라이프로그


조선에는 종교가 없다? 여혐은 있다? <조선, 1894년 여름: 오스트리아인 헤세-바르텍의 여행기> by mori

이글루스 아니면 트위터에서 보고 알게 된 책이다. 책을 사 갖고 온 지는 꽤 되었는데 읽을 기회가 없다가, 지난주에 크게 아팠을 때 논문이고 뭐고 일단 때려치고, 약 먹고 침대에 누워서 읽었던 책. 재밌었다. 내 전공에 비해서는 지나치게-_- 현대에 가깝지만, 생각보다 중세가 많이 나와서 의외였다. 아니, 서양 근대인이고 현대 한국인이고 왜 미개해보이는 것에는 다 중세를 붙입니까, 중세를 공부하는 입장에서는 억울하지만 뭐-_- 어이가 없어서 따로 표시하지는 않았는데 작가가 조선의 미개해보이는 풍습을 설명할 때 자꾸 중세와 비교하는 게 흥미로웠다. 니네가 중세를 알아?


에른스트 폰 헤세 - 바르텍 지음, <조선 1894년 여름: 오스트리아인 헤세-바르텍의 여행기, 정현규 옮김, 책과함께, 2012.






요분이 에른스트 폰 헤세-바르텍(Ernst von Hesse-Wartegg, 11854-1918). 사진 출처는 여기. http://thailandtip.info/2012/07/09/ernst-von-hesse-wartegg-wer-war-der-autor-von-siam-das-reich-des-weissen-elefanten/ 태국 관광에 대한 사이트다-_-

보니까 나바호 원주민 등 여러 민족에 대해 기록을 남긴 듯. 




에른스트 폰 헤세-바르텍의 북아메리카 여행기 1880년 스웨덴 에디션에 포함된 삽화라고. 그림 출처는 여기. https://www.123rf.com/photo_7745780_navajo-native-americans-in-arizona-illustration-originally-published-in-ernst-von-hesse-wartegg-s-no.html




웬지 리뷰를 쓰려고 하니-_- 갑자기 아팠던 게 확 다시 기억나면서(핑계임) 자세히는 못 적겠고, 어쨌든 재밌게 읽었다. 재밌는 포인트 중 하나는 작가가 조선의 유구한-_- 여성혐오에 대해 기술하는 부분이었다. 남자는 맨날 탱자탱자 놀고 일은 다 여자가 한다고-_- 집안일 뿐만 아니라 밭 매고 농사 짓고 이런 거 여자들이 다 하는데 남자들은 뻐끔뻐끔 담배만 피운다고 하면서, 근데 여성들이 밖에 제대로 나다니지도 못하는 현실에 대해 말하는 게 재밌었다. 

하지만 동시에 작가 자신도 여성혐오에서 자유롭지는 않으니, 조선의 왕비와 후궁들에 대해 얘기하면서 난데없이 조선의 여자들을 이브의 후손으로 부름 ㅋㅋㅋㅋㅋ 아니, 조선 남자가 탱자탱자 노는 걸 갖고 아담을 생각하지는 않았잖아? 여자는 조선이든 유럽이든 공통적으로 허영심에 가득차있다고 말하면서 이브를 들먹거렸다.


"하지만 조선의 여인들 역시 이브의 딸로서 그들이 지닌 모든 강점과 약점을 동시에 지니고 있다.  유럽의 부인들이 진짜 또는 가짜 머리 위에 - 도대체 오 그러는지 밝히려 든 사람이 있었던가? - 작은 리본과 꽃, 새 모양의 장식 달린 작고 예쁜 모자를 쓰고 나타나자, 이를 본 왕비에게 허영심에 찬 여인이 곧장 이렇게 속삭였다. 그런 모자가 그녀에게도 잘 어울릴 것 같다고 말이다. 그렇게 해서 유럽식 문화의 첫 번째 첨병으로 파리의 숙녀모가 고색창연한 조용한 아침의 나라의 궁궐로 들어오게 되었고, 외교관을 영접할 때 왕비의 머리에서 휘황찬란하게 빛나고 있다. 그때가 언제나 될지 모르지만, 코르셋 역시 이 민씨 가문 딸의 허리를 감싸게 될 것이다!" (117)


아무래도 조선의 종교를 기술한 부분도 재밌었는데, 여기에 대해 말하기는 복잡해질 것 같고 근데 필자는 책의 초반부에는 조선에 종교가 없다고 말한다. 그래서 필자는 도대체 뭘 본거야, 싶었는데 그렇다고 필자가 조선의 유교와 불교를 보지 못했던 것은 아니다. 근데 필자는 조선은 좀 더 미신적인 게 판친다고 봤던 것 같고, 조상숭배가 더 우세하다고 말하면서 조선은 종교가 없는 것과 마찬가지라고 말한다. 


"남산 위의 우거진 수풀 사이에 숨어 있는 작은 암자는 하늘에서 복이 몇 배로 내리길 비는 데에 사용되는 것 같았다. 다른 측면에서 보면 조선인들은 종교 같은 것을 가지고 있지 않으며, 신의 존재에 신경 쓰지 않는다. 하지만 장난꾸러기 신 아모르 (물론 다른 이름으로 불린다)는 이들에게서 환심 사는 방법을 알았다. 그래서 저 위에 있는 작은 암자가 아모르에게 바쳐진 것이다. 그가 수수방관하지 않고 그를 찾아오는 여인들이 마음 속에 품고 있는 절실한 소원을 들어주길 바랄 뿐이다." (199-200)


근데 뭐 이런 부분을 제외하고서라도, 작가가 조선에 개신교가 널리 퍼지기는 어려울 것 같다고 쓴 데서 쓴 웃음이 나왔다.


"이렇게 얘기해놓고 보니, 조선인은 어떤 특정한 종교를 가졌다고 말할 수 없는 것처럼 보인다. 왜냐하면 이들은 공자의 추종자나 불교 신자가 아니라 말 그래도 진정한 의미의 이교도이기 때문이다. 조선인들이 기독교로 개종하는 것을 가로막고 있는 것은, 앞에서 언급한 두 종교보다 이교도적인 옛 풍습, 무엇보다 조상숭배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동아시아에서 선교사들이 활동하는 데 조선보다 더 감사할 만한 장을 제공하는 곳은 없다. 소수의 프랑스 가톨릭 선교사들이 거두고 있는 엄청난 성공 역시 이러한 점을 증명하고 있다. 조선에 개신교를 소개하고자 하는 것은 지금까지의 경험으로 볼 때 가망 없는 노력이 될 가능성이 크다." (231)


이것 외에도 장례 풍습에 대해서도 열심히 설명하고 있었다. 아, 그리고 이 책을 통해 중용을 라틴어로 번역한 게 있다는 걸 발견했는데 찾아보니 프랑스 국립도서관에 있는 것 같은데 아직 디지털화가 되지 않았나보다. 관련된 한글 논문은 좀 나오긴 하는데, 본문을 찾아보기는 어려워서. 요즘 밤마다 중용 원문과 해석을 필사하고 있는데 라틴어도 같이 병행해서 필사하면 좋을 것 같은데 지금으로서는 구할 수 없을 것 같아 아쉽다. 

 

덧글

  • 남중생 2017/06/01 15:13 # 답글

    오오, 이 책을 읽으셨군요!! 재미있는 책이죠ㅎㅎ
  • mori 2017/06/01 21:06 #

    네 재밌었어요!! 안 아플 때 한 번 더 읽고 여기 한국인들이랑 돌려보려구요!!
  • 迪倫 2017/06/05 01:01 # 답글

    오랫만에 일요일 아침에 이글루에 들어와서 재미있게 읽었습니다. 헤세-바르텍의 책에 몇가지 재미있는 이야기들이 있었는데, 그건 접어두고.
    한가지 알려드릴것이 있는데요. 중용의 라틴어 번역은 17-18세기 동안 예수회 선교사들의 번역으로 3번 있었습니다. 원문을 못찾으셨다고 한 것은 아마 첫번째 버전인 Sinarum scientia politico-moralis인 것 같습니다. 그런데 이후에 예수회 중국 선교부에서 사서를 엮어서 낸 책 안에 중용이 다시 포함되어있었습니다.
    하나는 Confucius sinarum philosophus, sive, Scientia sinensis latine exposita 에서 Scientiae Sinicae Liber Secundus가 chum yum 즉 중용입니다.
    https://archive.org/stream/confuciussinarum00conf#page/n169/mode/2up 에서 170 페이지입니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나온 버전은 Sinensis imperii libri classici sex 라는 역시 사서와 효경, 소학을 엮은 책에서 Liber II Immutabile medium, Sinice Chum Yum 부분이 중용입니다.
    https://books.google.com/books?id=A0K0bjBLmMYC&printsec=frontcover&source=gbs_ge_summary_r&cad=0#v=onepage&q&f=false 에서 31페이지입니다.

    두 버전이 어떻게 달려졌는지까지는 저역시 잘알못입니다.
  • mori 2017/06/05 21:55 #

    오오오 감사합니다!!! 제가 찾고자했던 버전은 첫번째 책인 것 같아요! 한글로 찾아보긴 했는데 인토르체타의 책이 Cod. Lat. 6277라고만 나와있고 어느 도서관인지-_- 나와있지가 않아서 찾는데 고생했는데 이렇게 바로 알려주시다니요!! 중용 필사는 하고 있는데 이제라도 라틴어도 같이 필사하고 싶어집니다 ㅎㅎ

    저도 두 버전이 어떻게 다른지 궁금하네요!! 나중에 졸업하고 할 일이 없어지면-_- 두 버전도 그렇고 한국어버전(?)이랑 비교해보고 싶습니다!! 다시 한 번 감사드립니다!!!
  • mori 2017/06/05 22:46 #

    제가 보려고 했던 건 요겁니다!! http://archivesetmanuscrits.bnf.fr/ark:/12148/cc653500
  • 迪倫 2017/06/06 11:38 #

    원래 찾으시려던 서지는 실은 제가 archive.org로 링크한 두번째 버전으로 보입니다. 첫번째 두번째 버전 모두 인토르제타의 번역입니다. 저도 첫번째는 본적이 없는데, 아마 내용이 거의
    같을거로 짐작됩니다. 그리고, 세번째는 시기적으로 조금 뒤 18세기에 프랑스 선교사 프랑스와즈 노엘이 번역한 것이구요.

    중용의 예수회 라틴어 번역에 대한 서지사항같은 자세한 내용이 필요하시면 http://ygmh.skku.edu/_custom/skk/_common/board/download.jsp?attach_no=23669 를 참고하시거나 아니면 academia.edu에 액세스되실테니, "François Noël (1651–1729) and Latin translations of Confucian Classical books published in Prague in 1711"을 찾아보셔도 됩니다.
  • mori 2017/06/06 13:04 #

    앗 이렇게 자료까지 주시다니 감사합니다!! 레포드월드 이런 데에 글이 뜨기는 하던데 각주가 더 필요하던 참이었습니다!! 올려주신 링크에서 자료도 무사히 잘 받았습니다!!

    아 그리고 저게 두 번째 버전이었군요. 뭔가 라틴어 강독으로 중용 같이 읽는 것도 좋을 것 같습니다만 교수님이 안 해주시겠지요 ㅠㅠ 그래도 논문 주제가 아닌 걸 보는 것에서 오는 기쁨이 있으니 올려주신 자료 참고해서 꼭 보겠습니다!! 감사합니다!!
  • googler 2017/06/13 04:44 # 답글


    지은이가 좀 소규모적인 관점이 돋보이는 거 빼고는 흥미로운 책인 것만은 확실하군요~~
    한국으로 주문할 책 중에 하나였는데 이 리뷰 보구서 주문하기로 도장찍습니다~~
  • mori 2017/06/13 12:23 #

    googler님 마음에도 들었으면 좋겠습니다!!! 저는 여행기는 웬만하면 다 좋아하는데 요건 유독 흥미진진해서 단숨에 읽을 수 있었습니다!!
댓글 입력 영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