서 출산이라는 신성한 의무를 지키기 위해 집에서 쉴 수 있어야 한다는 이데올로기랄까. 이건 현대에까지 내려오는 것이겠지만. 하지만 지금 <젠더, 만들어진 성>이란 책을 읽고 있는데 이 책에서처럼 사회 혹은 종교는 여성들에게 아이를 낳는 것이 축복이니 누리라고 말하지만, 동시에 결혼해서 아이를 낳은 여성들이 임금이나 사회적인 지위 면에서 가장 차별을 받는다. 축복인지 저주인지, 어느 선에서는 구별이 잘 가지 않는다.

어쨌든, 이 책의 가장 중요한 포인트는-_- 말이 길어졌지만-_- 어머니가 된다는 게 여성의 축복이자 장점이라고 여겨진 것은 12세기 이후 서양에서 만들어지기 시작했고, 이에는 종교가 큰 역할을 했다는 것이다. 

덧글

  • 2016/08/28 10:33 # 답글 비공개

    비공개 덧글입니다.
  • 2016/08/28 12:55 # 비공개

    비공개 답글입니다.
  • 진냥 2016/08/28 10:46 # 답글

    아시아 문화권에서도 어머니됨의 중요함을 강조한 게 유교였지요.... 갖은 여성교육서에서 가장 이상적인 인물로 다루었던 것이 태교를 잘한 주 왕실의 어머니 태임이었다던가. 공자는 여자와 소인은 가까이 하지 말랬는데, 여성에 대한 중층적 인식이 두 문화권에서 유사하게 드러나는 것도 재미... 신기... 짜증나게 여겨집니다. 하하.
  • mori 2016/08/28 12:56 #

    제가 그래서 존경스러운 사람이 별로 없습니다. 존경 많이 받는다는 학자나 위인들, 여성에 대한 안 좋은 시각이 드러날 때마다 실망하는 경우가 너무 많아요. 저들에게 저는 그냥 애 낳아야 하는데 왜 안 낳는지 궁금한 여자겠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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