라이프로그


디펜스 날짜가 잡혔다 by mori

사실 날짜가 잡힌 것은 한 달 전이다. 그리고 논문은 지난 주에 커미티에게 돌렸다. 근데 이제야 정신이 난다. 디펜스는 다음주 화요일 오후 두 시이다.

논문을 가지고 질질 끈 것은 벌써 3년 반이 넘은 이야기이다. 본문 초안이 나온 것은 2년 전이니, 1년 반 동안 쓰고 2년 동안 고쳤다...라고 하면 참 아름답겠지만 그것은 아니고 뭐 농땡이도 쳤던 날도 있고, 잘 안 써지던 때도 있고, 이번 학기처럼 수업 하나를 하느라 정신없어서 손을 놓고 있던 시기도 있다. 나의 다른 친구들은 몰아서 쓰고 있는 모양이고, 다른 사람들도 논문 내기 직전 한 달 혹은 몇 달 안에 생산성이 팍팍 나와서 엄청 써댔다고 하는데, 나는 그런 시기는 없었다. 고통스럽게 천천히 쓰고 고통스럽게 천천히 수정했다. 막판 며칠은 좀 바빴지만 그래도 여전히 있던 거를 고치는 거였기 때문에 기적같은 일은 없었다. 서론이 좀 문제긴 했는데 서론을 아마 작년부터 쓰기 시작했을 거다. 한 번 쓰고 지도교수가 너무 일반론이라고 퇴짜놓고, 완전히 처음부터 다시 썼더니 지도교수가 너무 세세하다고 퇴짜를 놓았다. 피를 토하는 심정으로 2주 전부터 다시 쓰기 시작했는데 겨우겨우 써서 지도교수에게 내놓자, 교수가 이번 건 좀 나은 것 같은데 더 고치라 그러길 세 번. 서론을 고치던 날이 원래 커미티에게 논문을 보내야하는 날이었는데, 세 번 고치고 나자 지도교수가 아 이제 좀 읽을 만해졌다면서 이제부터 자기가 고치겠다 그랬다. 그리고 지도교수가 고치는 데에 하루가 걸렸다.

총 297페이지가 나왔다. 아마 내가 썼다가 논문 구조가 바뀌는 바람에, 그리고 중복되는 바람에 사라진 페이지는 300페이지가 넘을 것이다. 처음에는 한 문장, 한 페이지 지우는 것도 아까워서 손을 떨었는데, 나중에는 그냥 확확 지워버렸다. 본문은 4챕터인데 한 챕터가 60쪽을 넘지 않도록 지도교수가 팍팍 지워줬다. 그래서 그런지 나는 내 논문에 뭐가 써있는지도 몰라...

막상 졸업한다고 하니 막막하다. 실업자로 나아가는 삶. 졸업식도 컨퍼런스 때문에 가지도 못한다. 후딩 세레머니도, 지도교수가 거절함 ㅋㅋㅋ 똑같은 컨퍼런스에 간다. 후딩만 하고 급하게 컨퍼런스에 가게 될 것 같다. 어짜피 졸업식에 가족이 올 수도 없으니.

그나저나 논문 넘기고 나니 내가 대학원 와서 한 번씩은 모두 겪었던 병들이-_- 다시 다 나타나는 것 같다. 논문 마무리할 때 짠 나타났던 감기가 낫지를 않고 있어서 지금도 정신이 어지럽다. 책상에 오래 앉아있지도 않는데 담 걸려서 파스 붙이고, 눈 간지럽고, 약한 비염이 나오고, 그래도 잠은 잘 잔다. 무슨 한 달 못 잔 사람마냥 밤에 정신을 잃고 자고 아침에 일어나기가 힘들다. 논문만 남기면 하고 싶은게 너무너무 많았는데, 막상 내고 나니 몸이 메롱이 되어서 하지도 못하고 지금 겨우겨우 일상 포스팅이나 하고. 게다가 이번 주가 봄방학인데!! 논문 준비는 커녕 골골대느라 놀지도 못하고 있다.

지도교수는, 내 느낌인지 모르겠는데 논문 내고나서부터 급격하게 나에게 친절해졌다. 컨퍼런스 커미티일 때도 내 프로포잘은 죽죽 잘 떨어뜨리는 그런, 너무 객관적이어서 주관적으로 자기 학생에게 불공평한 그런 교수인데 이번에 낸 프로포잘은, 논문 내기 전에는 이거 못 쓴다 동의 못한다고 엄청 길게 뭐라뭐라하더니 논문 내고 나서는 웬일인지 받아들여줬다. 근데 내가 그 때에 어디에 있을지 모르는게 함정. 어쨌든 옷 칭찬도 해주고, 내가 살짝 의아해할 정도로 상냥해졌다(물론 그래도 보통 사람보다는 공감능력이...). 아님 헤어질 때가 다 되어서 그런가.

포스팅하고 싶은 것들도 있었는데 하질 못하고 있다. 언제 정신이 차려질 것인가. 아니, 언제 정신을 차릴 것인가.

덧글

  • 진냥 2018/03/15 10:10 # 답글

    우우.. 힘내세요!!!;ㅁ;/
  • mori 2018/03/16 02:17 #

    감사합니다!! 생각보다 너무 오래 걸렸어요 ㅎㅎㅎ
  • 2018/03/15 11:06 # 삭제 답글

    드디어, 긴 여정의 끝이 멀지 않았네!
    정말 고생 많았어.. 얼마나 힘들었을까. 다 마무리하는 그날까지 조금만 더 힘내 ^^
  • mori 2018/03/16 02:17 #

    언니 고마워!! 근데 나 너무 설렁설렁했던 것 같아 ㅋㅋ 그래도 끝나면 되는 거겠지!!
  • pmouse 2018/03/16 09:33 # 답글

    축하드려요! 디펜스 직전이 참 울렁울렁하고 그렇죠... 기운 내시고 질병들 다 빵야빵야 물리치시고 힘내세요! 곧 끝(...은 ㄱㅃ 인거 다 아시겠지만 ㅠㅠ 박사나 포닥이나 조교수나 점점 바빠지기만 하는 듯...하는 불안감에 허덕중인 포닥입니당) 이 오고 있어요! 잘 마무리하시길~ 다시 조금 가벼운 마음으로 종교 성인들 얘기 써주시길 바라는 사심 담아 1인이 응원 드립니당. ㅎㅎ
  • mori 2018/03/17 03:02 #

    으앗 감사드립니다!!! 포닥이시라니 post-graduate라는 점에서 저는 일단 너무너무 부럽지만 또 각각의 (더 큰) 고비가 있겠죠 ㅠㅠㅠ 응원 감사합니다!! 힘내서 이번 고비를 넘겨보겠습니다!!!
  • 2018/03/17 12:34 # 답글 비공개

    비공개 덧글입니다.
  • 2018/03/17 22:38 # 비공개

    비공개 답글입니다.
  • 2018/03/18 10:43 # 비공개

    비공개 답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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