라이프로그


멘토의 필요성 by mori


요즘 밤에는 완전히 넉다운이라 뭘 하지를 못하는구나. 나야 잠깐 풀타임으로 일하는건데 사람들은 도대체 어떻게 아침에 출근해서 저녁에, 그것도 한국의 많은 사람들은 야근까지 하나 싶다.

잊어먹기 전에 하나 깨달은 바가 있어서. 나야 이십대 초에 호주에 있던 게 가장 첫 해외생활이었는데, 궁금한 게 있었다. 왜 외국에 나온 한국 사람들은 말이 많을까? 아니 말이 많다기 보다는, 만나면 꼭 자기가 여기서 얼마나 고생했는지 얼마나 힘든 상황을 헤치고 나와 이렇게 성공할 수 있었는지에 대해 끊임없이 이야기했다. 심지어 우리집에 잠깐 뭐 갖다주러 오셨던 아저씨는 두 시간 내내 자기가 고생했다가 성공한 얘기를 해서 우리 온 가족의 혼을 쏙 빼놓은 적도 있었지.

나는 사람들 말을 듣는 것을 좋아한다고 생각하는데 가끔은 짜증날 때도 있다. 더 슬픈 건, 그런 얘기를 들을 때 슬플 때인데 안타깝게도 세상을 살면서 도움이 되는 인생담도 있고 들어봤자인 인생담도 있기 때문이다. 어쩌면 그건, 고생을 해서 성취했을 때 좋은 경험도 있고, 굳이 고생을 하지 않아도 되는, 심지어 고생을 해서 성취하면 본인에게 더 좋지 않은 경험도 있는 것 같다.




이게 왜 멘토의 중요성과 연결되느냐.

주말에 친구를 만나서 뜨개질을 했다. 친구는 얼마 전에 다른 친구들이 뜨개질에 빠져있어서 그 친구들을 만났다가 뜨개질에 입문하게 되었다. 코바늘뜨기로 인형만들기. 친구들이 가르쳐주는 대로 했고, 모르는 건 동영상을 보면서 혼자 연구했다. 친구들 도움은 그렇게 조금 얻고, 자기가 혼자 코바늘뜨기로 인형을 거의 완성 직전까지 만든 것은 대단한 거다. 친구는 동영상을 보면서 이해가 안 가면 돌려보고, 도안도 봤다가, 하지만 도안을 정식으로 배운 적은 없기에 계속 연구하고 실을 풀렀다가 짰다가를 반복했다. 

나는 친구에게 난 코바늘은 잘 못하고 대바늘을 주로 한다고 했다. 그건 사실이다. 근데 문제는 나는 초등학교 때부터 외할머니에게 뜨개질을 사사(?)받았다. 그렇다고 내가 잘한다는 건 아니다. 내가 했던 건 코바늘로는 덧신? 레이스뜨기? 대바늘로는 목도리는 물론 스웨터도 만들었고. 근데 나도 엄청 초보이다. 그냥 기본만 알 뿐.

내가 친구에게 나는 뜨개질을 어렸을 때부터 했다고 했을 때는 그냥 그러냐고 했다. 친구가 뜨개질을 계속 했다가 풀렀다가 할 동안 나는 대바늘로 열심히 넥 워머를 짰다. 그러다가 친구가 아예 아무것도 짠 게 없는 걸 보고, 코바늘로 직접 시연을 해보이자 그 때야 친구는 나에게 "너 정말 뜨개질 잘하는구나?"했다. 근데 슬픈 건 내가 잘하는 게 절대로 아니고 그 넓고 깊은 뜨개질의 세계에서 나는 정말 한톨의 보리 정도도 안 된다는거다.

문제는 그거다. 혼자 뜨개질을 자기 스스로 배우면 시간이 진짜 오래 걸린다. 특히 기초가 없으면 그렇다. 그 엄청난 시간과 수고는, 옆에서 잘 아는 사람이 한두마디만 거들어주면 사실 간단하게 풀리는 거다. 근데 내가 혼자 동영상 배우고 하는 방법 알잖아? 그럼 그 고생을 해서 깨달은 지식이기에 내가 뿌듯하고 자랑스럽다. 친구는 자기가 벌써 많이 짰다고 했다. 아니 그건 진짜 대단한 거긴 하다. 친구에게는. 근데 그 뜨개질의 세계에서는 사실 정말 아무것도 아니다. 

개인적인 성취가 사회적인 성취로 이어지지 않는다. 심지어 뜨개질을 그 고생을 해서 배우잖아? 그 배우는 과정이 의미가 없다. 어떤 배움은 간단히 얻을 수도 없고, 간단히 얻는다고 해도 받아들여지지 않는다. 뭐 고전을 속독한다고 해서 그 고전을 더 잘 이해할까? 

근데 뜨개질은 아냐. 옆에서 알려주는게 훨씬 낫다. 얼른 그 기초과정을 밟아 앞으로 나가야하는 거니까. 내가 외할머니한테 그랬듯, 뜨개질하다가 모르는 부분 있으면 물어보고 외할머니가 손봐주고 뜨개질 가게 가서 한참 뜨고 있다가 아주머니께 여쭤보고. 이런 게 훨씬 낫다. 그래야 인형도 뜨고 목도리도 짜고 스웨터도 짜지.

더더더 슬펐던 건 내 유학시절이 이 뜨개질과 같다는 생각이 들어서다. 유학와서, 타지에서 홀로 고군분투하고 이 생활에 적응하고 미국 학교 시스템에 익숙해지고 이런 게 도대체 무슨 소용이 있었을지 모르겠다는 거다. 그냥 내가 단순히 물어보고 조언을 얻을 사람이 있었으면 그 조그만 사소한 어려움들을 얼른얼른 해결하고 더 앞으로 나아갈 수 있었던 건 아닐까?? 그 사소한 어려움과 극복과정이 중요한게 아닌데, 그것들에 허덕이고 나 혼자 해결방법을 고군분투하면서 겨우겨우 찾아내서는 이런 내가 기특하고 (사실은 모두가 그렇게 하는 것인데) 거기에 지쳐서 계속 실을 풀렀다 떴다 하는 건 아닌가 회의감이 들었다. 동시에 왜 나는 사람들에게 도움을 청하지 않았나, 후회도 되고. 유학을 오래 나오니 주변에서 자기 유학과정을, 그 사소한 어려움에서 자기가 얼마나 영웅적으로 해결책을 찾아냈는지에 대해 장황하게 말하는 사람들을 보면 그게 내 모습인가 싶어서 슬프다. 

결론은, 몇 년 전부터 내 모토이기도 하는데 고생은 최대한 피해야한다는 거다. 굳이 힘든 길 걸어갈 필요 없고 주변에 도움을 청할 수 있으면 청하고 조언도 받고. 힘든 일을 잘 이겨내고 말고가 문제가 아니라 잘못하다간 그 조그만 힘든 일에 갇혀서 허덕이다가 더 큰 어려움(?)으로 나아갈 기회조차 없을 수도 있다는 거다. 요즘 그 생각이 든다.

덧글

  • 남중생 2019/02/05 17:22 # 답글

    엇, 저는 여성 멘토 힐데가르트에 대한 이야기일 줄 알았는데, 뜨개질 멘토!!
    그건 그렇고, 멘토가 중요하다는 말에는 정말 동감입니다.
  • mori 2019/02/06 08:18 #

    여성 멘토가 중요하죠!! 힐데가르트가 괜히 여자수도원의 수도원장인게 아닙니다 ㅎㅎ 힐데가르트도 멘토가 있었구요!
  • 아이리스 2019/02/05 17:40 # 답글

    이 글에 무척 공감합니다. 작은 어려움 속에 갇혀 고군분투하다가 더 큰 기회(=어려움)를 만나지 못하고 지쳐버리는 경우...젊어서 고생은 사서도 한다지만, 최대한 고생은 피하는 게 좋고 그러기 위해서는 결국 관계를 잘 맺고...이게 빈부격차랑도 연결이 되는 게, 조금이라도 경제적 여유가 되고 사회적 지위가 있는 가정의 자녀가 그것이 부족한 자녀들보다는 확실히 몸도 마음도 건강하고 기회도 더 큰 것을 잘 잡게 된다는 그런 서글픈 현실. 고생해도 괜찮다 많이 넘어져도 그 경험들은 다 의미가 있다는 그런 위로의 말이 이제 30대 중반이 되고 보니 회의적으로 느껴집니다.
  • mori 2019/02/06 08:20 #

    저도 나이 때문인가 그런게 다 말도 안 되는 것 같고, 고생 안 한 사람들이 하는 말 같아요. 적어도 제 주변에는 진짜 고생하신 분들은 그런 고생 하지 말라고 손사래를 치시더라구요. 고생 너무 하다가 사람이 망가진 케이스들도 보고, 아무리 고생하는 거 피해도 고생스러운데 굳이 또 고생을 사서 하나 요즘 계속 그런 생각만 듭니다.
  • PennyLane 2019/02/06 13:35 # 답글

    슬프지만 어쩔 수 없는 사실입니다.
    그래서 좋은 대학을 가고 이억만리 타향에서 유학하고 유명 스승에게 사사 받고 사회적 영향력을 갖춘 사람들과 어울리려고 하는거예요. 속물적이어서가 아니라 효율을 위해서요.
    제가 일하는 분야가 전형적인 도제식 교육 방식인데- 가르치는 사람의 역량이 고스란히 배우는 사람의 역량으로 이어집니다.
    또 문제가 뭐냐면요 능력있는 멘토를 얻으려면 내가 능력있는 멘티여야 한다는거예요. 그런데 능력있는 멘티는 그냥 만들어질까요? 어디서부터가 시작인지도 모르겠어요. ㅋ
  • mori 2019/02/06 20:10 #

    아 제가 위에서 말하는 건 그 단계까지도 못 간다는 거에요. 뭐랄까, 유학과 유명 스승, 좋은 네트워크가 무용지물일 수도 있다는게, 저만 해도 제 지도교수님은 글을 너무너무 아름답게 잘 쓰시는데 저는 그런 테크닉을 배울 수가 없죠. 영어 문법에 허덕이고 있으니까요. 제 지도교수님이 "얘는 왜 the가 어디에 붙는지 안 붙는지 그걸 모르지?"란 생각에 저를 가르치시려고 자료까지 만들다가 그때서야 저게 문법적으로 설명이 완전히 안 된다는 걸 알고 포기하셨어요 ㅋㅋㅋ 그러니까 저에게 필요했으나 가질 수 없었던 건, the를 언제 쓰고 안 쓰는지 탑재된 미국인이 제가 글 쓸 때 옆에 있다가, 이 단어는 the를 써?라고 물었을 때 대답을 해주는 사람이에요. 문법은 정말 한 예이고, 소위 가르침을 받기 위해서 기본적으로 알아야할 것들, 수업 시간에 어떻게 대답을 하고 이메일에는 어떻게 답을 하고 지도교수와는 어느 정도 거리를 두고 이런거 하나하나를 독학하다보면 정작 유학의 더 중요한 목표였던 공부에 도달하기가 어렵다는 겁니다. 멘티의 능력과는 상관없는 정말 기계적이고 간단한 것들 때문에요. 그걸 딛고 나아가야 이제 유학에서 더 많은 걸 배우고 네트워크도 쌓고 할텐데 말이죠.
  • 2019/02/06 22:23 # 답글 비공개

    비공개 덧글입니다.
  • 2019/02/10 04:05 # 비공개

    비공개 답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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