라이프로그


2021년 가을학기 단상 by mori

아직 성적 입력이 끝나지 않았지만 성적입력이 막상 끝나면 천년 만년 뻗어버릴 (수는 없는게 데드라인이 올해 말일에 있다지만) 것 같아 까먹기 전에 쓰는 요번 학기 단상.

와...

물론 이 학교에서 가르친 게 세 학기 째라서 뭘 대단찮게 비교할 수 있고 이런 것은 아니지만, 이번 학기가 제일 힘들었다. 학교로선 2021년 가을학기는 무조건 정상으로 돌아간다!! 이래서 더 실상과 이상과의 갭이 커서 그랬는지 모르겠다. 아니면 학생으로서는 세 학기 째 이어지는 역병의 시대가 힘에 버거웠을 수도 있다. 나로서는 역병의 시대 + 새로 임용됨 + 뭘 하나 제대로 배울 수도 없고 이 학교에서 인간관계를 쌓을 수 없음의 겹이 쌓여서 일 수도 있는데...

성적입력 마감이 23일 정오인데 아직도 학생들한테 이메일이 온다. 기말페이퍼 + 작은 페이퍼들 이제 내도 되냐고.

두 달 반 넘게 숙제를 내지 않았던 학생이 오늘 갑자기 이메일이 와서, 자기가 학교 시스템에 숙제를 낼 수가 없었단다. 아니 근데 그 동안 페이퍼가 네 개나 있었는데? 그리고 이론적으로는 자네는 내 수업에 줌으로 계속 출석을 해왔고, 제대로 출석을 해왔다면 숙제가 그 동안 계속 있어왔다는 것을 알텐데?

심지어 기말 페이퍼 데드라인은 12월 6일이었는데! 반 달이나 지나서 나에게, 나 캔버스로 숙제를 낼 수 없었다고 나 학기 초에 나한테 이메일 보냈었는데? 이러는 것이다. 아니 나는 너한테 그럼 이메일로 숙제 내라고 했고 그 다음부터 너는 아무것도 나에게 보내지 않았고! 

아니 맘 같아서는, 숙제 제 시간에 맞춰서 내거나 아니면 시간이 없어서 나에게 미리 양해를 구하고 며칠 마감날짜를 늦춘 학생들을 생각하면 그냥 다 무시하고 싶지만, 테뉴어 심사를 받아야하는 나로서는 그렇다고 답을 안 할 수도 없고, 사실 성격 상 답을 안 할 수가 없다. 벌써 이번 학기 나한테 formal complain 건 학생이 있어 ㅋㅋㅋㅋㅋ 이메일 형식 갖춰서 보내라고 했다고.

예전에도 자꾸 이제라도 숙제 낸다고 하는 학생이 없었던 것은 아니지만 이번 학기는 유달리 많다. 그리고 숙제를 안 내고, 출석도 안 하고 사라진 학생들이 너무 많다. 그리고 그 학생들이 기말이 다 끝나고 성적 입력이 하루 이틀 남은 상태에서 부활하고 있다. 

아니 내가 매긴 점수를 보면, 이 정도 만으로도 이렇게 높은 점수를 줘도 되나 싶은데 학생들은 아니 숙제 마감 기한이 한 달, 두 달, 두 달 반이 지났는데 지금 내겠다고? 

코로나에 걸렸단다, 가족이 죽었단다, 이런 얘기들은 일 년 반 동안 들었고 대부분은 나는 뭐 서류 내라고도 말 안 하고, 마감기한 전에 혹은 마감기한 직후에 보내면 당연히 이해해 줬지만. 심지어 지난 학기에는 집에 불이 난 학생도 있었는데, 그 때에는 학교 차원에서 강사들한테 다 이메일 보내서 이러이러한 일이 있었다고 공식적으로 이메일을 받았고 그 학생은 심지어 제대로 페이퍼도 내서 좋은 점수 받았음.

학생들이 이메일 너무 보내서 노이로제에 걸릴 지경이다. 밤에, 새벽에 이메일, 메세지가 계속 오고, 심지어 학생 들 중 한 명은 20분 내에 답장이 안 오면 또 이메일을 보내고 한 시간 동안 아홉 통의 이메일을 나한테 보낸 적도 있었다. 아무래도 역병의 시대다 보니 올해 신입생으로 온 학생들이 가장 수업, 과제를 이해를 못 하는 것 같다. 그리고 이메일 보내는 법도 모르고, 내가 내 불알친구한테도 이렇게 보내면 너무 무례하다 싶을 정도의 형식으로 나한테 이메일, 메세지를 보내다보니 진짜 미춰버릴 것 같음. 이게 마냥 학생들 문제는 아니고, 사실 내가 탓하고 싶은 건 학교인데... 학교는 학생과 강사 둘 다 보호해주지 않는다는 느낌이 많이 든다. 그냥 학생이랑 강사 둘이서 제대로 된 시스템 없이 싸우고 있느 는낌임. 여기서 이기는 사람이 도대체 누군데. 게다가 비백인 여성으로서 학생 리뷰에 더 민감할 수밖에 없어... 학교 너네들 그거는 아니, 비백인 여성은 학생한테 무시받을 가능성이 훨씬 크단다... 나한테 컴플레인 건 학생은 심지어 내 백인 남자 보스 오피스엔 제 발로 직접 찾아가서 내가 자기에게 부당하게 처우했다고 했는데 나한테는 NP라고 이메일 뜩 보내고 나랑 줌 미팅할 때는 비디오도 켜지 않아... 느네는 이런 거 모르고서 나한테 지금 학계에서 인정을 받으라고 하는 거뉘...

2022년 봄학기는, 코비드가 이미 정리되었을 거란 가정 하에 완전 대면 수업인데 (심지어 뉴저지는 이제 줌으로 실시간 수업도 못 하게 되었음) 참 잘도 돌아가겠다. 나 이러다가 흑화되겠다. 진짜 이메일에서 로그아웃하고 싶어요, 혼자 있고 싶어요 다들 나가 주세효... 



덧글

  • 진냥 2021/12/22 17:46 # 답글

    ....고생 많으십니다....ㅠㅠㅠㅠㅠㅠㅠㅠ
  • mori 2021/12/23 12:18 #

    저 진짜 학생 한 명 마지막으로 상대하고 칩거에 들어갈 거예요 ㅠㅠㅠㅠㅠㅠ
  • jgml 2022/01/06 20:24 # 삭제 답글

    안녕하세요 Mori님.. 저는 작년 학위받고 첫 학기 강의와 성적 입력을 마쳤습니다... 저도 학생들 성적관련 메일&메세지 받을때면 스트레스 받아서 가슴이 두근거리고 저도 모르게 긴장했어요. 학교가 방관적이라는 것, 한국만 그러는 줄 알았는데 국적, 문화 불문 마찬가지인것 같습니다. 지금쯤 잘 회복하셨길 바래요. 올해도 건강히, 화이팅입니다.
  • mori 2022/03/12 00:39 #

    너무 오래된 답장이죠!! 요번 학기도 여전히 고군분투는 하고 있습니다만 그래도 지난 학기보다는 낫나 그러고 있습니다. 저희 어머니도 교직생활을 하셨는데 성적관련해서는 은퇴하실 때까지 스트레스를 받으시더라구요. 진짜, 올해도 건강하게 화이팅이에요!
  • kanei 2022/01/13 03:16 # 답글

    으어... 예전에 TA했을 때 생각이 소록소록 나네요. 고생 많이 하십니다 ㅜㅜ 토닥토닥....
  • mori 2022/03/12 00:40 #

    어디에나 빌런이 있고 그 빌런이 에너지 소모를 크게 불러오는 것 같습니다!! 답글이 너무 늦었지만 (여전히 이글루스 비번 문제로 답글은 봤는데 답을 못했어요 ㅠㅠ) 감사합니다. 건강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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