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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경수술에서 나오는 포피를 어떻게 할 것이냐 by mori

제목만 보면 이게 뭔가 하고 싶은데 나는 역시 생물학적 남성이 아니므로 포피foreskin이 무엇인지 정확히 알기 위해서 구글 이미지에 검색을 해보는 과오를 저질렀다;; 내가 포피란 단어를 처음 본 것은, 시에나의 가타리나(Catherine of Siena, 1347-1380)가 예수와 합일할 때에 예수에게서 반지로 예수의 포피를 받았다는-_- 내용이었다. 바이넘의 <성스러운 잔치, 성스러운 금식Holy Feast and Holy Fast>에 나왔다. 가타리나의 편지 중에 나온 내용인데, 원문을 참고할 여유는 없고 바이넘의 해당 구절을 번역해봤다.



성인전의 설명에 따르면 가타리나는 보석이 박힌 은이나 금으로 된 반지로 [예수와] 결혼했고 레이몬드[성인전 작가]는 가타리나가 이 반지를 언제나 볼 수 있었다고 말했다. 하지만 가타리나 그녀 자신은 여러 편지에서 말하길, 우리는 예수와 결혼할 때 금이나 은으로 된 반지라 아니라 그리스도의 포피로 된 반지와 결혼한다고 했다. 이 포피는 예수의 할례에 주어진 것이고 고통과 흐르는 피와 함께 한다. 가타리나를 찬미하던 사람들은 그녀가 예수의 문자적인 살, 즉 그 성스러운 살을 끼고 있다고 생각했고 이 때문에 그녀는 배고픔과 목마름, 추위로 인한 평상시 신체감각으로부터 보호받는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가타리나 그녀 자체는 그 포피가 대체품이라거나 보호체라고는 보기보다는 [예수가] 세상을 위해 흘린 피와 고통이라는 데에 더 의미를 두었다. 



이처럼 가타리나에게 포피란 예수의 할례를 떠올리는 것이었고, 예수의 고통이자, 예수와 신자들과의 합일을 약속하는 증표였다. 하지만 역시 포피를 반지로 끼고 있는 것은-_- 매우 그로테스크한 이미지인데 한편 오늘의 주인공, 빙엔의 힐데가르트(Hildegard of Bingen, 1098-1179)는 포피 자체를 극복해야할 대상으로 본 것이 특이해서 글을 남겨본다. 






아브라함이 자기 스스로에게 할례를 행하는 모습. BnF, Français 15397, fol. 22v

그림 출처는 http://discardingimages.tumblr.com/post/126759149418/hi-abe-what-do-you-got-there-circumcision-of





예수의 할례. 그림의 정보는 잘 모르겠고, 출처는 http://www.renegadetribune.com/barbarians-and-greed/ 골치 아프다는 듯이 머리를 손에 기대고 있으면서도 자신의 할례를 평안한 표정으로 쳐다보는 예수와, 예수를 할례시키려고 심각하게 집도하는 남자의 표정이 대비되는게 재밌다.



힐데가르트의 <스키비아스>에 나오는 내용 중 일부이다, 맥락을 좀 설명하자면, 힐데가르트는 여자와 남자의 욕망을 설명하고 어떤 사람들이 자신의 욕망 대신 예수를 선택해서 금욕생활을 하기도 한다고 설명한다. 그러면서 욕망의 근원을 설명하다가 인간의 원죄에 대한 설명이 나오고 이게 할례로까지 연결이 된다. 힐데가르트에게 할례는, 원죄 때문에 나온 것이다. 굳이 여자로 따지자면 월경? 아래 챕터 자체는 금욕하는 남성에 대한 내용이다. 





신에 대한 사랑으로 결혼을 거부하는 남자는 신의 아들의 배우자이다. 

어떤 강한 남자가 배우자를 결혼으로 이끄는 것을 거부하고 나의 아들 예수에 대한 사랑으로 자기 자신을 통제한다고 해보자. 그 남자는 아이를 낳는 것으로 완성되는 자신의 천성에서 오는 그 힘을 맞서는 것이다. 그는 자신의 육체적인 욕망을 만족시키지 않으려고 자기의 몸을 조절한다. 남자는 ㅇ런 방식으로 나를 매우 기쁘게 하며 자기 자신을 이기는 것이다. 이렇게되면 나는 그 역시 나의 아들 예수의 배우자로 삼을 것이고, 예수를 그 남자의 얼굴 앞에 있는 고요한 거울처럼 세울 것이다. 왜냐하면 이 남자는 악마에 맞섰기 때문이다. 이 악마는 인류 전체를 더럽고 사악한 부정을 통해 자기에게 끌어왔다. 인류를 이런 간교한 계략에서 구하기 위해, 나는 내 아들 예수를 이 세상에 보냈고, 아무런 죄의 얼룩 없는 달콤한 동정녀에게서 태어나게 했다. 그리고 이 순결한 양 예수는 구원의 샘을 가져왔고 신성하게 해서, 고대의 죄에서 온 포피를 없애버렸다. 이것은 무엇인가?

이 쓰라린 포피는 아담이 저지른 죄악이며, 나의 아들 예수가 없애버린 것이기도 하다. 예수는 자기 자신이 구원의 샘으로 들어가 그리스도교인들 무리를 고귀하게 구별해여, 인간을 속였던 그 고대의 뱀이 그 같은 샘의 씻음에 익사하게 했다. 어떻게? 내 아들 예수는 자기 아버지의 명령을 완수했고, 그의 유산을 물려받았다. 이것은 무엇을 의미하는가? 아담의 후손은 아담의 죄로 인해 기쁨의 장소에서 쫓겨났다. 하지만 구원의 세례를 통해 그들은 다시 내 아들 예수의 삶으로 불러들여졌다. 어떻게? 예수 그 자신은 나의 명령을 거부했던 불신자들에게도 축복하는 말을 남겼다. 그리하여 이 불신자들이 겁이 나서 영혼으로 회개를 하여 용서를 구하게 했다. 이는 나의 종 이사야가 내가 말한대로 증거했던 바와 같다. 






즉 힐데가르트에게는, 포피는 원죄의 상징이요 인간에게 있는 신체적인 욕망의 증거이다. 시에나의 가타리나에게 포피는 예수의 고통받는 육체를 의미했다면, 힐데가르트에게 포피는 예수가 없애야할 원죄였다. 나중에 설명하지만, 힐데가르트는 예수가 왔기 때문에 이제 사람들이 할례를 꼭 받지 않아도 된다고 주장한다. 즉, 예수가 와서 자신을 따르는 사람들을 구분했기에, 사람들은 이제 굳이 할례를 해서 자신이 신의 선택받은 사람이라는 걸 증명하지 않아도 되게 해방되었던 것이다. 

아 그리고 재밌었던 건, 이 부분 바로 앞에 힐데가르트가 여성의 성적인 욕망과 여성의 금욕을 말하는데, 여성의 금욕에서 악마는 나오지 않고 남성의 욕망보다 좀 더 덜 심각하게 참을 수 있는 것으로 묘사된다. 그리고 이제는 구태의연하긴 하지만, 금욕수행 중인 남자도 남자 예수의 배우자가 될 수 있다는 것! 







덧글

  • 라비안로즈 2016/09/19 11:53 # 답글

    구글이미지에 .... 이미지가 어떻게 나왔는지는 저는 보지 않겠습니다.. 그나저나 예수님의 포피로 반지를....(...) 뭔가 괴악하네요.
    그림이 좀 회화화되어서 웃긴 느낌도 나고 그러네요.
  • mori 2016/09/19 12:13 #

    그게 감성이 지금과 중세가 달랐다는 게 신기하기도 하고 그래요! 엄연히 종교화일텐데 지금은 아마-_- 그렇게 잘 안 쓰이겠죠 ㅎㅎ
  • 행복한세상 2016/09/19 12:01 # 답글

    미성년자들에게 성기 사진은 안좋습니다
  • mori 2016/09/19 12:14 #

    미성년자는 아니지만-_- 제 멘탈에 살짝 금이 갈 뻔 했습니다;;
  • santalinus 2016/09/19 12:10 # 답글

    아;;;;; 그림들이 좀 그로테스크 하네요....ㅠ.ㅠ
  • mori 2016/09/19 12:14 #

    당사자들의 표정은 평안해보여서 더 그로테스크한 것 같습니다 ㅠㅠ
  • 액시움 2016/09/19 12:20 # 답글

    기독교에서 예수와 인간의 관계는 여러 가지 관계로 비유되니까요.부모와 자식, 신랑과 신부, 주인과 종, 친구와 친구...그 중에서 신랑과 신부는 특히 서로에 대한 예와 죄에 대한 순결을 강조할 때 나타납니다. 기독교에서 성욕과 성행위 그 자체는 나쁜 것이 아니지만, 인간의 죄로 타락해버린 욕망 중 특히 생명과 연결된 것이기에 가장 경계하는 욕망이죠. 여성은 원죄로 인해 출산과 월경의고통을 겪게 되었으나 남자는 성과 관련해 아무 고통도 받지 않았기에 할례는 죄의 고통을 상징하게 되지요. (그런 의미에서 아프리카 여성 할례는 여성 억압 외에는 정말 아무 의미도 없는 행위...)
  • mori 2016/09/19 13:19 #

    아프리카 할례는 진짜 뒷목잡는 이야기이지요;; 여성 성인이 할례 자체를 극단적으로 죄와 연결시킨 것은 아마 지금까지 읽은 중세종교서중에서는 처음이라 좀 더 연구해보고 싶어요.
    예수와 비교한다면 남성이든 여성이든 그의 신부가 되는 게 금욕의 목표였을테지만, 또 우리의 예수가 직접 신부가 되거나 어머니가 되거나 다양하게 등장하는 것은 지금으로봐서는 좀 낯선 것일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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