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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 Quiet Passion - 에밀리 디킨슨의 조용하고 무시무시한 희열과 고통 by mori


<A Quiet Passion>을 봤다. 요즘 꽤 영화를 자주보는 것 같은데, 원래는 혼자 영화 보는 것을 좋아하나 여기서는 그 맛이 안 나서 못하고 있었고 그나마 친구들이 보러 가자고 하면 간다. 친구가 이 영화 꼭 보고 싶다면서 갑자기 단체 이메일을 보냈고, 요즘 한창 기분도 안 좋고 정신이 없는 나는 못 가겠다 싶어서 거절을 돌려 표현했는데-_- 나의 영어가 짧아서 친구가 내가 가는 줄 알고 있어서 가게 되었다-_-

시는 원래 별로 알지도 못하고 그렇게 좋아하지도 않지만, 에밀리 디킨슨(Emily Dickinson, 1830-1886)의 시는 영문학 수업에서 읽은 적이 있다. 너무 오래 되었지만-_- 사실 영문학 부전공... 그러나 시는 싫어함;;; 이 영화도 보러 가기 직전에야 에밀리 디킨슨이라는 걸 알았는데, 영화에는 흠뻑 빠져들었고 디킨슨의 조용하지만 드라마틱한 삶이 생생히 전해지는 것 같아서 매우 괴로웠다.

어떻게 보면 얼마 전에 올린, <킹 아서>와는 대척점에 있는 영화라고 볼 수 있을 것 같다. 소위 "혼자 사는 여성의 삶"이라고 불리는 조용한 삶에서 디킨슨이 어떤 희열을 갈구하였는지, 삶이 조용했기 때문에 고통스러웠고 그 고통으로 시를 써내려갔던 걸 절절히 느낄 수가 있어서 매우 고통스러웠고 영화가 길게 느껴졌다. 하지만 동시에, 영화가 끝나지 않았으면 했다. 

내가 매우 싫어하는 -_- 마크 트웨인이 제인 오스틴의 작품을 폄하하면서 여성의 "하찮은" 것들을 감히 소설로 옮겨서 시시하다는 식으로 얘기했던 바로 그 조용한 삶은 디킨슨에게도 해당되는 것이었다. 밖에서 보면 그냥 뭐가 없다. 디킨슨은 학교라도 갔지만, 졸업하고 난 다음에는 가족들과 살았고 애인도 없었다. 당시 여성의 삶이란, 뭐 지금도 좀 그렇지만 남자들이 전쟁을 하러 나가면 여자들은 집이나 지키는 것으로 이해되었다. 하지만 디킨슨의 삶은 그녀에게는 전쟁이었다. 새벽마다 시를 썼고, 주변에서 일어나는 가족들과의 갈등, 자신의 해결되지 않는 욕구, 열등감, 그리스도교의 폭력적인 부분 등에서 오는 피비린내. 

인상적이었던 부분은, 디킨슨이 자기 남동생의 아내와 대화하던 장면. 디킨슨은, 결혼해서 아이를 가진 그 여성에게 너는 삶을 가졌다고 말하고 그 여성은 디킨슨에게 당신은 시를 가졌다고 말한다. 디킨슨이 "평범한" 여성의 삶을 살았다면 그 시들은 나오지 못했을 것. 

이 영화가 고통스러웠던 것은, 등장인물들의 고통이 너무 생생하게 그려졌기 때문이다. 많은 장면에서 등장인물들이 카메라를 똑바로 쳐다보는데 얼굴 근육들의 움직임과 눈빛들이 너무나 생생해서 쳐다보고 있기가 괴로웠다. 그리고 디킨슨이 병을 앓는 과정도 너무 고통스럽게, 사실적으로 나온다. 하지만 고통이야말로 디킨슨을 이해하는 테마니까. 신시아 닉슨의 연기가 너무 좋았다. 영화 끝에 디킨슨이 죽는 장면에서 나도 울고 내 친구도 울고 주변 사람들이 다 울었다. 미국 영화관에서 사람들이 우는 것, 처음 봤다.

그리고 고증도 잘 해냈고, 장면들도 너무 예뻤다. 영화관에서 보길 정말 잘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영화관이 최근에 바뀐 데라 영화가격이 14불이 넘어서-_- 토할 뻔 했지만, 너무 잘 봤고 같이 보자고 한 친구가 고마웠다.





에밀리 디킨슨과 여동생. 이 이미지도 imdb에서 가져왔다. 옷도 두 재마의 다른 성격을 표현하고 있어서 더 좋았다.





Houghton Vault MS Am 1118.11  seq 11

에밀리 디킨슨은 원예학에도 조예가 깊었다고. 하버드대 도서관에 있는, 디킨슨이 직접 식물을 붙여서 이름을 기입한 책이다. 자세한 정보는 여기에 http://lms01.harvard.edu/F/TMSFNP653EGFL8MGC9SLIP23EAF1KVRL9VUX1BNGMNQF3SK815-21609?func=find-b&find_code=SYS&request=0097219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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