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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를 가지지 않음에 대하여 - 버지니아 울프의 일기 중에서 by mori

버지니아 울프(Virginia Woolf, 1882-1941)의 일기, 전편 중에서 두 번째 권(1920~1924)에서 관심이 가는 부분이 있어서 옮겨본다. 버지니아 울프가 1923년의 첫 일기를 스면서, 하지만 1922년을 정리하지 않았기에 1922년의 마지막 일기처럼 쓰는 일기. 책은 여기서 무료로 빌려 볼 수 있다. 

울프는 이 일기에서 자신이 나이를 먹으면서 아이를 갖지 않는 것에 대해 걱정하고 불안해하고, 하지만 그럼에도 아이를 갖지 않는 이유에 대해 서술한다. 아무래도 한 해가 끝나고 다른 한 해가 시작하면서 마흔 중반을 향해 가는 울프가 자신이 나중에 아이가 없는 것을 후회할까봐 걱정하다보니.






자일스 리턴 스트레이치 (Giles Lytton Strachey, 1880-1932)와 버지니아 울프. 담배를 꼬나문 울프가 멋지다. 오토넬 부인(Lady Ottoline Morrell, 1873-1938)이 찍어준 것이라고. 출처는 국립초상화박물관. 사진에 나온 리턴과는 크게 상관없는 내용이지만 윗 사진도 1923년에 찍은 것이고 울프도 살짝 언급은 하니까. 리턴이라고 부르는 것은 울프가 그와 매우 친하고 그를 일기에서 계속 리턴이라고 부르기 때문에. 참고로 그는 울프 결혼 전에 울프에게 프로포즈했다가 까인 적이 있는 문학가이다. 



사진을 찍은 오토넬 부인도 멋지다.


사진 출처는 위키미디어.

아래는 나의 번역이다. 의역도 섞여있으니 참고할 것.



1월 2일 화요일

내가 만약 위선자였다면 이 일기의 날짜를 1922년의 마지막 날로 적었을 것이다. 즉 사실상 1922년의 마지막 날이라고 봐도 된다. 우리는 로드멜Rodmell[울프의 별장이 있는 곳]에서 어제 돌아왔고 나는 간호사들이 내 기분 중 하나라고 부르는 기분 중에 오늘 있다. 그럼 이건 뭐고 왜 그런가? 나는 아이들에 대한 갈망이라고 생각하는데 이것은 네사Nessa[울프의 언니]에 대한 갈망이기도 하고, 내 주변에서 뜻하지 않게 부서지는 꽃들의 감각에 대한 갈망이기도 하다. 여기 안젤리카Angelika가 있고 쿠엔틴Quentin이 있고 줄리안Julian이 있다[모두 네사의 자녀들]. 이제 아이들은 오늘 밤 자두 푸딩으로 아프게 만들지 않는다. 우리는 식사하러 온 사람들이 있다. 뜨거운 물이 없다. 가스는 쿠엔틴의 침실로 빠져나가고 있다 - 나는 내가 꽃이라고 부르는 것들을 마구잡이로 뽑고 있다. 그들은 내 삶을 종종 조금 황폐하게 보이게 하는데, 그러고나서는 나의 고질적인 낭만주의는 밤새 내내 홀로 나아가는 형상을 그리고, 속으로 금욕적으로 고통받는 형상, 나의 길을 끝까지 이글거리며 비추이는 모습 등을 그려낸다. 진실은 나에 대해 펄럭이는 돛들이 하루나 이틀 사이에 돌아온다는 것이고, 나는 쫙 펴지도 못한 채로 나는 곰곰히 생각하고 어정거린다. 그리고 이것은 모두 한시적인 것이지만 내가 이것에 대해 좀 더 확실하게 얘기하겠다. 내가 자랑할 필요가 없을 때에 내가 고백 하나를 하겠다. 몇 년 전에 리턴과의 일[그가 프로포즈를 한 사건] 이 있은 후에 나는 베이루트Beireuth의 언덕을 걸어올라가며 내가 가지지 못한 것을 가질 가치가 없는 것인체 하지 않기로 나에게 다짐했으며 나는 이게 좋은 조언이라고 생각한다. 최고한 이것은 종종 나에게 온다. 예를 들어 아이들이 다른 것들로 대치될 수 있는 체 하지 말자. 그리고 나는 계속 나아가 (이 생각은 언제나 프레시필드Freshfield부인과 연결된다 - 왜일까?) 나에게 말한다, 사람은 <그의 무게를 모두 지운다>(내가 이걸 어떻게 옮길 수 있을까?) 그 자신을 위한 것들을 좋아해야하거나 혹은 그의 개인적인 삶에 지워진 것들을 제거해야한다. 사람은 그것을 옆으로 치워나야하고 그와는 독립적으로 존재하는 것들에 모험을 걸어야한다. 지금 이것은 젊은 여성들에게는 매우 어려운 일이다. 하지만 나는 이것에서 만족을 느낀다. 그리고 나는 현재 L(울프의 남편 레오나드 울프Leonard Woolf, 1880-1969)와 결혼해있고, 나는 [아이를 가질] 노력을 할 필요가 전혀 없다. 나는 내가 만약 그것을 즐긴다면 할 것이다. 아마도 나는 내 영혼에게 도움이 되는 일에 너무 행복한 것은 아닐까? 아마도 나는 비겁하고 자기도취적이 되어버린 걸까? 그리고 내 불만 중의 몇몇은 그렇게 기분을 느끼는 것에서 오는게 아닐까? 나는 지난밤 46에 머무를 수 없었다[장소인 것으로 추측] 왜냐하면 L이 전화에서 불만을 드러냈기 때문이다. 또 늦었다. 당신의 마음은 좋지 않아서 나의 자기의존은 약해졌고, 나는 그의 의지에 반해 모험을 감행할 용기가 없었다. 그리고 나는 반응했다. 물론 이것은 어려운 질문이다. 의힘할바없이 나는 두통이 생기고 혹은 심장이 덜컥 내려앉는다. 그리고 이것은 그의 즐거움을 망친다. 만약 어떤 사람이 다른 사람과 산다면 그 사람을 올바르게 해야한다. 그러므로 이것은 계속된다. 나는 평소처럼 일시적인 것들을 경련처럼 분열된 상태로 공격하기 전에 영적인 부분으로의 내 생각을 지으려고 노력할 것이다. 그 공격은 화학자가 그의 가게에서 병들을 톡톡 건드리며 이름을 붙일 만한 것에 지나지 않는데 왜나하면 그는 그 안에 뭐가 있는지 알기 때문이다. 50세가 되면 내가 다시 읽을 적에 나는 내가 뭘 말했는지 알 것이다.

그래 중년이다. 이것이 내 담론의 텍스트라고 하자. 나는 우리가 나이먹는 것이 두렵다. 우리는 몇 시간이고 바쁘고 중요한 것에 매여있다. 나는 내 편지들을 오늘 끝내야한다, L이 말하는 것처럼, 나는 웃지 않는다. 나는 이것을 심각하게 받아들인다. 하지만 우리는 우리의 취미들과 즐거움이 페티쉬 경배의 대상으로 만들면 안된다. 내 생각에 L은 그의 지나친 분명함에 고통받는다. 그는 모든 것들을 너무 명석하게 파악하기 때문에 그것들에 둥둥 떠다닐 수도 없고 오래 바라볼 수도 없다. 이제 우리는 우리가 계속 몰고가야할 기차에 붙들려있다. 최소한 그 압박이 우리에게 있다는 체하기는 쉽다. 하지만 네사처럼 쉽게 인간관계와 상황들을 변명으로 내놓는 사람은 우리보다 훨씬 자유롭게 이 기차를 탄다. 예를 들어 네사는 아이들과 함께 여행하는 것으로 부활절을 보낼 것이다. 우리는 돈을 벌어야하며 이것은 사실이다. 우리는 짐 한 채가 있어야하고, 집 두 채가 있어야하고, 두 명의 시종이 있어야하고, 인쇄기가 있어야하고, 톰슨이 있어야하고, 랄프가 있어야한다. 하지만 이것들 중 대부분은 나 때문에 있는 것이며, 내가 솔직히 말해 다른 것을 바랄 수 있으랴? 나는 (대부분) 내가 글을 쓰기 위해 일들의 부담을 덜어내야한다고 느끼지 않는가? 이 장애물들은 나를 지루하게 하고 내 불꽃에 그을음만 만드는게 아닌가?

나는 여기서 미완성으로 질문의 작성을 멈출 것이다. 이 노트는 자꾸만 발생하는, 하지만 자주 표현되지는 않는 어떤 기분을 나타낸다. 사람의 삶은 겉으로보면 이런 기분들로 만들어지지만 이 기분들은 굳건한 본질을 지난다. 하지만 이 본질이 내가 나아가는 길을 지금 방해하도록 내버려 두지는 않을 것이다.

그러므로 이것은 1922년의 마지막 일기이다.





내가 이 일기를 읽으면서 놀란 것은, 버지니아 울프는 아예 아이를 가질 생각이 없었다고 막연하게 그러나 확실하게 넘겨짚고 있었는데 그런 울프조차 아이를 가지지 않는다는 자신의 확신에 대해 확신하지 못하는 때가 있었다는 것이다. 아무래도 연말, 연초의 나이드는 느낌은 이런 게 아닐까. 이제 11월도 거진 다 끝나고 했으니 나도 울프의 넋두리를 대신 옮겨보는 것으로 넋두리의 일부를 풀어보고자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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