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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에 대한 나의 기억을 붙잡기 위해 - <너의 이름은> <도깨비> <흠영欽英> by mori

망각과 기억 사이. 영화 <너의 이름은>, 드라마 <도깨비>, 조선후기 유학자 유만주(兪晩柱, 1755-1788)의 일기문인 <흠영欽英>. 장르도 다르고 다루고 있는 내용도 다르지만, 비슷한 시기에 나온 이 세 작품을 동시에 접하고 드는 생각이 있었다. 나는 지금까지, 사람이 자신이 잊혀지는 것에 두려움을 가진다고 생각했는데 이 세 작품은 모두 사람이 자신이 잊는 것에 대한 두려움과  자신이 잊지 않기 위해 몸부림치는 노력을 보여줬다. 







1월29일 기준 벌써 누적관객수 300만을 훌쩍 넘은 영화 <너의 이름은>. 공식사이트는 여기. 미야자키 하야오와 함께 자주 거론되는 신카이 마코트(新海誠, 1973 - )의 작품. 쓰나미와 지진을 겪은 일본에게도 울림이 있었지만, 세월호의 비극을 목격한 한국에서도 비슷하게 반향이 있었다고 본다. 근데 이 애니메이션에 나오는 정말 고착화된 성역할은 짜증나지만 그래도 재밌게 봤다는 건 인정할 수 밖에. 






얼마 전 종영한 tvN의 <도깨비> 마지막 장면. <도깨비>의 공식 홈페이지는 여기. <태양의 후예>, <시크릿 가든>, <파리의 여인> 등의 작품으로 이미 유명한 김은숙 작가의 드라마이다. 나는 드라마 자체를 안 볼 뿐더러, 방영을 할 때 보는 경우는 더더욱 드문데 이런 룰을 깰 정도로 재밌게 봤다. 그런데 여주가 19세로 처음 등장하고, 나중에 29세는 죽고 다시 여고생을 나오는 건 좀 무서워. 한국은 여성에 대해 거대한 소아성애즘에 사로잡혀있는게 아닐까? 이 포스팅은 공유에 대한 사심으로 작성되었습니다. 








조선 후기 유만주가 21세 되던 해부터 죽기 전까지 11년 동안 24권으로 작성한 일기문 <흠영>. 이미지와 설명은 한국민족대백과를 참고하였다. 여기. 자기가 자기 일기장에 이름을 적었다는 게 조금 흠짓하기는 하지만 뭐 조선의 감성이라 치자. "흠영"은 "책에서 만나는 아름답고 훌륭하는 이들을 흠모한다는 뜻이라고 (27). 현대어로 번역된 흠영 선집도 <일기를 쓰다>라는 제목으로 두 권 나와있고, 현재 서울역사박물관에서 올해 2월 26일까지 전시를 하고 있다. 적극 추천하는 전시. 아래는 서울 역사박물관 홈페이지에서 가져온 포스터.



<경고문> 아래부터는 스포일러가 있을 수 있습니다.  



상대방에게 나의 기억을 온전히 맡길 수는 없다. 이건 더 불안한 일이다. 상대방의 감정과 기억에 둘 다 의존해야 하기 때문이다. 이 세 작품의 주인공들은 자신기 기억하기를 바란다. 나는 상대방을 사랑하는 마음이 변하지 않을 것이라는 확신을 가지고. 유만주에 사랑에 대해 논하지는 않았지만, 11년 동안 변하는 날씨를 빠짐없이 기록하면서 역사에 남을 책을 남기고 싶어했다. <일기를 쓰다> 1권의 뒷표지에 소개된 일기의 한 부분은 이렇다.



"사람의 목숨은 하늘에 달린 것이므로, 당연히 그걸 늘이거나 줄일 수는 없다. 그러나 내가 겪는 일들은 나 자신에게 달린 것이므로, 그 경험을 상세히 기억하거나 간략히 덜어내는 것은 오직 내가 할 노릇일 따름이다. 그래서 나에게 일어나는 일들을 기록하는 것인데, 그 일들은 하루라는 시간과 이어져 있고, 하루는 한 달과 이어져 있으며, 한 달은 한 해와 이어져 있다. 이렇게 일기를 씀으로써 저 하늘이 나에게 정해 준 목숨을 끝까지 남김없이 살며 하나도 폐기하지 않으려는 것이다."



유만주는 정말 세세한 것들까지 다 기록한다. 해주에 부임가 있는 아버지에게 뭘 받았다, 큰어머니에게 몇 냥 어치의 무슨 물건을 보냈다. 서울역사박물관 전시를 보면 알 수 있듯이, 자기가 오늘 어디를 갔고 누구를 만났고 무슨 얘기를 했나 빠짐없이 기록하고 있다. 유만주는 친구가 많았고, 맨날 친구 만난 얘기를 하고 있는데 정작 자신을 알아주는 사람은 없다고 한탄한다. 자기를 알아주는 사람이 없는 상태에서 유만주는 자신의 일을 외롭게 기록하고 기록했다. 벼루가 얼지는 않을 정도의 날씨. 과거를 보다가 때려친 일. 처가에서 편지가 왔다. 한 냥 반으로 시험지로 쓸 종이 세 폭을 샀다. 종이 자기 이름을 불러서 한스러웠던 일. 자신의 감정과 생각과 함께, 일상을 부지런히 적었다.

<너의 이름은>은 어떤가. 주인공은 두 명이다. 주인공들은 시간 차를 두고 만난다. 시간이 엇갈려, 서로를 알지만 알지 못하는 시기가 있다. 여주인공은, 아직 자신을 모르는 남주인공에게 자기 이름을 외치지만 아직 그 기억에 닿지 않아있는 남주인공에게는 아무 의미가 없었다. 아무 의미가 없지는 않았지. 나중에 둘의 기억이 만들어진 이후, 그리고 시간이 정렬이 된 후에 의미가 생긴다. 시간의 엇갈림, 그리고 과거를 바꾸면서 현재와 미래가 바뀌면서 두 주인공들을 기억까지 잃을 위험에 처한다. 이럴 때 더욱 무서운 것은 상대가 나를 잊을 것이 아니라, 내가 상대를 잊을 것이다. 후반부에 운명이 변하면서 두 사람은 서로의 이름을 기억하기 위해 고군분투한다. 손바닥에 이름을 적지만 그 사이에 잊어버리고 산 속을 달린다(왜?). 하지만 완전히 잊은 것은 아니지. 기억은 없어져지만 잔상은 남고, 두 사람은 서로를 기억하지 못하면서도 내 삶에 뭔가 없다는 공허함에 시달린다. 뭔가 있었는데, 있곤 했는데 지금은 없다. 그런 공허함이 두 사람을 만나게 한다. 만나지만 서로를 일깨우는 것은 상대방의 기억이 아니다. 나의 기억이다.

<도깨비>는 어떤가. 도깨비 신부는 도깨비를 영원의 안식으로 보낸다. 생각해보니 이것도 신부가 할 일인데 도깨비가 하네-_- 동아시아의 드라마나 애니에서 여성은 도대체 무슨 역할을 하는 거냐. 도깨비는 사라지고, 사람들의 기억에서 도깨비 역시 사라진다. 신부는 이걸 알고 자신의 기억을 붙들기 위해 미친듯이 써내려간다. 나는 누구인지. 내가 누구를 만나야 하는지. 내가 누구의 신부인지. 도깨비 신부에게도 기억은 물러갔지만 잔상은 남았다. 우울증으로 남아 뭔지 모를 공허함에 시달리며 눈물을 흘린다. 이유를 모를 뿐. 도깨비는 어떤가. 도깨비는 이승에서 죽고 신을 만나지만 영원의 안식으로 갈 수 있는 기회를 자기 발로 차버린다. 어리석은 선택을 한 것이다. 도깨비가 영원불멸의 삶을 살면서 괴로워했던 것은 자기 자신만 남고 자기 주변의 사람들은 사라지는 것이었다. 도깨비에게는 망각의 자유조차 주어지지 않았다. 기쁜 일이든 슬픈 일이든 기억으로 차곡차곡 쌓이면서 기억의 과잉상태가 되어버렸다. 이 모든 기억에서 해방되어 무로 돌아갈 수 있는 기회를 버리고, 신 조차도 없는 광야에서 도깨비는 자신의 기억을 붙들기 위해 걷고 또 걷는다. 신부에 대한 기억을 버리지 않기 위해 택한 것이었다. 결국 둘은 만나고 또 헤어진다. 이번에는 신부다. 신부는 도깨비에 대한 기억을 놓치지 않기 위해 망각의 차를 마시지 않고 환생한다. 근데 망각의 차는 억지로라도 멕여야 하는 거 아냐??

다시 유만주의 <흠영>으로. <흠영>이 위의 두 작품과 다른 것은 유만주가 죽으면서 유언으로 일기를 불태워달라고 말한 점이다. 유만주는 일상을 붙들기 위해 일기를 써내려갔지만 이것이 미완으로 남는다는 것에 만족하지 못하고 이 기록을 없애달라고 아버지에게 부탁한다. 하지만 아버지는 차마 그러지 못한다. 유만주의 일기문은 유만주의 기억 뿐 아니라 자신이 유만주에 대해 가진 기억도 담고 있기 때문이 아닐까. 아버지는 유만주의 벗인 임로(任魯)에게 부탁하여 유만주의 기억을 세상에 남겨놓았다. 아래는 유만주 아버지가 남긴 말 중 일부이다. 전시의 마지막에 있던 것을 옮긴다.



"아아! 사람들 중에서 실로 비록 장수하였으나 장수하지 않은 것과 마찬가지인 자들이 있으니, 이는 칭송할 것이 못된다. 만야 네 책이 다시 나온다면 네가 비록 요절하였지만 그 수명이 무궁할 것이니, 내가 비록 슬픈지 안 슬픈지 말하지 않는다고 하여도 또 어쩌란 말인가. 그러나 후세는 기대하기 어려우니 이 아픔이 더욱 싶다. 나는 실로 끝내 어떻게 될지 알지 못하겠구나!
아아, 애통하도다! 너는 죽고 나는 산 것이 3년이 되었다는 말이냐? 이 생애 어느 날 다시 부자가 된다는 말이냐. 나는 이미 늙었다. 가슴 속에 얼음과 불을 끌어안고 있으니, 세상에 오래 살기를 바랄 수 있겠느냐, 죽는 날에 너희 부자와 함께 지하에서 노닐어, 여기서 다하지 못한 인연을 다시 이으려하니, 너는 잠시 기다리기 바란다. 말을 그치노라."




나도 여기서 말을 그친다. 

그러려고 했는데 도깨비 OST 중 한 곡과 가사를 올려본다. 



where I am
who I am
감옥 같은 이 쓸쓸함
많은 사람들이 지나갔지만
모두 나를 
지나가기만 했던 이 곳
where I am
who are you
who are you
감출 수 없는 기쁨
미친 듯 세상을 뒤집어 찾던
꿈에서조차 
움켜쥐고 있던 그대
where are you
내가 꼭 찾아낼게
내가 널 알아볼게
니가 있는 곳 어디든
모습이 어떻든
꼭 알아볼게
내가 꼭 기억할게
내가 널 바라볼게
니가 없는 곳에서도
수많은 해가 져도
잊지 않을게
너의 말투 표정 하나까지
담아갈게
흐린 하늘 멈춘 구름
왜 모든 게 두려울까
너와 있는 시간이 느려지고
자꾸 멀어질 
니 손을 붙잡고 있어
I beg for life
내가 꼭 찾아낼게
내가 널 알아볼게
니가 있는 곳 어디든
모습이 어떻든
꼭 알아볼게
내가 꼭 기억할게
내가 널 바라볼게
니가 없는 곳에서도
수많은 해가 져도
잊지 않을게
내가 널 이렇게 
꼭 안고 있으면
자꾸 모두 잊어 버리게 돼
내가 돌아가야 하는 곳
내가 꼭 찾아낼게
내가 널 알아볼게
니가 있는 곳 어디든
모습이 어떻든
꼭 알아볼게
내가 꼭 기억할게
내가 널 바라볼게
니가 없는 곳에서도
수많은 해가 져도
잊지 않을게
너의 말투 표정 하나까지
담아갈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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덧글

  • 진냥 2017/01/30 14:22 # 답글

    저저저저저도 유만주의 한양 전시회 다녀왔습니다!!! 너무나 재미있었습니다...!!!
  • mori 2017/01/30 15:29 #

    저 첫날은 시간이 없어서 잘 못 봐서 아쉬워서 두번 가봤어요!! 이거 진짜 재밌었어요 ㅠㅠ 서울역사박물관 사랑하게 되었습니다.
  • 남중생 2017/01/30 21:15 #

    흠영 전시는 서울역사박물관의 가상전시 (http://www.cgcm.go.kr/CHM_HOME/jsp/MM03/vr/71/index.html)가 짱짱짱입니다! 박물관을 컴퓨터로 돌아다닐 수 있어요. 현장에 틀어놓은 동영상도 다 있고요.
  • mori 2017/01/30 21:40 #

    남중생님 ㅋㅋㅋㅋㅋㅋ 우와!! 이거 진자 신기해요!!!! 감사합니다. 다시 가볼 수 없어서 아쉬웠는데 이걸로나마 봐야겠어요.
  • 迪倫 2017/02/08 10:29 # 답글

    너의 이름은 봄에 개봉한다고해서 기다리는 중이고, 도깨비는 봤고, 흠영은 문열고 나가면 지구 반대편에 갈 수 없으니 ㅠㅠ

    잊혀지고 싶지않다 라는 것이 어쩌면 인류가 문화라는 것을 만들어 낼 수 있게된 특성이 아닐까 싶습니다. 아니면 잊지못하겠어 라는게 인간의 특성인지. 저도 이렇게 여러 컨텍스트를 이어서 생각을 해봐야 겠습니다.
  • mori 2017/02/08 22:56 #

    迪倫님! 위에 남중생님 링크 들어가면 정말 신기하게 전시 볼 수 있어요!!! 나중에 책 보시는 것도 추천합니다. 일기를 쓰는게 어떤 마음인지 돌아보게 되더라구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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