라이프로그


헨리 8세와 유니콘 약재 by mori

무엇이든 공부와 관련된 것은 업데이트를 안 한지 한참이 되었는데 오늘 영국도서관에서 재밌는 포스팅을 (트위터를 통해) 발견해서 간단하게 올려본다. 많은 수의 왕비를 두었다는 것과 폭군으로 유명하기도 한 헨리 8세(King Henry VIII, 1481–1547)와 전근대 의학에 대한 포스팅이었다. 


소 한스 홀바인 (Hans Holbein the Younger, 1497-1543)
Detail of King Henry VIII and the Barber Surgeons, by Hans Holbein the Younger, c. 1543 (The Worshipful Company of Barbers)




위의 그림과 아래 블로그 내용은 영국도서관 중세문헌 포스팅에서 가져왔다: "Did Henry VIII believe in unicorns?" 



위의 블로그에 더 자세히 나와있지만 간략하게 요약하자면 헨리 8세는 말년에 건강이 매우 안 좋았고 이를 고치기 위해 여러가지 방법을 사용한 것으로 보인다. 그는 단순히 의사를 여러 명 둔 데 그치지 않았고 자신이 직접 약을 제조하기도 했다. 그의 병과 고통이 만성적이다보니 여러가지 자연물에서 치료약을 가져다 쓰기도 했던 모양. 특히 영국도서관에 소장된 Sloane MS 1047에 수록된 치료법 중 삼십 개 이상이 헨리가 직접 만들었던 것으로 보인다고. 

그가 썼던 약재중에는 과일 같이 평범한 것들도. 맨드레이크mandrake처럼 약재에 자주 쓰이는 것들도 있었지만 신대륙에서 가져온 유창목guaiacum같은 것들도 있었고, 용의 피(dragon’s blood (sanguis draconis)라 불리는 식물도 있었다고.

여기서 용의 피라고 하니 기시감이 들었던 게, 벌써 몇 년도 전인지 모르겠지만 라틴어 강독수업에서 <트로툴라Trotula>를 같이 읽었을 때 "용의 피"가 나와서 교수와 다른 학생들과 이게 진짜 용의 피인지 아니면 식물인지 토론했던 게 기억이 난다. 그 때는 영역을 안 봤던 것 같고 각주도 없었던 터라 모니카 그린Monica Green이 이걸 식물이라고 한지도 몰랐는데 아마 추측으로 식물이름일 거라고 생각하긴 했었다. 그런데 이렇게 보니 또 반가운거다. 


The Dragon Blood Tree in an Italian herbal (Salerno, c. 1280–c. 1310): Egerton 747, f. 89r

아마도 이 블로그의 주인공은 헨리 8세가 약재로 유니콘의 뿔을 언급했다는 것일텐데, 그래서 헨리 8세가 유니콘이 있다는 걸 믿었던 거냐가 제목이기도 하다. 

블로그에 소개된 헨리 8세의 치료법은 다음과 같다.



뿔의 고약plaster: 곱게 갈린 일산화납 4온스, 백연 2온스, 유니콘의 뿔, 사슴 뿔, 굴 껍데기, 붉은 산호를 모두 태우시오. 장미 오일 반 파인트와 장미로 만든 화이트 식초 2온스를 취해 약불 위에 올린 깨끗한 팬에 모두 넣고 고약처럼 될 때까지 끓이며 계속 저으시오. 그리고 그걸 말아서 필요할 때를 위해 보관하시오. 




그럼 유니콘 뿔은 도대체 어떻게 구했느냐 하면 이게 상상의 동물이고 유니콘의 일각에 치료의 효과가 있다고 알려져서 수요가 꽤 있었다고 한다. 아니 그러니까 어떻게 구했냐하면 고래의 뿔 등 다른 것들이 유니콘의 뿔로 둔갑해 거래되었던 것으로 보인다고. 

물론 이걸 두고 중세 의학은 역시 말도 안 된다고 웃을 수는 있지만 얼마 전에 미국 대통령이 코로나 바이러스의 치료제로 말도 안 되는 것을 공개석상에서 얘기한 걸 보면 우리에게 그다지 먼 일도 아닌 것입니다...? 어쨌든 고치기 힘든 병일 수록 여러가지, 특히 구하기 힘든 것들을 구하려는 노력 끝에(물론 미국 대통령은 그러진 않았지만) 요런 약이 개발되기도 했던 모양이다. 게다가 유니콘은 중세 전승에 따르면 성경험이 없는 여성으로 꾀여서 잡아야 할만큼 귀한 동물이니. 오랜만에 재밌게 읽었다. 

덧글

  • PennyLane 2020/06/29 15:32 # 답글

    유니콘에서 할 말을 잃었습니다.
    말씀하신대로 일각고래뿔이나 코뿔소 같은 건데... 그러고보면 중국도 용골을 약으로 썼으니 이런 면에선 위아더월드인가봐요
  • mori 2020/06/30 02:09 #

    아 그렇네요 ㅎㅎㅎㅎ 결국 이런 식으로 예전에도 지구촌(?)이었다는 것을 확인하게 되고...?!
  • 도연초 2020/06/29 16:07 # 답글

    1. 중세, 근세기 유럽인들이 다 그랬듯이 헨리 8세도 테리악(갈렌이 개선한 미트리다티움)을 애용했을까요? 테리악의 재료 중 하나가 아편이었다고 하니...

    2. 고약 재료에 납이 두번이나 들어가는게 눈에 띄는군요; 딸인 엘리자베스 1세도 화장품으로 연백분(일산화납과 곡물가루의 혼합물)을 애용했다고 하던데 말년엔 얼굴이 납중독으로 푸른 멍같은 반점이 여기저기 나서 그걸 감추려고 연백분을 더 두껍게 바르고 악순환...
  • mori 2020/06/30 02:12 #

    아마 그 당시 쓰던 약이라면 웬만한 것은 다 써봤을 것 같습니다...! 얼굴에 좋으라고, 혹은 몸에 좋으라고 썼던 것들이 사실은 그다지 좋지 않았다는 게 끊임없이 밝혀지고 있으니;; 다음은 뭐가 또 밝혀질지 모르겠네요!
  • 남중생 2020/06/30 21:10 # 답글

    오, 간만에 재밌는 글 소개해주셔서 감사합니다!
  • mori 2020/07/01 01:05 #

    포스팅이 너무 오랜만이었어요 ㅠㅠ 조용히 있었지만 남중생님 글 잘 보고 있었습니다. 건강히 잘 지내시길 바랍니다!
  • 남중생 2020/07/01 07:19 #

    mori 님도 건강하세요~~~
  • 천하귀남 2020/07/01 09:46 # 답글

    과거의 전염병이나 의료 처방등을 보면 정말 기겁할 내용 많더군요. 잘봤습니다. ^^
  • mori 2020/07/02 02:57 #

    감사합니다!! 나중에 먼 미래에 지금을 보면 비슷한 느낌이 드려나 궁금하기도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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