라이프로그


햇빛처럼 은은하게 나를 채우는 그것 - 환시와 쾌락의 관계? by mori

빙엔의 힐데가르트(Hildegard of BIngten, 1098-1179)의 생애를 여성과 종교의 시각에서 조망하는 짧은 글을 쓰고 있어서 다시 힐데가르트를 보니 매우 새롭다. 나 이놈 논문은 어떻게 쓴거냐;; 아니 근데 정말 박사논문이 아무것도 아니라고 알고는 있었지만 어찌된게 졸업하고 나니 더 공부를 열심히 하는 것 같은 이 기분은 뭘까;; 하긴 내 학생 중에 경제학 박사하시고 대학에서 11년 가르치시고 지병으로 은퇴하신 분이 계신데, 그 분이 자기 요즘 한국어 공부 하는 게 박사 공부할 때보다 더 열심인 것 같다고 그래서 완전 동감했다. 

어쨌든 스키비아Scivias의 맨 처음 "선언Declaration" 부분을 읽다가 깨달은 것. 아 힐데가르트가 묘사했던, 스키비아스를 쓰게 된 환시의 내용이 힐데가르트가 의학서적 <원인과 결과Causae et curae>에서 언급한 여성의 성욕과 쾌락과 매우 비슷하다는 걸 이제야 알았다.


"타오는 불길과 힐데가르트" Rupertsberg Scivias I.1, Facsimile, Fol. 1r.


바로 요 장면 말이다. 너무 크라이팔Kripal 적인가?-_-



너무나도 유명한 이 장면, 그러니까 힐데가르트가 신이 자신에게 환시를 내리고 명령을 내려, 그 환시를 글로 옮겨 사람들과 나누게 한 그 장면은 스키비아의 첫 글인, "선언"에 있다. 마침 영역본이 내 손에 없기도 하고 해서 라틴어로 해당부분을 직접 옮겨본다. 참고한 라틴어 판본은 1885년 Migne의 Opera Omnia다. 




이것은 신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가 세상에 나셨던 첫 해에서 1041년이 되었을 때, 내가 41세하고도 7개월 나이를 먹었을 때 일어났는데 엄청난 섬광의 빛나는 불길이 열린 하늘로부터 와서 나의 뇌 전부와 내 가슴 전체로 퍼부어졌는데 이 불길은 타오르는 것이 아니라 그 불길로 덥혔는데 이는 마치 태양이 자신의 볕을 그 위에 보낸 다른 것들을 적절하게 덥히는 것과 같았다. 그리고 갑작스럽게 나는 책에 있는 글자들의 의미, 즉 시편, 복음서, 구약과 신약 모두에 있는 다른 교회의 책들을 알게 되었는데 나는 이런 문헌들에 있는 글자들의 의미나 음절의 분절, 격이나 시제에 대한 지식이 없었다.





여기서 내가 중요하게 보는 것은 힐데가르트를 덮쳤던 환시, 즉 빛나는 섬광이 불길처럼 작열하는 것이 아니라 만물을 소생시키는 햇볕처럼 은은하게 묘사되었다는 점이다. 그리고 이 은은하게 묘사되는 불에 대해서는 이전 글에서 남성과 여성의 성욕을 비유하며 쓴 글이 있다. 예전 글에서 해당부분과 내 번역을 갖고 오자면:




여성 안의 쾌락은 태양에 비유할 수 있다. 이 태양은 어루만지듯 부드럽게 끊임없이 땅을 자신의 열로 덥히고 과실을 열리게 하지 않는가. 왜냐하면 태양이 땅을 끊임없이 너무 심하게 달구면 과실을 맺기보다는 과실에 해를 입히기 때문이다. 따라서 여자 안의 쾌락은 어루만지고 부드러운 것이고 끊임없는 온기를 가지고 있다. 그렇기 때문에 여자가 임신할 수 있고 아기를 낳을 수 있다. 만약 여자가 불타는 쾌락 속에서 계속 있는다면 그 여자는 임신하거나 아이를 낳는 데에 적합하지가 않을 것이다. 여자 안의 쾌락이 생길 때조차 그 여자 안의 쾌락은 남자의 그것보다 더 부드러운데, 왜냐하면 여자 안에 있는 그 쾌락의 불길은 남자 안의 그것보다 강하지 않기 때문이다.



위의 <스키비아스>에서 힐데가르트는 이 빛이 "불타오르지 않았다non tamen ardens"라고 말하는데 힐데가르트에게 여성의 쾌락 또한 "남자의 쾌락처럼 강하게 불타오르지 않았다.non ardent ut in viro". 다음부분에서 남자의 성욕을 설명할 때는 분명히 "불타오르게ardere"를 쓰고 있다. 결국 불타오르는 것은 BTS남자지, 여자도 힐데가르트가 겪은 환시도 아니었다는 것. 그리고 당연하게도, 불타오르지 않고 은은하게 덥히는 여성의 성욕이나 힐데가르트의 환시는 다른 것들에게 생명을 주는 것과 연결되었다. 이 부분 또한 힐데가르트가 여성이 몸을 긍정적으로 본 하나의 사례로 꼽힐 수 있겠다.



덧글

  • 효도하자 2019/09/04 16:44 # 답글

    http://longboat.egloos.com/7244694사실 마리아의 예수 출산 환시에 대한 포스팅을 읽었을 때부터 힐데가르트는 그런 사람일것이라고 생각하고 있었어여. 환시를 통해 어느정도 성적인 환희를 느끼기도 하는 시람.
    햇빛처럼 은은함은 참신하며 어느 종류의 환희를 느꼈는지 잘 상상이 되는 비유군요. 격정적인 흥분계열 쾌락은 아니고, 마치 마취약 계열 뽕 같은 느낌인 것인가.
  • mori 2019/09/05 00:16 #

    아 출산 환시는 브리지타라는 성인의 환시입니다! 힐데가르트는 여성 성인이지만 "예수의 신부" 메타포를 직접 쓰지는 않았는데도 이런 언어를 쓰다니 신기하더라구요. 폴리뇨의 안젤라 같은 격정적인 환시는 아니었겠지만 또 뭐가 공통적일지 궁금하기는 합니다.
  • 효도하자 2019/09/05 18:51 # 답글

    아 다른사람이었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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