라이프로그


나는 비판받는 예언자다 - 성녀 힐데가르트 by mori

뉴스보느라 정신도 없고 힘도 없는 요즘이지만 힘을 짜내어 글을 써 본다. 자기가 사람들에게 핍박받기 때문에 오히려 자신이 예언자인걸 확신하는 중세 성녀 힐데가르트(Hildegard of Bingen, 1098-1179). 지금 비판 엄청 받는 대통령은 그런 생각을 하지 않길 바라며-_- 물론 힐데가르트는 공인된 성녀이지만, 생각해보면 이런 사람이 주변에 있으면 매우 짜증이 날 것 같기도 하다.  




Hildegard-Gebetbuch Codex Latinus Monacensis 935. Wiesbaden: L. Reichert, 1982. BX4700.H5 A3 1982 Special Collections

블로그 내용과는 직접 상관은 없지만 12세기에 나온, 힐데가르트의 기도서. 예쁘다. 나는 아직 이렇게 예쁜 채색 그림이 있는 책은 직접 만져본 적은 없다. 사진 출처는 http://www.library.arizona.edu/exhibits/illuman/12_02.html




아래 내용은 영어를 한국어로 옮긴 내 번역이다. <힐데가르트의 성인전The Life of the Holy Hildegard>은 라틴어에서 영어로 직접 번역된 것은 못 찾았고, 라틴어에서 독일어에서 영어로 중역된 것을 또 한국어로 옮겨본다. 성인전의 두 번째 책의 일부이다. 성인전 작가가 옮겼지만 이 내용은 힐데가르트의 말이다.






오랫동안 나의 눈은 침침해졌습니다. 나는 더이상 불빛을 볼 수 없었습니다. 나는 내 몸이 엄청난 짐으로 구부러져 일어날 수가 없다고 느꼈고, 엄청난 고통에 드러누웠습니다. 나는 나에게 보여진 그 환시를 드러내길 원하지 않았기 때문에 특히 고통받았습니다. 그 환시는 내가 다른 자매들과 함께, 신에게 축성되었던 그 장소를 떠나서 다른 곳으로 가라는 환시였습니다. 나는 그 장소에 남아있는 동안 계속 아팠습니다. 내 시력이 돌아오자마자 나는 단숨에 안도했으나, 이 쇠약에서 완전히 벗어나지는 못했습니다. 하지만 내 주교와 다른 형제들, 그리고 이웃의 사람들이 내가 장소를 옮기는 것과 그 장소에 대해 알자마자 매우 놀랐습니다. 왜냐하면 우리는 비옥한 밭과 포도원을 떠나 아름다운 곳에서 메마른 곳으로 떠나고 싶어했기 때문입니다. 나를 염려해서 그들은 내가 착시에 속는 것이라 말했습니다. 내가 그 말을 들었을 때, 내 심장은 슬퍼졌고, 나의 살과 핏줄은 뻣뻣해졌습니다. 내가 그것으로 인해 많은 날들동안 침대에 누워있는 동안 나는 강력한 목소리가 나에게 이 곳에서 그 환시에 대해 더 말하고 더 적으라고 명령하는 것을 들었습니다.

바로 그 때에, 잘 알려진 백작부인 [Richardis of Stade]이 마인츠Mainz의 대주교에게 가서 그와 다른 현명한 남자들에게 이것에 대해 모두 예기했습니다. 그들이 말하길, 모든 장소가 특별하게 그리고 각각 선한 일들로 축복받았다고 말했습니다. 이런 이유로, 그들은 이 계획이 실행되어야 한다고 보았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대주교의 허락을 받아 우리는 우리의 친척들과 다른 사람들로 이루어진 군중을 데리고 신에 대한 존경으로 이 장소에 왔습니다.

하지만 이제 악마, 오래된 사기꾼이 조롱을 움직이기 시작했고, 그 결과로 많은 사람들이 이렇게 말했습니다. "이 비밀들이 이 멍청하고 교육도 못 받은 여자에게 드러난다는게 도대체 무슨 뜻인가? 튼튼하고 현명한 사람이 주위에 이렇게나 많은데! 이 일은 멈춰져야만 한다!" 너무도 많은 사람들이 내 계시에 대해 의문을 갖고 내가 신에게서 온 것인지 아니면 악령에게서 온 것인지 물었기에, 이게 사람들을 비뚤게 했습니다. 그 후에 나는 이 장소 [Rupertsberg]에 부유한 부모에게서 온 20명의 귀족 수녀들과 함께 자리를 잡았습니다. 불쾌함과 고통과 힘겨운 일들이 마치 태양을 가리는 태풍의 구름처럼 나를 덮쳤습니다. 이 때에 나는 신음했고, 많은 눈물을 흘렸고, 말했습니다. "오 오 신이시여 그를 믿는 사람들을 저버리지 마십시오!" 이 시점에 구름이 사라지고 태양이 나타나듯이, 어머니가 우는 아이를 가슴에서 다독여 아이가 운 후에 즐거워하듯이, 신은 나에게 다시 영광을 보내셨습니다. 

그러자 나는 진실된 환시를 보았는데, 모세를 괴롭힌 것과 같은 이 고통을 내가 극복하리란 것이었습니다. 모세가 이스라엘의 아이들을 데리고 이집트를 떠나 버려진 땅으로 갈 때에, 이스라엘인들은 신이 기이한 징후들을 보내줬음에도 불구하고 신에게 불평했고, 모세에게 대적했습니다 (출애굽 16:2ff.). 그러므로 신은 나에게 평민들, 내 친척들, 나와 살고 있는 몇몇 사람들에게 재판을 받게 하신 것입니다. 신의 은혜가 없다면 누가 우리에게 자선을 버푸는 일 없아 우리에게 삶의 필요한 것들이 없을 수 밖에 없습니다. 이스라엘의 자손들이 모세의 심장을 무겁게 만들었듯이, 내 경우에도 사람들이 나에게 머리를 흔들면서 말합니다. "이 귀족 부유한 수녀들이 그들에게 필요한 모든 것이 있었던 곳에서 떠나는 것은 도대체 무슨 소용이 있을까" 하지만 우리는 우리에게 드러났던 신의 영광이 이 장소에서 우리와 함께하길 바랍니다. 






힐데가르트는 자신이 세웠던 수도원을 떠나 전혀 다른 곳, 루페르츠베르크에 자리를 잡았는데 그 때 사람들에게 반대를 많이 받았던 것으로 보인다. 이 부분에는 자세히 나오지는 않지만, 힐데가르트의 결정이 받아들여지지가 않았고 힐데가르트는 자신의 결정이 받아들여질 때까지 엄청난 신체적인 고통을 받게 된다. 이것은 신의 의지가 개입된 것으로 받아들여졌고, 힐데가르트의 결정이 허락을 받아 결국 수도원을 옮기게 된다. 하지만 이사 이후에도 사람들은 여전히 쑥덕거렸고, 힐데가르트는 이런 것으로 고통받는 자신을 모세와 동일시한다. 모세가 선지자였는데 사람들에게 이해를 받지 못해 핍박받은 것처럼, 자기도 선지자인데 사람들이 신의 메세지를 이해하지 못하고 핍박받는다는 것. 그리고 모세가 이스라엘인들을 데리고 광야로 나온 것처럼 자신도 귀족출신 수녀들을 데리고 척박한 땅으로 옮긴 것이며, 결국 이스라엘인들이 젖과 꿀이 흐르는 가나안으로 들어간 것처럼 자신이 데리고 있는 수녀들도 루페르츠베르크에서 올바른 삶을 누리게 될 것이라고 보고있다. 이 부분은 힐데가르트가 자신의 고통에 어떻게 종교적인 의미를 부여하는지 보여주는 동시에, 자신을 선지자의 모세와 비교하는 대담함까지 보여준다. 다른 인간들 눈에 그녀는 한낱 평범하고 무식한 여인네에 지나지 않을 뿐이지만 말이다. 





덧글

  • 효도하자 2016/11/27 14:32 # 답글

    고통스러우면 신성하다. 뭐 그런 느낌이네요.
  • mori 2016/11/27 23:34 #

    아 맞다 그 기원은 예수까지 거슬러올라갑니다. 예수의 고난이 신성함을 대변하는 논리랄까요??
  • 남중생 2016/11/28 01:41 # 답글

    (현명한) 남자들의 공인을 통해서만 인정받을 수 있다는게 전제로 깔려있군요.
  • mori 2016/11/28 21:03 #

    그렇죠 공인이 없으면 되려 악마에 들렸다고 오해(?)를 받을 수도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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