라이프로그


완벽한 하루 by mori

왜, 살다보면 아 오늘은 완벽한 하루였다 이럴 때가 정말 평생에 며칠 있지 않을까? 지난주 금요일이 나에게는 그런 하루였기에, 기록해본다. 뭐 완전히 좋은 날도 아니었고 망친 날도 아니었는데, 그냥 그 자체로, 아 이거보다 더 좋거나 나쁠 수 없는 날이었구나, 이런?



요즘 편두통 때문인지 감기 몸살인지 근 일주일 넘도록 아침 일찍 못 일어나고 있었다. 금요일 아침도 마찬가지였다. 겨우겨우 몸을 일으킨 게 오전 9시. 지끈지끈 아픈 머리로 까페까지 갈 수는 없어서 겨우겨우 책상에 앉아서, 카누 미니 세 봉에 차가운 우유 가득 붓고 아이스라떼를 만들었다. 그리고 전날 얻어온 초콜렛 치즈케익과 키라임치파이를 먹었다. 두 시간 정도 논문을 썼다.

그리고 맛있는 커피가 먹고 싶어졌다. 계속 아파서 못 가고 있었던 단골까페에 갔다. 화이트플랫을 시키고 랩탑을 열어 컨퍼런스 페이퍼를 40분 정도 준비했다. 그리고 책을 좀 읽었다. 양옆자리 애들이 너무 시끄러웠던 것에 비해서는 그래도 집중이 잘 되었다. 일기도 쓰고, 이제 나와도 되겠다 싶었을 때 나왔다. 마트에 들러서 장을 보고, 세탁소에 들러서 옷을 맡기고, 택배사에 들러서 택배를 부쳤다.

집에 돌아와서 허겁지겁 라면을 끓였다. 엄마가 한국에서 보내준 진짬뽕을 급하게 먹고, 이러다간 또 아프다고 침대에 누워버릴 것 같아서 운동복을 갈아입고 책 한권 들고 학교에 갔다. 도서관에서 한 시간 정도 책을 읽고, 체육관에 가서 한 시간 운동을 했다. 

다시 집. 샤워를 하고 책상에 앉아서 한국 방송을 틀었는데 갑자기 맥주가 간절했다. 하지만 이미 이틀 연속 술자리에 간지라 오늘은 자제해야지하고 그냥 술안주만 만들어서 레몬에이드랑 먹었다. 무쇠냄비를 달구고 베이컨 볶은 다음에 버섯 살짝 넣어서 먹었음. 그리고 책 읽은 것 중에 기록할 만한 걸 컴퓨터에 옮기며 한국 방송을 보았다. 그리고 밤 열시 쯤 요즘 필사하고 있는 <성학집요>를 다시 쓰기 시작했다. 열시 반 쯤 친구한테 문자가 옴-_- 열두 시에 학교 술집에서 보자고. 송별파티가 될지도 모르는지라 알았다고 하고 나갈 준비를 했다. 남은 시간에 <성학집요>를 다시 쓰는데-_- 이이가 엄청 성실하게 살라고 말하고 말하고 말하는데 술마시러 늦게 나가려니 매우 찔렸음;; 하지만 뭐 성실하게 술 마시면 되는거니까(?).

밤 열두시에 학교까지 걸어갈까하다가 아무리 여기가 안전하다고 해도 이건 좀 아니다 싶어서 차를 몰고 학교 술집 앞에 깜박이를 켜놓고 대놓았다. 그리고 열두 시에 맞춰서 술집에 들어갔는데 당연히-_- 애들이 와있을리가 없었음. 혼자 술집에서 마시는 건 아무래도 좀 뻘쭘해서 어버버하고 있으려니, 바텐더 중 한 명이 아는 척을 함. 알고보니 친구의 친구였음. 그래서 걔 일본 갔다온 얘기하면서 떠들고 있는데 내 친구들이 왔다. 그래서 서로 인사시키고 우리는 밖으로 나갔다.

그리고-_- 두 시까지 맥주를 마셨음. 이곳은 새벽 두 시에 무조건 술집이 문을 닫아야 하는지라 애들이 술을 일단 더 사옴. 근데 내가 화장실을 가려고 했는데 술집 화장실도 문을 닫는거다. 학교 건물에 들어가려면 엑세스가 필요한데, 마침 나온 바텐더가 자기 건물로 가자고 함. 그래서 나는 핸드폰이랑 다 놓고 걔랑 건물로 걸어갔다. 한 5분 거리? 근데 화장실 갔다가 나오려니, 이노무 바텐더가-_- 나가는 방법을 안 알려주는거다. 이노무 시키가 지금 장난하나. 내가 얘 잘 아는 것도 아니고 내가 지금 내가 잘 아는 건물에 있는 것도 아니고, 이게 내가 취해서 그런건지 건물 구조가 달라서 그런건지 엘리베이터가 양쪽으로 열리는데 내가 방향감각을 잃어버림. 문 같이 생긴 데를 발견하긴 했는데 안 열림-_- 내가 걔한테 빨리 나가는 방법 알려달라고 하니까, 걔가 그냥 느물느물 웃으면서 내가 공짜로 그걸 너에게 왜 가르쳐줘야하냐고 그러고 있어-_- 야 너 지금 나랑 장난하냐-_- 걔가 자꾸 스킨십을 하려고 하는데 내가 지금 난 핸드폰도 없고 친구들이 나 걱정할테고 이러다가 무슨 일 당하면 어쩌나 너무 걱정이 되어서 걔한테 계속 사정사정하고 그래서-_- 결국 다음날 우리들 친구 파티에 가는 걸로 약속을 하고 밖으로 나옴-_- 걔랑 그렇게 말싸움하면서 근 한 시간이 지남... 이노무시키가 진짜 지는 장난이라고 쳐도 나는 장난인지 아닌지 모른다고-_- 

밖으로 겨우 나오니 친구들이 나 찾으려고 전화도 하고 건물 뒤지고 있었음. 아마 내가 술취해서 건물 안에서 자고 있었던 걸로 생각했나보다. 그 와중에 내꺼 맥주 한 잔을 곱게-_- 지키고 있어서 그거는 그냥 몰래 버리려다가 들키고 어쨌든 집으로 가자고 함. 애들이 조심해서 운전하라고 하고 작별인사도 하고 헤어짐. 근데 이때부터가 이 날의 하이라이트였다 ㅋㅋㅋㅋㅋ

집 주차장은 게이트가 있어서 내가 리모콘으로 열어야한다. 주차를 하고 차 밖으로 나왔는데 게이트 밖에서 누가 손을 크게 저으면서 뛰어들어오는거다. 난 또 누가 담배 피러 밖에 나왔다가 열쇠가 없어서 못 들어오고 있었다든가 그런 일인 줄 알고 리모콘으로 문을 다시 열었다. 나는 이 순간에 눈이 잘 안 보이는 상태였다. 밤이 아직 더워서 안경이 뿌애져서. 근데 이 사람이 나를 향해 달려오는데 이런 세상에 바지를 벗고 있어-_- 내가 이 사람 얼굴 같은 건 하나도 안 보였는데 뿌연 유리로, 그 사람 바지가 발목에 걸려있고 그 남자는 그 채로 종종거리면서 나에게 달려오고 있었다. 이런 쉐...ㅅ... 그 사람이 뭐라고 소리치는데 난 모르겠고 그 와중에 아주-_- 공손하게 나는 됐다고 소리치고, 아파트 출입문으로 죽어라고 뛰었다. 하필이면 출입문이 그 사람이랑 나랑 중간에 있어서, 잡히면 어쩌지 너무 무서웠음. 근데 일단 출입문은 열쇠가 있어야 해서 들어오면 안전. 어쨌든 죽을 힘을 다혜 뛰어서 들어왔고, 다행히 그 뵨태놈은 바지가 발목에 걸려서-_- 나를 잡는데 실패하고 주차장에 갇히지 않기 위해 몸을 돌려 다시 게이트 열린 사이로 뛰고 있었음-_-

오우 나에게 무슨 일이 있을 뻔한건가, 뛰는 심장을 부여잡고, 하지만 일단 씻어야 했기에 씻고-_- 침대로 갔는데 일단 너무 놀라서 심장이 뛰느라 잠이 안오고, 악몽을 꿨다. 다음날 아파트 오피스에 얘기하니 그럴 때는 무조건 경찰을 부르라고 함. 차에서 나오지 말고. 근데 차에 있는데 밖에 그런 놈이 있으면안전은 해도 너무 무서울 것 같다 ㅠㅠㅠ 

하여튼 이렇게 완벽한(?) 하루를 보내고, 토요일에 또 약속이 있었고 밤에 친구 파티에도 가서 그 나쁜 바텐더-_-도 만났는데 걔도 전날 너무 취했었는지 어제는 또 상대적으로 멀쩡했어서 얘기나 좀 하다가 집에 일찍 돌아왔다. 아무리 생각해도 금요일은 완벽한 날이긴 했는데 다시 이런 날은 보내고 싶지 않다. 



덧글

  • 다음엇지 2016/09/19 20:08 # 답글

    ㅠ.ㅠ
  • mori 2016/09/19 20:30 #

    큰일이 날 뻔한 날이었습니다 ㅜㅜ
  • 2016/09/20 09:30 # 삭제 답글

    뭐 이런... 이상한 넘들이 설쳐대는지!
    이래저래 많이 놀랐겠다.. 별 일 없어서 정말 다행이야ㅠㅠ 토닥토닥..
  • mori 2016/09/20 22:03 #

    여기 사는 데는 그래도 치안이 좋은데인데 방심을 하지는 말아야겠어 ㅠ 엄청나게 다이나믹한 날이었어 ㅋㅋ
  • 2016/09/22 23:08 # 답글 비공개

    비공개 덧글입니다.
  • 2016/09/23 00:55 # 비공개

    비공개 답글입니다.
  • santalinus 2016/09/25 16:07 # 답글

    아 ;;;;진짜 고생하셨어요...ㅠ.ㅠ 그동네도 또라이들이 진짜 많은가 봐요....ㅜ.ㅜ
  • mori 2016/09/25 20:32 #

    음-_- 몇 년 안전하게 살았다고 생각했는데 그냥 운이 좋았던 것인가봅니다
  • 따뜻한 허스키 2016/09/26 06:00 # 답글

    으에!!! 완벽한 하루라길래 ^ㅅ^ 이러며 글읽기 시작하다.. 중반부더 ㅇㅂㅇ;;; 하면서 떨면서 봤어요!!!! 저도 조심해야겠다 싶습니다!!! 경고하는 날인가봐여!!ㅇㅂㅇ!!
  • mori 2016/09/26 07:10 #

    읍읍 그 자체로는 완벽한데 다시는 겪고 싶지 않은? 이게 사건이 일어나는 건 한 순간인듯합니다 ㅠㅠㅠ 따듯한 허스키님도 조심하세요!! 자나깨나 사람조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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