라이프로그


나한테 페미니즘이 뭔지 설명좀 하라고 하지마 - <우리에겐 언어가 필요하다: 입이 트이는 페미니즘> by mori

우와 최근 몇 년 간 읽은 책 중에 이렇게 맘이 뻥 뚫리고, 속 시원해지고, 가려운 곳 긁어주는 책이 없었다. SNS 상에서 알게 된 책으로, 읽기 전에도 기대를 했지만 읽고 나서는 내 기대를 1000% 채운 책이다. 일단 페미니즘에 대해 반대하는 분은 읽지 마시길. 당신을 위한 책이 아닙니다.


이민경, <우리에겐 언어가 필요하다: 입이 트이는 페미니즘>, 봄알람, 2016.





마음에 드는 구절이 있는 페이지를 접어놨는데 하도 그런 페이지가 많아서 옮기지는 못한다. 골자는 그것이다. 당신은 페미니즘에 반대를 하는 사람에게 페미니즘이 무엇인지 설명을 할 필요가 없다.

어떻게 보면 제목하고 상반이 될 것 같다. 우리에겐 언어가 필요하다고 해놓고, 입이 트이는 페미니즘이라고 해놓고, 우리는 페미니즘을 설명하지 않아도 된다니? 

많은 여성들은 그런 경험이 있지 않나? 나만해도, 여성이 불합리한 이유로 성차별을 받고 있다는 사실, 그것도 뭐 일반화 어쩌고 할 것도 아니라 당장 내가 어떠한 점에서 여성이라고 이러저러한 나쁜 대우를 받았다고 토로를 했을 뿐인데 이걸 듣는 상대방 남성이 그걸 받아들이지 못하고, 그게 왜 차별이야? 너는 왜 그렇게 하지 않았어? 그게 왜 페미니즘과 연결돼? 왜 그게 너가 여자인것과 관련돼? 페미니즘이 뭔데?라고 이어지는 정말 어이없고 진빠지는 질문들.

저자는 말한다, 우리는 그런 질문들에 대해 대답할 필요가 없다.

왜?

상대방이 들을 준비가 되어있고 말고는 2차적인 문제다. 1차적인 문제는 그거다. 내가 설명하고 싶으면 하는 거고 안 하고 싶으면 안 하는거다.

이 너무나 지극히 당연해보이는 이유를, 최소한 나는 지금까지 잊으려고 노력했다. 저자가 이 책의 앞부분에서 말하는 것처럼 어떤 남성이 여성 차별에 대해 무지몽매하게 군다면 이걸 다독여서 설명해주고 상대방을 이해시키는 것이 나의 의무이자 사명이라고 생각했다는 것. 모든 사람에게는 아니지만, 최소한 내가 그래도 말을 알아들을 만하다고 생각하는 사람에게는 내가 페미니즘에 대해 알려주고 설명해주고, 상대방이 페미니즘에 대해 오해하고 있다면 이를 바로잡아주는 것이 내 의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저자는 그럴 필요가 없다고 단언한다. 1차적으로 내가 원하지 않으면 할 필요가 없다. 2차적으로 상대방이 내 의견을 수용할 생각이 없으면, 즉 자기 의견만 죽어라고 고집할 마음가짐이라면 더더욱이 말할 필요가 없다는 것.

내가 지금까지 겪은 많은 일이란 정말, 이 책에 나오는 사례와 100% 일치하는 것들이었다.

여성혐오란 단어를 처음 들어보는 생물학적 남성이, 여성혐오가 무엇이냐고 나에게 물었다. 나는 설명을 했지. 근데 내가 틀렸대. 자기가 생각하는 여성혐오는 이런거래.

이보세요 지금 당신은 그 단어를 내 입에서 처음 들었고, 내가 그 단어의 뜻을 설명하는 것을 들었는데, 지금 즉석에서 내가 틀렸다고 하는거야?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나는 근데 황당함을 뒤로하고, 이 잘못알고 있는 친구를 잘 설득시키기 위해 또 설명했지. 영어사전도 보여주고, 이런저런 정보를 찾아서 보여줬다. 왜냐? 그 친구는 내가 객관적이지 않다고 ㅋㅋㅋㅋㅋㅋㅋ 비난했거든. 근데 내가 사전 찾아서 뜻 보여줘봤자, 나 혼자가 아니라 많은 사람들이, 그리고 많은 권위자들이 여성험오란 단어의 뜻을 어떻게 정의내리고 있는지에 대해 보여주면 이 사람이 수긍하던가?

아니었다.

이건 맨스플레인과도 관련이 될 텐데 얘는 정말 내가 계속 틀리다고 우기는 거다. 자기가 맞다고 생각하는 건 이런거래. 아니 너가 그렇게 생각하면 뭐해 사회적으로 통용되는 단어의 뜻, 그리고 이 단어와 직접적으로 연관되는 여성들은 이런 뜻으로 쓴다니까? 근데 설득이 안돼. 아무리 뭘 보여주고 토론을 해도 얘는 내 얘기를 들을 생각이 없고, 내가 틀리다는 것만 증명하고 싶어한다. 말도 안되는 논리를 계속 반복하면서. 그러다가 내가 빡쳐서 목소리가 높아지면, 왜 이렇게 감정적으로 나오냐고 되려 나를 가르치려 든다. 이 책 첫부분에 고구마 그림도 있는데, 내 심정이 정말 그렇다.

저자는 내가 그럴 필요가 없다고 딱 집어서 얘기하고 있는거다.

상대방이 들어먹을 자세가 안 되어있는데, 우리는 얼마나 책임감을 가지고 이들에게 올바른 정보를 전달하기 위해 기진맥진해왔나. 그럴 필요가 없다는 것이다. 왜 알고 싶은 사람이 직접 정보를 찾지 않고, 남이 대신 떠먹여주길 바라는 거지? 다른 학문을 예로 들어보자. 사회주의, 알고 싶은 사람이 공부해서 아는 거지 그걸 이미 알고 있는 사람이 모르는 사람 붙잡고 설명해줘야하나? 게다가 이 사람은 사회주의에 대해 반감을 갖고 있고 이해하고 싶어하지도 않은데? 그냥 사회주의가 틀렸다고 말하고 싶은건데, 나에게, 사회주의를 하나도 모르지만?

쓰다보니 또 열받네. 할 말이 매우 많지만 다음의 사진으로 끝을 맺는다. 이 책 중간에 실린 삽화인데 정말 유용한 사진이니 저장해놓고 두고두고 마음에 새기련다.

 

덧글

  • 2016/12/28 11:04 # 답글 비공개

    비공개 덧글입니다.
  • 2016/12/28 11:42 # 비공개

    비공개 답글입니다.
댓글 입력 영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