라이프로그


혐오와 이해 사이 by mori

오늘 강연을 하나 들었다. 미국 원주민사를 하는 인류학자의 강연이라 나의 주제와는 별로 겹치지 않을 것 같았는데, 친구가 가자고 해서 그냥 따라간 거였는데 정말 재밌게 잘 들었다. 다이안 밀리언(Dian Million/Tanana Athabascan, 1950 -)이라는 학자였는데 나야 잘 모르는 학자였지만 이 분야에서는 유명한 사람이었나보다. 강연제목은 "Generations, Indigenous Kin and the Sexual Nexus"이었는데 지금 되돌아보면 강연이 무슨 내용이었지? 기억이 안 나지만 강렬하게 인상이 남았다.

인상 깊었던 것은 다이안 밀리언은 자신이 민족ethnic연구를 하지 않는다는 것이었다. 물론 그녀의 프로필을 보면 민족학이 써있긴 하지만, 다이안은 우리 미국 원주민들은 우리가 미국 원주민인지 그 민족이 궁금하지 않다고 말했다. 우리는 nations라고, 하나의 "미국 원주민"이 아니라. 인종이나 민족으로 우리를 단정짓는 것은 우리가 바라는 것과는 다른 것이라고.

또 다이안은 "안다는 것to know"에 대해서도 말했다. "그들"이 우리에게 알고 싶어하는 것은 우리의 기원origin이다. 하지만 우리를 알기 위해서는 우리가 어떤 관계"relation"을 갖는지가 더 중요하다고. 이렇게 적으니 또 이 말을 들을 때의 생생한 기분이-_- 희석되는 것 같은데 내가 받아들인 것은 다음과 같다.

중세의 산부인과 서적들을 비교하면서 내가 궁금한 것은 왜 이렇게 태도가 분명히 갈라질 수 있냐는 것이었다. 예를 들어, 위 알베르투스 마그누스pseudo-Albertus Magnus는 <여자의 비밀에 대하여De secretis mulierum>에서 여자의 성적인 기관과 임신 등에 대해 다루지만 동시에 여성은 악한 것이고 여성은 더러운 월경을 내뿜고 여성은 남자를 타락시킨다고 말한다. 하지만 또다른 중세 의학서 <트로툴라Trotula>의 저자는 여성의 악함에 대해 얘기하지 않고 여성의 산부인과적인 고민에 대해 진단법과 치료법을 내놓을 뿐이다. 그렇다면 여성의 몸에 대한 태도의 차이는 어디서 오는가? 단순히 저자가 남자냐 여자냐의 차이인가? 게다가 <트로툴라>의 저자는 누구인지도 확실히 밝혀지지 않은 이 마당에?

오늘 다이안 밀리언의 강연을 적용해보자면, 결국 여성을 억합하려고 했던 산부인과적 접근은 여성의 기원origin을 단정하려고 했던 시도에서 나왔다고 설명할 수 있을 것 같다. 위 알베르투스 마그누스가 하고 싶었던 것은 여성을 단정하고 기원을 설명하고 싶어했던 것이다. 여성이 왜 남성보다 열등하게 태어났는지를 설명하고, 여성의 역할이 무엇인지 그 기원을 밝히는 것. 하지만 <트로툴라>의 저자는? 여성의 몸안에서 장기가 서로에게 끼리는 관계를 설명하고 그렇기 때문에 이런 치료법이 가능하다는 것을 제시하고, 여성이 자신의 아이들과 혹은 남자들과 어떠한 관계를 가지는지, 결국은 여성이 어떻게 여성에게 도움을 줄 수 있는지를 밝히고자 했기 때문에 이런 차이가 나오는게 아닌가 생각이 들었다.

너무 나이브한 생각이기에 논문에 포함시킬 수 있을 지는 모르겠지만, 그리고 중세 산부인과 서적의 차이를 설명할 수있는 조그만 부분이었지만, 기억하기 위해 적어놓는다. 강연, 너무 재밌었고 마음에 와닿았다. 청중 한 명 한 명에게 웃고 인사하던 다이안 밀리언의 팬이 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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