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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자 출산 후에 다 나으면 교회 가지? 그러니까 교회 가도 되고 설교해도 돼 by mori

뭔가 논리가 이상하긴 한데 이게 힐데가르트(Hildegard of Bingen, 1098-1179)가 원하던 바다-_- 지난번 포스팅에 힐데가르트가 월경 중인 여자는 교회에 가고 되고 출산한지 얼마 안 된 여자는 상처가 벌어져 있기 때문에 교회가 가면 안 된다고 했는데 더 읽어보니 더 혼란스러운(?) 부분이 있어서 옮겨본다. 교수님이랑 다른 학생이랑 세 명이서 읽은건데 나중에 우리도 혼란스러웠음 ㅋㅋㅋ 힐데가르트가 결국에는 자기가 교회에서 가르쳐도 된다는 식으로 이끌고가서, 아니 분명히 우리는 지금 여자가 월경하냐 출산했냐 가지고 교회에 들어가냐 마냐를 따지고 있었는데-_- 응???




British Library Add. 23923 f. 2

그림은 블로그 내용이랑 별 상관은 없는데-_- 그냥 귀여워서. 그림 링크는 여기. http://www.bl.uk/learning/timeline/item100359.html 그림 이미지는 힐데가르트보다 200년 후이긴 하다. 




지난번의 포스팅에 이어 <스키비아스Scivias>의 다음 부분. 첫번째 부분의 두 번째 환시의 일부이다. 이번엔 라틴어 원문을 한글로 직접 옮겼다. Brepolis의 CCCM 버전이다.




그러나 어떠한 여성이 그녀의 비밀스러운 지체를 통해 아이를 낳았다면 내가 보여준 법에 따라 그녀가 나의 성전으로 들어오지 못하게 하라. 나의 성전의 성스러운 성례가 남자와 여자의 오염과 고통으로부터 침범되지 않을 때까지 말이다. 왜냐하면 가장 깨끗한 동정녀가 나의 아들을 낳았고 그녀는 죄의 어떠한 상처도 없이 온전하다. 그러므로 나의 아들은 영광으로 축성되었던 그 장소는 온전하게도, 거무스러운 멍(liuore)과 상처의 모든 오염에서 벗어나 있어야 한다. 왜냐하면 나의 그 아들은 온전한 동정녀에게서 바로 그곳에서 태어났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만약 어떤 여자가 남자로 인해 그 온전했던 동정을 깨뜨렷다면그녀는 그 상처로 인한 멍으로 오염되었고 따라서 나의 성전에 들어오지 않도록 해야한다. 교회법이 그 같은 원인에 대해 확실하게 정해주고있는 바를 따라 그 상처로 인한 상처가 아물을 때까지 말이다. 왜냐하면 나의 아들이 나무 십자가에서 자신의 배우자와 합했을 때 그 배우자는 나의 그 아들이 자기 제자들에게 모든 세상에 복음을 전하라고 명령했을 때까지 자기 자신을 숨겼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 후에 예수가 드러내어 하늘로 올라갔을 때에 그 여성은 자기 배우자인 예수의 영광을 성령과 맑은 물의 재생으로 예언했다. 이러하기 때문에 만약 여성이 어떤 남자와 합하였다면 순결한 부끄러움으로(pure shame) 교회가 금하고 있는 바에 따라 성전에 들어가지 않고 숨어 있어야 한다. 숨어있는 것에서 나와서 자기 자신을 자기 배우자인 예수가 주는 기쁨으로 당당하게 나아가기 위한 것이다. 





겉으로 보기에 이것은 단지 출산 후 여자는 교회에 들어가면 안 된다는, 여전히 여성차별적인 발언으로 보인다. 물론 여자가 성직자가 되는 것을 여전히 반대하는 (하지만 반대하지 않았다면 성녀 힐데가르트는 성녀가 되지 못했겠지만) 힐데가르트에게는 자연스러운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영어로 읽을 때도 알아채지 못했던 부분이 있는데, 힐데가르트는 출산한 여자 얘기를 하면서 은근히 여자도 가르칠 수 있다고 주장하기 때문이다. 역시, 중세 신학에 따르면 여자는 가르칠 수가 없다. 바오로가 뭘 의도했든지간에, 신약에서 결국 여자는 조용히 하고 남자를 따라야하는 존재지 남자를 가르칠 수 있는 존재가 아니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힐데가르트는 묘하게 주제를 바꿔가면서 우리에게, 여자도 가르칠 수 있다고 결론을 내린다(?).

일단, 여자는 출산 후에 성전에 들어갈 수 없다. 이것은 여자라서 출산해서가 아니라, 원래 다친 사람은 상처가 낫기 전까지는 성전에 못들어가기 때문이다. 힐데가르트는 남자든 여자든 상처의 오염을 성전에 끼치는 것을 반대하고 있다. 출산한 여자는, 동정의 상태로 예수를 낳고 동정을 유지한 마리아와는 다르다. 그래서 마리아는 처녀성을 지키고 성전에 들어갈 수도 있었지만(하지만 성전에 들어갔다는 얘기는 성서에는 없다), 보통의 여자는 그렇지 않기 때문에 상처가 다 나을 때까지 기다렸다가 성전에 들어가야한다. 

웃긴 것은 그 다음이다. 여기서 힐데가르트가 말하는 배우자가 누군지는 확실하지 않은데 힐데가르트는 이게 누군지 딱 집어 말하지 않고 있다. 하지만 당시 통용되던 중세 신학으로 따지자면 이 배우자는 성모 마리아가 될 수도 있고, 교회ecclesia가 될 수도 있다. 중요한 것은 이 배우자는 (당시 신학이나 문화로서는 당연하게도) 여성형이다. 성모 마리아 혹은 교회는 예수가 드러내놓고 제자들에게 부활한 몸을 드러내고 가르치기 전까지는 숨어있었다. 하지만 예수가 드러내놓고 승천한 다음에 예수의 복음을 전파하기 시작했다. 그러니까 여자도 복음을 전파하고 예수의 말을 가르칠 수 있다.

응???

그러니까 상처만 나으면 된다는 거 아냐 ㅋㅋㅋㅋ 아니 이보쇼 힐데가르트 양반. 결론만 보면 당시 신학에 반하는 내용인데 글의 흐름을 따라가다보면 말이 돼. 성모 마리아도 예수 죽은 다음에 가르침에 가르친다고 설파했잖아? 보통의 여자도 애를 낳은 후, 상처가 벌어져 있는 시기만 지나면 성모 마리아처럼 가르칠 수 있는 거야.

또 재밌었던 것은 이 예수의 배우자, 즉 교회인지 성모 마리아인지 모를 이 배우자와 예수가 십자가에서 "합했다고coniuncta"라는 표현을 썼다는 것이다. 이 표현은 아내와 남편 사이에 성관계를 설명하는 바로 그 단어기도 하고, 뒤에 힐데가르트가 여자는 남자와 합했을 때 성전에 들어가면 안된다고 말하는 바로 그 표현이기도 하다. 즉, 어떻게 보면 이 배우자가 예수의 죽음 이후에 승천때까지 조용히 있었던 것은 예수와 합했고 그 정결기간이 끝나기를 기다렸다는 의미이기도.

복잡한데 음 이걸 어떻게 논문에 영어로 쓰지? 어쨌든 읽으면 읽을 수록 감탄만 나오는 힐데가르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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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mori : 생리 중이고 애를 낳았어도 교회 들어와도 돼 2017-11-06 12:35:04 #

    ... 상처가 벌어지고 상처는 오염을 동반하기 때문이라고 근거를 댔다. 관련 포스팅 중 힐데가르트가 여성의 교회 출입과 재생산과 관련되어 얘기한 부분은 첫 성관계는 여기, 월경과 출산은 여기, ... more

덧글

  • 2017/04/30 22:47 # 삭제 답글 비공개

    비공개 덧글입니다.
  • mori 2017/05/01 00:42 #

    안녕하세요 김보람님. 이메일로 연락드리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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